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덕진] 세계 인권 선언 발표 62주년이 슬프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과 18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였던 2008년 5월부터 서울을 비롯한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국민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 준 대단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주권을 행사하고 싶었던 그들은 바로 직전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에 의해 경찰버스에 태워지고, 진압방패에 찍혀 광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본격화되어 전국의 식당과 대형마트 정육코너를 점령했다.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집회에 놀라 두 번이나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앞에 머리를 몇 번이고 숙이며 “송구하다, 사과한다”는 말을 거듭 내뱉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시민들을 강력하고 무차별한 공권력 투입으로 잠재우는 데 성공한 후, 한결 같이 강경대응 만을 고집해 오고 있다. 경찰의 무차별한 공권력 투입의 상징이 되어버린 용산참사로 여섯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도 모자라, 엄청난 병력을 투입하여 물과 의약품 반입까지 막고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77일간 옥쇄파업을 하던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노동자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인권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명박 정부는 공무원노조 사무실을 강제 폐쇄하며 탄압을 시작했고 시국선언을 발표한 공무원노조 간부들을 무더기로 해고 했다. 일제고사를 거부한 교사들을 파면하고, 수 년전 진보정당에 소액의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무더기로 징계했고, 비록 합의는 되었지만 기륭전자, 동희오토 투쟁 등으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절규는 철저하게 무시되어 왔다.

국가정보원, 검찰 공안부, 경찰 보안수사대 등의 공안관련 부처들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기로 작정한 듯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잣대를 가지고 시민사회를 탄압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시절이었던 2006년 35명, 2007년 39명이었던 국가보안법 위반 입건자는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2008년 40명, 2009년 70명, 2010년 130명으로 매년 크게 늘어났다.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쓴 글이나, 통일운동단체의 후원행사에서 한 인사말의 내용을 이유로 소환조사를 하는가 하면, 3~4년 전에 정식으로 정부의 허가를 받고 북한에 다녀온 이들에 대해 이제 와서 간첩혐의를 뒤집어 씌우기도 한다.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기는 했지만 농림수산부 장관이 공중파 방송 피디와 작가를, 국정원이 시민단체의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 오래되어 기억도 가물가물한 집회사진을 들이대며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재판정에 세우고 장애인 할동가들에게 수 백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G20 포스터에 ‘쥐’ 한 마리를 그려 넣은 한 대학 강사는 지금도 검찰 공안부에게 배후를 추궁당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에 글을 남기거나 길거리에서 소식지를 배포하고 후원행사에서 발언을 하더라도 정부를 비판하고 정부와 다른 입장을 내세우려면 여지없이 경찰 소환장을 각오해야한다.

수 십년간 시민사회의 피와 땀으로 일정정도 성과를 만들어 냈던 과거사 청산 작업들도 모두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다. 국가의 과거사 청산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이영조 위원장은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움에서 광주민주화운동(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을 민중반란(popular revolt)으로, 제주4.3사건(the JeJu April 3 Incident)을 공산폭동(a communist-led rebellion)으로 규정하는 망언을 내뱉었다. 두 사건 모두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고 억울하게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법이 만들어졌으며 대통령이 직접 추모사를 하고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까지 한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픈 사건들임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그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고 그 예우를 국방부에 권고한 군의문사 사건들에 대해서 국방부는 논의조차 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에 복속된 국가인권위원회

