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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애 김영곤 "눈이 내리면 천막은 더 아늑해져요"-2011년 새해를 농성 천막에서 맞이한 김동애 씨 부부
-천막투쟁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나눈다

 

   
▲ '투쟁하는 것이 세상과 나누는 것'이라는 김동애 씨(사진/두현진 기자)

2010년이 지나고 2011년 새해가 밝았다. 2010년 12월 31일, 다들 떠들썩한 분위기로 저무는 한 해를 보내지만 김동애(데레사), 김영곤 씨 부부는 농성천막 안에서 2010년의 마지막으로 보내고 있다. 대학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요구하며 1213일을 맞이한 천막농성. 무엇 때문에 나이든 노부부는 천막을 떠나지 못할까? 2011년 새해 첫날 농성천막에서 김동애, 김영곤 씨 부부를 만났다.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아주는 김동애 씨, 하지만 천막 농성의 고단함이 웃음 뒤로 묻어났다.

천막에서 맞는 네 번째 겨울이다. 김동애 씨는 지난 2010년이 ‘참 힘겨웠다’며 천막농성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여의도 성당 새벽미사에 참례했던 김동애 씨는 어지럼증도 생기고 날씨가 추워져 이제는 성당에 가지 못하고 있다. 건강이 나빠져 일인 시위도 혼자가지 못하고 남편 김영곤 씨와 함께 다니는 김씨, 이제는 한 시간 서서 일인 시위를 하는 것도 힘에 부칠 정도가 되었다.

천막 농성을 시작하면서 김씨는 친정어머니에게는 연락 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자신을 걱정하며 안타까워하는 것보다 모르는 편이 나을 거란 생각에서다. 하지만 천막농성이 길어지면서 형제들을 통해 어머니도 천막농성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김씨에게 전화를 했다. 육십이 넘은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전화는 김동애 씨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2008년 미국에서 목숨을 끊은 한경선 박사, 2010년 5월25일에는 서정민(조선대 강사) 박사가 논문대필등 대학사회의 불의를 말하며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딸 앞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한경선 교수, 부인과 아들을 그토록 사랑했던 서정민 교수가 죽음을 결심해야 했던 심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서정민 교수는 마지막 유서에서도 아들을 지켜 달라는 당부를 했지요. 이들은 사회 불의를 개선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전태일 열사에 버금가는 사람들입니다. 대학 강사 교원지위 회복은 강사 인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대학에서는 진리와 공동선 가치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학 안에서 우리 사회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고 공동선을 지향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대학 강사 문제는 우리 사회가 공동선을 지향하기 위한 본질적 문제라고 김동애 씨는 말한다.

서정민 박사의 죽음 이후 경찰은 '논문대필을 밝힐 수 없다'고 결정을 내렸고, 비정규 대학교수 노조와 대학당국이 포함된 대책위에서는 경찰의견에 동의했다. 결국 서정민 박사 죽음 이후 대학당국이나 정부는 책임을 지고 유족에게 용서를 청할 이유가 없어졌다. 더구나 서정민 박사 죽음 이후 계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김동애 씨를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조선대분회장이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서정민 박사 죽음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김동애 씨, 이제는 '명예훼손'으로 고발 당해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 추운 날씨에 얼어버린 식수통
김동애 씨는 <비정규 교수 벼랑끝 32년> , <지식사회 대학을 말한다>라는 책을 여러 저자들과 공동으로 출판했다. 김동애 씨와 천막농성을 이어가는 김영곤 씨는 고려대 안암(세종) 캠퍼스 경영학과에서 강의를 한다. 농성천막에서 네 번째 겨울을 맞이하기까지 그는 연구수첩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2009년에는 단독으로 <한국의 공동체 자기고용> 이란 책을 내서 2010년 대학민국 학술원에서 우수 인문학 도서로 추천받기도 했다.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유인호의 '협동경제론', 주종환의 '공동체 경제론' 의 개념을 실제의 경제구조에서 어떻게 반영할지 연구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김영곤 씨는 어려운 천막농성 중에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대학은 주체적 연구, 대안 연구, 정책생산 역량이 취약합니다. 일반 민중이 스스로 해야 할 상황입니다. 일상 생활 중에 몇 개의 주제를 골라서 꾸준히 자료를 모으면 좋은 블로거가 될 수 있고 책으로도 나올 수 있죠. 지금은 나이 사오십 대에 회사를 그만두어야 합니다. 나중에 보람도 되고 생계를 해결할 수도 있는 자료수집과 연구는 필요합니다"라며 김영곤 씨는 공부하는 생활자세를 강조한다.

노조에서 천막농성을 지원하지 않아 김영곤 김동애 씨 부부는 '대학 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를 만들어 농성을 이어왔다. 몇몇 지인들의 후원금과 개인 사비를 털어 이어온 천막농성을 하는 동안에, 이제는 학생들도 대학 강사 문제가 학습권과 연결되는 자신들의 문제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고려대 총학생회 선거에 학생의 학습권과 대학 강사의 지위문제가 공약으로 나왔고, 작년 10월에는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지역 노동자 단결 세미나에서 김영곤 씨가 발표자로 초대되기도 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김영곤 씨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냐? 라고 질문하면, 대부분 학생들은 모르겠고 대답합니다. 꿈을 잃은 학생들이 측은해 보입니다"라고 말한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재능이나 봉사등 나눌수 있는 것은 나누어야지요. 저 한테는 투쟁하는 것이 세상과 나누는 것이랍니다”라고 말하는 김동애 씨는 천막농성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로 여기고 있다. 기자가 "눈이 내리면 춥지 않느냐?" 라고 질문하자 김동애 씨는 "눈이 내리면 천막은 더 아늑해 져요. 눈이 보온 역할을 해 따뜻해진답니다"라고 답했다.

건강이 나빠져도 천막을 떠나지 못하는 노부부의 심정을 하늘에서 내린 눈이 아는 것일까? 차갑게 쌓인 눈덩이가 이들의 천막을 더 따뜻하게 한다니, 한 순간 차가운 눈보다도 따스함을 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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