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박영대]

복음서를 보면 예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에게 반한 지체 높은 분들도 계셨지만, 대부분 창녀, 소경, 절름발이, 세리 등 무지랭이들이었다. 그런데, 예수 주변에 성소수자는 없었을까? 만일 있었다면, 예수는 그들을 어찌 대하셨을까? 최근 정진석 추기경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셨을 때 생물을 암수로 만드셨고, 암수가 정상이기 때문에, 죄인 취급을 하셨을까? 아니면 힘없고 가난한 다른 사람들처럼 살갑게 품어주셨을까?

마고 : 여보 여보, 퀴즈 맞혀볼래?
크리스 : 그래, 뭔데?
마고 : 사대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성매매 여성, 세리, 그리고 이방인하고도 어울리셨잖아.
크리스 : 응, 그랬지.
마고 : 근데 왜 동성애자하고 어울렸다는 기록은 없을까?
크리스 : 응, 진짜 그러네! 왜 그럴까?
마고 : 잘 생각해봐.
크리스 : 글쎄. 난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리,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까? 혹시 아는 분 계세요? 창녀, 세리, 심지어 이방인하고도 어울리신 예수가 왜 성소수자하고 어울렸다는 기록이 없을까요?
마고 : 왜냐면 그때 예수님한테 커밍아웃한 동성애자가 마태, 마가, 누가, 요한한테는 커밍아웃을 안 해서 그런 거야.
크리스 : 와, 맞다! 자기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
마고 : 뻔하잖아. 예수님이 안 어울린 사람이 없고 안 고쳐준 병이 없는데, 그 시절에 사람 축에도 못 들던 여자도 제자로 받아주신 분인데 성소수자를 차별했을 리가 없지?

최근 나온 책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슘프로젝트 엮음, 도서출판 한울) 내용의 일부(182~183쪽)이다. 이 책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등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크게 목회로 만난 동성애, 동성애자가 만난 하느님, 성경으로 만난 동성애로 나누어져 있다. 16분 목회자와 기독교 성소수자의 고통과 신앙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발간에 앞두고 기획팀인 ‘슘프로젝트’는 고민 끝에 발간 기념 자리를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로 말미암아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자리로 마련하기로 했다.

이날 동성애자인권연대 정욜 활동가는 맨 처음 육우당을 추모했다. 육우당은 2003년 4월 25일, 열여덟이라는 꽃다운 나이로 자기가 활동했던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해는 동성애 왜곡과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청소년보호법상 동성애 조항을 삭제하라는 운동이 거센 때였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동성애자를 두고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그로부터 20여 일만에 그는 자살을 선택했다. 그는 유서에서 “몰지각한 편견으로 이 사회는 수많은 성적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다”며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며 그것으로 족하다”고 적고 있다. 육우당이란 별칭은 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를 벗 삼아 살아야 했던 그의 삶을 상징한다. 묵주, 그는 천주교 신자였다. 그는 자살하면서 동성애자인권연대에 하느님이 축복을 내려주실 거라며 곱게 접은 한복 위 십자가와 성모상을 선물로 남겨 주었다고 한다.

나는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 발간 기념 추모 모임에 참석하면서 내가 만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천주교 성소수자를 생각했다. 육우당이 아직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못하듯이, 천주교 성소수자들도 교회 안에서 ‘있어도 없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온라인 상의 천주교 성소수자모임 이름이 ‘안개마을’인 것도 이러한 현실을 잘 상징하고 있다.

4대강 관련 발언 때문에 주목 받지 않았지만, 정진석 추기경의 말씀은 천주교 성소수자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셨을 때 생물을 암수로 만드셨다고 비유적으로 말하고 싶다. 암수가 정상이다. 가령 많은 사람이 감기에 걸렸다고 모든 사람이 다 감기에 걸려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간추린 신문기사를 통해 말씀의 진의를 다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성소수자를 고쳐야 할 환자처럼 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동성애 성향의 선천성을 인정한 가톨릭 교리에도 맞지 않는 말씀이다.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를 통해 기독교 목회자와 성소수자가 세상을 향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번 책은 개신교 목회자와 신자들의 목소리만을 담고 있다. 천주교 성소수자들도 세상을 향해 자기 고통과 신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박영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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