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이광조]

지난 해 6월 22세의 한 청년이 의무경찰 복무 중 급성 혈액암, 곧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지난 해 12월 31일 이 청년의 어머니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아들이 의무경찰로 복무하면서 고참들로부터 상습적으로 구타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고참들에게 인사를 잘못했다고 2시간에 걸쳐 구타를 당하고 경찰 버스 안에서 발길질을 당하고 시위 진압용 방패로 이마를 맞고 보일러실에 하루 종일 감금당하고...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이 어머니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번민과 고통에 시달렸을까? 이 어머니의 하소연에 인터넷에는 누리꾼들의 분노와 함께 전·의경 출신들의 체험담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작고 딱딱한 치약뚜껑에 머리 박기, 손깍지 끼고 머리 박기, 울대 때리기, 기동대 버스 안에서 명치 걷어차기 등등. 파문이 확산되자 경찰은 상습적으로 폭행을 행사한 관련자들을 형사 처벌하기로 하고 가혹행위를 묵인, 방조한 경찰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와 함께 조현오 경찰청장은 부대 안에서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물론 이를 묵인, 방치하는 지휘자도 형사 처벌할 것이며, 구타와 가혹행위 근절에 공이 있는 지휘자나 관리자를 경감까지 특진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채찍과 당근을 모두 사용해 부대 내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강력한 뜻을 천명한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의 이런 입장표명을 전하는 언론보도에는 ‘현장의 분위기가 회의적’이라는 분석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왜 그럴까?

조현오 경찰청장의 가혹행위 근절 대책을 접하면서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당신은 전·의경 부대 안에서 가혹행위가 상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정말 모르고 있었습니까?” 하는 물음이었다. 너무 잔인한 질문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정말 몰랐다고 하면 경찰총수로서의 자질에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고 알고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방치했다면 직무유기다. 이러나저러나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물론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악습이 몇몇 개인의 책임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조현오 경찰청장에게 이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전·의경 부대 안의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경찰총장의 의지가 정말 굳건하다면 지금보다는 덜 야만적인 내무반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닐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벌하고 상주겠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선 경찰총장을 비롯한 경찰수뇌부가 일선 경찰서를 순회하며 전·의경들에게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직접 전달하라. 일선 경찰에게 모든 것을 떠넘겨 놓을 경우 경찰 수뇌부의 얘기는 공허한 메아리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폭력 근절의 의지에 진정성을 담아 가까이에서 직접 소통하고 수시로 지켜보는 것, 그것이 바로 전·의경 부대 안의 폭력을 줄이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이는 전·의경 부대를 관리하는 일선 경찰서의 지휘부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도 효과가 미미하면 폭력근절의 임무를 맡은 경찰관들이 전·의경들과 함께 생활이라도 하라. 교대로 같이 먹고 같이 자라. 너무 지나친 요구인가? 그렇게라도 국민들에게 폭력을 없애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군사독재 정권 시절 경찰의 모습을 방치하려는가?

▲ 사진/한상봉 기자

또 있다. 전·의경 부대 안에서 폭력을 근절하려면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적으로 보는 경찰수뇌부, 일선 경찰 지휘부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폭력적인 충돌이 생기면 상황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동료가 얻어맞으면 흥분하는 게 당연하고 맞으면 때리고 싶을 거다. 우리보다 잘 살고 시위문화가 성숙돼 있다는 선진국에서도 가끔 시위현장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진다. 하지만 시민들의 정당한 의사표현조차 경찰 수뇌부가 특정한 정치적 판단에 근거해 적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진압방침을 표명하고 나면 폭력의 과잉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 폭력은 시위대만이 아니라 경찰수뇌부의 정치적 판단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못하거나 그렇게 보이는 전·의경들에게도 향할 것이다. 폭력의 기저에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없애버리려는 욕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찰수뇌부의 이 같은 부적절한 언행을 이미 여러 차례 목도했다. 한 겨울 갑작스런 철거에 저항하며 농성을 벌이던 세입자들을 두고 “미국 같으면 발포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한다거나 시위진압 경찰을 격려하기 위해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에게 모욕을 줬던 행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오늘 우리사회에서 어느 조직보다 규율과 기강이 요구되는 곳이 전·의경 부대라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늘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우발적인 상황이 수시로 벌어지는 시위현장에서 그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경찰수뇌부와 일선 지휘부는 불가피한 충돌과 폭력을 최대한 예방하고 줄이려 노력해야 한다. 이런 구체적인 노력과 태도 변화가 없다면 조현오 경찰청장의 이번 폭력근절 대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선 경찰과 전·의경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질 것이다.

이광조/ CBS PD

<기사제공/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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