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사제단 시국미사와 촛불시위

지난 1일 서울시청 광장 앞에 설치한 정의구현사제단 천막은 하루 내 강한 햇살로 무척 뜨거웠다. 지역에서 어제 미사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던 사제들이 대부분 돌아가고, 남아 있던 십여 명의 사제들이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머리도 식힐 겸 일부 사제는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머리에 이고 생수를 마시며 단식의 시간을 이어갔다. 촛불집회의 경쾌함을 닮아서일까, 단식의 엄숙함을 강요하기보다, 자유롭게 한담을 나누고, 아침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여러 신문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으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종훈 신부(정의구현사제단 대표)는 언론사 인터뷰에 짜증이 난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질문 자체가 이명박 대통령과 사제단의 대립구도를 만들려는 듯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마디 하신다면?”이라고 묻기도 한다. 사제단은 “다만 시민들의 뜻이 왜곡되지 않게 하고,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되어 민주주의와 평화의 광장이 회복되도록 하는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분명히 앞으로 보수언론들이 사제단을 두고 ‘반미세력’ 운운하겠지만 이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저녁 6시 30분에 봉헌된 제2차 시국미사를 진행하면서, 김인국 신부(정의구현사제단 총무)는 임채진 검찰총장이 “거의 꺼놓은 촛불을 왜 다시 불러일으키냐” “촛불집회는 국가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항의했다면서, “촛불집회의 원죄는 예수”라고 말했다. “촛불은 세상의 어둔 밤을 밝히고 영혼을 맑게 정화하는 일이니, 걱정마라”고 했다. 이날 미사는 나승구 신부(정의구현사제단 사무처장)의 주례로 첫날처럼 광장 뒤편에서 십자가를 앞세우고 30여명의 사제들이 입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서 신부들은 “어젯밤 시청광장을 누가 훔쳐갈까봐 꼬박 지샜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립고 보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강론에 나선 김인국 신부는 “진정한 인격자는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면서 “정치인들이 사람에 대한 예의를 모른다”고 공박했다. “사람에겐 예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촛불시위 행렬을 숭례문(남대문)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사람이 직립보행을 하고 노래할 줄 안다고 사람이 아니며,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수구에 떨어진 쌀 한 톨이라고 버리지 않고 주워먹을 줄 알아야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뇌물’이라면서, 뇌물이란 “뇌에 오물이 들어가는 것”이며 더럽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작년에 삼성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어 일하면서 뇌물의 실체를 똑똑히 보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뇌에 오물이 들어간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촛불시위자는 정부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불순세력이다” “어제 미사와 집회는 전문시위꾼들이 주도했다.” 김신부는 어제 미사를 봉헌하고 어느 교우가 “300명의 사제들이 입장할 때 마치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처럼 느껴졌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이런 점에서 예수야말로 전문시위꾼이라는 말이 옳다.”고 말했다.

한편 김신부는 “우리에겐 원로가 필요한데,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는 원로가 필요하다. 그걸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중학생이었다. 이들은 부모에게 동생들에게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이지 말라고 말한 것”이라면서, “어른들의 권위는 망가졌으며, 이들이 아름다운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제단이 미사를 봉헌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벌주자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회복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제 ‘국민들이 뿔났다’는 표현은 쓰지 말자고 제안했다. 뿔나면 안 되고, 사제들이 단식하며 속을 비우고 겸손해져야 하듯이, 몸으로 마음으로 단식하며 촛불을 들자고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가 “처음 촛불을 들었던 소녀들을 설득하고, 그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면 이 모든 미사와 시위와 집회를 끝내겠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를 마치고 다시 숭례문 방향으로 촛불시위를 시작하면서, 김인국 신부는 ‘침묵시위’를 제안했다. 만약 마음이 급해서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있으면 “꼭 끌어안아 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앞장을 서서 백합꽃을 안고 시위에 나섰으며, 참석한 신자들과 시민들 역시 침묵으로 거리를 걸었다. 비폭력 평화시위의 장엄한 이미지가 시청 앞에서 숭례문을 거쳐 다시 시청까지 보여졌다.

/한상봉 2008-07-02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