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항 합의사항의 조속한 실천이 따라야 한다

개천절을 맞아 7년 만에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결실과 6자회담의 가시적 성과로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제기된 핵문제를 비롯한 위기 요인이 제거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무엇보다 이번에 남북 양측 정상이 합의한 바와 같은 8개항의 선언이 제대로 실천된다면 소련의 해체와 동유럽 체제전환, 그리고 94년 큰물 피해 이후 북한 사회를 위협해 온 경제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일대 전기를 맞을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문제는 핵문제를 둘러 싼 6자회담의 완전한 성공과 한반도 냉전을 혁파할 종전-평화체제의 수립이 예정대로 순항하느냐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일본의 대결 지향적 보수 세력, 그리고 이들과 이익을 같이 하는 한국 내부의 수구냉전세력의 갖가지 방해책동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모처럼 맞이한 평화모드를 이어 갈 것인가이다.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도 정파적 이해에 머물러 딴지걸기를 일삼던 국내 수구세력들이 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도 맹목적인 엇박자를 계속하는 것으로 보아 앞날이 결코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더구나 두어달 남은 대통령선거에서 수구세력이 집권한다면 8개항의 합의사항이 제대로 실현될 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일관되게 지속되어 온 화해와 공존을 위한 큰 흐름을 어떤 정치세력도 정면으로 거스를 수 없을 만큼 자리 잡았기 때문에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을 대놓고 거스를 수는 없다 해도 수구세력의 정책이 결과적으로 이 흐름을 잘못된 길로 접어들게 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고 있는 인사와 그 진영이 북한을 자본증식을 위한 개발위주의 투자처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 이러한 가능성을 짙게 하고 있다.

일단 이번 회담의 성공과 그 후속조치로 북한 주민들이 그동안 겪어 온 극도의 경제적 궁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다행한 일이다. 북한 사회가 그동안의 시련을 극복하고자 나름대로 노력해 온 결과로 어린이를 비롯하여 위기에 취약한 계층의 생활조건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것을 생각하면 후속조치가 하루 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생명파괴적 물신주의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재건으로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북한이 누적된 위기로부터 하루속히 벗어나 경제사회가 재건되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남한이나 다른 나라가 범해 온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북한 경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일으켰듯이 사회주의경제권의 붕괴와 큰물 피해로 완전히 무너진 북한 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짜는 기회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 정권담당자들은 소련과 중국의 경제개혁, 개방과정에서 보여준 파괴적 폐해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지금부터 치밀하게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박정희 모델이 당면한 굶주림을 모면하게 했을지언정 40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내부의 갈등과 미국 일본 등 외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낳은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한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신흥재벌-와 중국의 ‘태자당’과 같은 새로운 특권층의 출현과 기존 자본주의 사회를 뺨칠 극심한 빈부격차, 개발을 앞세운 자연환경의 파괴 등을 처음부터 예방하는 정의로운 경제 사회체제를 건설하는 원칙을 확고히 해야 한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필두로 하는 북한 지도부의 과업이기도 하지만 한국교회를 비롯한 남한 사회가 전개할 평화통일 운동의 첫째가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분단 60년을 극복하고 민족의 평화적 재통일은 어떤 형태로든 손에 잡힐 것처럼 다가 왔다. 이제는 단순히 재통일이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69)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문서의 언급처럼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당장의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과 그 온전한 소명, 사회 전체의 선익’(“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63)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1억이 넘는 ‘농민공(農民工)’문제를 비롯하여 격심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정부가 뒤늦게 ‘조화사회(調和社會)’를 부르짖으며 ‘선부론(先富論)’이 낳은 파괴적 징후를 치유하러 나섰지만 그 성공을 점치기는 몹시 어려운 상태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북한 지도부가 후발주자의 이점(利點)을 살려 생명파괴적 자본주의에 맹목적으로 빠져 들지 않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와 시민사회의 과제

이를 위해 한국교회와 시민사회는 많은 부분 이질적인 정치경제와 문화 등 북한사회를 존중하는 것을 넘어 북한사회의 정의로운 재건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남북 양당국과 북한에 진입하는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이러한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구현되도록 조언하고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양측 당국과 경제주체만이 아니라 남북의 모든 민족구성원이 이를 실현할 과제로 인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그동안 미국과 남한을 비롯한 일부 세력이 불순한 정치적 동기에서 제기한 북한의 인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이기도 하다. 남한과 미국 등 자본주의사회의 인권개념 자체도 대다수 민중의 생존권을 도외시하는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껍데기뿐이라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4천만이 넘는 가난한 사람들이 공식적인 의료보호체계에서 소외된 미국이나 수백만 노동자들이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 자본천국의 남한사회가 무슨 자격으로 북한의 인권을 거론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북한도 내부의 인권문제 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해소해나가야 한다.

북한의 정의롭고 질서 있는 경제재건은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 등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남한사회의 격심한 격차와 갈등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며 이를 통해 해방이후 온 겨레가 꿈꿔 온 이상적 통일조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황인오 2007.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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