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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와 인권, 예의와 연대 그리고 희망

   
▲ 제1회 종교자유인권상을 수상한 인터넷 뉴스 매체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의 한상봉 편집국장 (사진/인권연대)

인간에게 있어서 종교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 삶과 죽음, 그리고 구원과 같은 가장 본원적이고 궁극적인 질문과 관련된 것이기에, 어떤 답을 어떤 종교로부터 찾아 거기에 귀의하는가의 선택의 자유, 더 나아가, 그런 질문과 답 및 종교를 추구하지 않을 자유도 자유 중의 자유이자 인권 중의 인권이라 하겠다.

또한 종교는 목숨과도 기꺼이 바꾸고자할 만큼 강력한 신념 체계이다. 흔히들 "식사 중에는 되도록이면 정치나 종교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런 주제는 자주 이데올로기가 깔리게 되어 불필요한 논쟁과 함께 격한 감정 대립으로까지 쉽게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와 종교, 국가와 교회는 공히 사람들로 하여금 순국이나 순교도 불사하게 만든다. 믿는 이들로서는 종교가 곧 목숨이며 결코 부인당하거나 강요당할 수 없는 전부인 것이다. 그렇기에 세계인권선언 제18조와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관련된 자유와 인권은 침해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개신교, 천주교 등의 그리스도교의 경우가 눈에 많이 띄기에 특히 교인들에게, 새삼스레 종교와 관련된 자유와 인권, 예의와 연대, 그리고 희망에 대하여 성찰해보자고 권하고 싶다.

첫째, 종교와 관련된 자유와 인권이다. 서로의 종교를 존중해 주지 않고 무시하거나 비판하는 일, 종교를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이에게까지 종교를 강요하는 일, 더 나아가, 다른 종교를 단죄하고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기의 종교로 개종시키고자 하는 유혹은 쉽게 생겨나는데, 아마도 종교인들은, 특히 권력을 갖고 있을수록,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곧 하나님 혹은 하느님이 명하시는 거라고 믿어 자칫 잘못하면 그 상황을 선과 악의 싸움, 혹은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종교의 자유'에 대한 문맹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폭력은 쉽사리 발견된다. 예를 들어, 개신교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 시절에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나이다"라고 공식석상에서 기도했다가 엄청난 반발을 샀다. 하나님께 봉헌되고 싶지 않는 이들도 무지 많음을 알아야 한다. 또 다른 예로, 교회가 이주노동자들을 초대하여 따뜻한 식사와 옷가지 등을 선물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막상 이주노동자들은 교회에 계속 나와야한다는 무언의 혹은 공공연한 압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들 중에는 이슬람교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빵이냐 개종이냐"의 선택을 요구하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인권 유린이자 일종의 폭력이며, 참으로 옹졸한 선교전략 아닐까.

아울러, 종교 내의 언론을 제도 교회가 권위주의적으로 독점하거나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 내에서 제도 언론에 대한 대항 언론 내지 대안 언론이 다양하게 언로를 트게끔 보장되는 것은 종교의 자유, 특히 종교 내의 언론의 자유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교회 지도부라고 해서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일 수는 없다.

둘째는, 종교에 대한 예의이다. 모 대학 교수가 학생들을 인솔하여 타 종교인 불교 탐방을 가서 불상 앞에서 절을 했다가 해직되었던 사례가 있다. 필자가 재직 중인 모 대학원에서는 교수 워크숍으로 최근에 중국 곡부를 갔다가 공자의 사당을 단체로 방문했었다. 거기에서 몇몇 교수들이 대표로 공자 영정 앞에서 절을 하고 예를 바쳤는데, 그 중에 가톨릭 신부인 부총장도 함께 절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그게 당연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되었다. 아마 이슬람 사원에 가더라도 혹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섬기는 무속 신앙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는 게 당연하다 싶다. 어느 종교이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악한 종교가 아니라면, 한 인간이 종교 및 성인 앞에서 예를 표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아닐까? 그런 기본조차 없을 경우, 더 나아가, 그렇게 예를 표하는 것조차 '우상숭배' 운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독선이며 스스로의 종교를 종교가 아닌 우상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통탄할 일이다.

셋째는, 종교들끼리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고 친교를 이루며, 더 나아가 사회변화를 위해 연대할 필요가 있고, 그런 모습은 아름답게 보이며 희망을 준다는 사실이다. 종교들은, 그리고 종교인들은 서로가 함께 걸어가며 서로 배워야할 대상이자 서로가 스승이리라. 작고하신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길상사와 명동성당을 서로 오가며 진심으로 우애를 나누었던 모습이 벌써 많이 그립다. 법정 스님이 존경했던 예수, 김 추기경이 존경했던 부처, 예수는 존경하지만 예수쟁이들은 보기 싫다던 마하트마 간디... 종교 간에는 원래 서로 벽이 없었지만 종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 종교들 사이에 벽을 높게 쌓았던 것은 아닐까? 사람이 종교를 망치지 않게, 종교들끼리 힘을 합쳐 세상을 바꾸게,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절망 앞에 희망을 주는 것이 종교이기에 우리는 다시금 종교의 역할을 기대한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2008년의 촛불집회, 2009년의 용산참사, 2010년의 4대강 반대 운동이 이어지고 있는데,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그것은 시민운동 진영이 힘이 많이 빠진 가운데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4대 종단의 범(汎)종교연대가 형성되어 물꼬를 트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70년대, 80년대의 종교의 사회참여가 주로 천주교와 개신교 위주였다면 이제 2010년 전후해서는 4대 종단의 연대가 주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예수, 부처 할 것 없이, 이 나라의 자유와 인권, 민주화와 환경 정의를 위해서라면 믿는 이들부터 먼저 연대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존경을 나누고 예를 갖추는 일, 시민들과 시민운동 단체들의 귀감이 되는 일, 그럼으로써 척박한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믿음은 곧 행동" "종교 간의 연대는 곧 희망"임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인권연대는 2010년 12월에 '종교자유인권상'을 제정하여 제1회 수상자(단체)로 인터넷 매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선정했다. 한국 가톨릭 교단 내의 다양한 아픈 문제를 용감하게 지적하고 이웃종교에 대해서는 관용적이며 배려의 정신으로 일관해온 작은 언론단체이다. 이번 상이 이 단체에게 격려가 되고 우애의 표지가 되며, 더 나아가 이 시대, 우리 사회 안에 종교의 자유와 인권, 예의와 연대, 그리고 희망을 신장시키는 작은 촉매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작은 사람들이 작은 곳에서 작은 일 하면 이 세상에 평화 온다"는 말처럼, 작은 것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곧 '희망'이리라.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김녕/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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