한 나라의 인권을 책임져야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떠한가?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으로 만들려고 하다가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자, 조직을 20% 이상 축소하여 국가인권위원회의 손과 발을 꽁꽁 묶었다. ‘인권문외한’이란 별명을 가진 국가인권위원장이 임명되자, 그는 정권의 눈치만 보며 스스로 독립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에게 복속시켰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능과 권한을 상실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참담한 현실에 항의하며 무려 3명의 인권위원들이 사퇴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던 많은 외부전문가들 역시 ‘현병철 국가위원회’를 거부하며 국가인권위원회의 모든 직을 내려놓고 떠났다. 각계의 전문가들은 국가인권위원회 주최 심포지움과 토론회의 발제와 토론을 거부하고 있고 전국의 660개 단체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과 정권의 나팔수가 된 인권위원들은 6·15 공동선언 이후 폐지했던 대북 선전 방송과 ‘삐라’ 살포를 지원하라는 소도 웃을 권고안을 전격 통과시키며 북한인권법 제정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또 62주년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맞아 북한인권단체의 인사들을 국민훈장과 국민포장 수상자로 선정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정말 ‘갈 곳 까지 간’ 국가인권위원회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이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작태에 항의하며 세계인권선언기념일 인권상 수상 거부가 이어졌다. 인권영상공모전에서 ‘선철규의 자립이야기-지렁이 꿈틀’로 대상을 받게 된 선철규씨는 이날 “다른 인권활동가들과 싸우는 위원회가 주는 상을 받을 수 없다”며 기자회견을 열고 수상 거부의 뜻을 밝혔다. 또, 인권에세이 공모전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은총씨(영복여고 3), 인권논문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 이상윤씨, 우수상 수상자 동성애자인권연대, 대한민국 인권상에 선정된 이주노동자방송국(MWTV)과 등이 현병철 체제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는 상을 거부했다.

홍콩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시아인권위원회는 국제국가인권기구 조정위원회 (ICC International CoordinatingCommittee of National Institutions)에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등급을 A등급에서 B등급으로 하향 조정 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국제 앰네스티 본부(런던)는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를 둘러싼 암울한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하루빨리 국가인권위원회가 올바르게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데에도 무자격 국가인권위원장은 버티기로 일관하고 정부는 인권과 무관한 친정부 인물들만 국가인권위원으로 임명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는 인권이 없음이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이명박 정부에서 인권은 시크릿(Secret)이다.

이 암울한 나라에서 과연‘국격’을 논할 수 있겠는가

2010년 대한민국의 인권상황이 이정도면 이명박 정권이 유행시킨‘국격’이라는 말은 정말 무색하다. 국제사회로부터 인권후진국 취급을 받는 나라, 굴욕적으로 모든 것을 다 내주는 부당한 한미 FTA를 국민합의 없이 타결하는 나라, 휴전선 북쪽의 동포들을 겁박하려고 다른 나라의 원자력 항공모함을 서해앞바다에 띄워놓고 뿌듯해하며 전투기 폭격 운운하는 국방장관을 임명하는 나라, 동성애자들과는 같은 하늘아래 살 수 없다고 신문에 광고를 내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 ‘백년 지 악재(惡材)’가 될 것이 뻔한 4대강 죽이기 토목공사를 녹색성장이라 우기는 나라, 폭력을 앞세운 거대 여당의 날치기 법안 통과조차 정의로운 일이라고 주장하는 나라, 외국 정상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제 나라 국민들을 뒷골목으로 내쫓는 나라, 원전 공사 수주의 대가로 군인들을 중동의 사막으로 보내는 나라, 이 암울한 나라에서 과연‘국격’을 논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국가권력이 국민의사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밀어 붙이거나, 국민을 힘으로 통제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는 모든 분야 걸쳐 시작된다. 물론, 국가권력이 국민의 목소리를 우습게 알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데에는 분명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 우리가 믿었던 민주주의와 인권이 이토록 무너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예상치 못하고 경제 살리기와 뉴타운개발 신화에 눈이 멀었던 우리의 책임 역시 크다.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거스르는 국가권력을 더 이상 이 땅에서 보고 싶지 않다면,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능멸하지 않는 정권을 보고 싶다면, 그래도 믿을 것은 국민의 힘, 우리 모두의 양심과 행동뿐이다.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역사의 시계는 생각보다 빠르게 거꾸로 돌아간다는 것을 지난 3년간 분명하게 체험했다. 지금 이 시간 이명박 장로님께서 자신의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의 부와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며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다리며 온몸으로 싸워보겠다.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반드시 그날은 올 것이라 믿는다.

김덕진/사단법인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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