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사랑의 전달자, 박현수 씨]

박현수(스테파노, 66세) 씨는 인천교구 논현1동 성당 신자이고 (주)진흥안전관리 회장이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일상에서 소박하게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이웃사랑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하며 산다.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박현수 씨를 만났다.  

▲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박현수 씨(사진/김용길 기자)

청소년 시기의 좌충우돌

고향이 북한에 있는 박현수 씨 가족은 6.25  피난 시절에 연평도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날 연평도에 포탄을 떨어져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적도 있었다. 저녁을 먹고 자다가 포탄 파편이 날아와서 집을 무너뜨렸다. 다행히 가족 모두가 잠자리에 들어 베개를 베고 누워있어서 파편이 이불 위로 통과하는 바람에 기적처럼 살아났다.

중학생 시절에는 도를 닦는데 관심이 많아 절에 들어가려고 했다. 8남매의 장남으로 집안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아들이 가문의 대를 잇지 않고 스님이 되려는 꿈을 꾸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가족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결국 불자의 길을 포기했다.

박현수 씨는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중학교 때부터 태권도, 유도, 검도를, 고등학교 때는 합기도를 시작했다. 중학생 때 공부는 제대로 안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 적이 많았다. 부모님은 아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판단으로 인천에서 서울로 전학시켰다. 친구들과 헤어져 인천에서 서울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대학교에 무사히 입학하였다.

무도(武道)의 길

박현수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합기도를 꾸준히 배워 최고단(9단)을 받은 후에 무술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유단자로서 무술연마를 통해 몸을 단련시키고 더 나아가 도의 길로 나아가려고 노력했다. 육체 단련을 통해 강인한 정신력을 키우고 서로 간의 예를 중시하며 인간에 대한 신뢰를 다지고 세상사에 대한 식견을 넓혀야만 진정한 도인의 길로 접어드는 것으로 여겼다.

그는 우리 사회가 무술을 경시하며 지식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지식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가르치는 스승이 적다고 했다. 아는 것을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데 사랑과 예의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아쉬워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합기도 도장을 열었다. 도장 내부 벽면에 백인(百忍)이라 적어 액자를 걸어 놓았는데, 백번 인내하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화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그 순간을 잘 참으면 탈이 나는 법이 없음을 살아오면서 많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1973년 홍제동 도장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그 날 서울에서 여러 곳에서 불이 나 소방차가 늦게 오는 바람에 숙식을 해결했던 도장이 불에 다 타버려 하루아침에 알거지 신세가 되었다. ‘내 인생은 여기서 막을 내리는 구나’하며 앞이 캄캄한 그 때에 수련생들과 선후배의 도움으로 다시 도장 문을 열게 되었다. 그 화재사건으로 삶에 있어서 귀중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과 신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웃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박현수 씨는 지역사회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공간인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의 열렬한 후원자다. 김용길, 최금자 부부가 동네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 공간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를 연다고 할 때 십정동 지역에 무척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여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박현수 씨는 후원은 물론 매주 수요일 까사미아를 직접 방문하여 아이들에게 스파게티를 서빙하고 설거지도 한다. 까사미아를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홍보를 많이 하고 있다. 후원과 노력 봉사를 같이 하면서 많이 배운다고 했다.  

▲ 박현수 씨는 '까사미아'뿐 아니라 '민들레의 꿈 어린이 밥집'의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용길 기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으로 비영리 치매노인기관인 ‘모니카의 집’에서 한 노력봉사를 꼽았다. 박현수 씨는 그곳에 기거하고 계셨던 분들을 통해 자신이 노년기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배웠다. 딸, 이웃집 사람, 회사 직원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1년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그분들의 굳어버린 온몸을 자신의 특기인 지압으로 풀어 주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에서 층계로 그분들을 옮겨야 드려야 했다. 모니카의 집을 방문하면서 어려운 분들에게 물질적 도움도 중요하지만 직접 와서 봉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박현수 씨는 단체 후원뿐 아니라 개인 후원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 연유로 장애를 가진 부모를 둔 중학생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그에게 있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것은 지금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이고, 인생에서 가장 어려울 때에 이웃으로부터 받았던 따뜻한 사랑과 도움에 대한 응답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관에 “후원금을 내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기쁨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여기는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처럼 나누는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기기증을 생각하고 있다는 박현수 씨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나서 나누려고 하면 평생 나눔을 실천할 수 없기에 일상에서 작은 것부터 나누며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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