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성경, 다른 손에 교리서]

우리 성교회는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오시는 구세주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세 번 오신다. 한 번은 이천 년 전에 오셨고, 또 한 번은 우리에게 죽음이 닥칠 때나 세상 종말에 오실 것이다. 그리고 매일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오고 계신다. 지금도 성체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세주 예수님을 잘 맞이할 준비를 시켰다. 일반 백성들에게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그런데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루카 3,3-8 참조) 그리고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회개하라. 이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하느님의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 3,2-8 참조)하고 구세주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시켰다.

그러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와 행실에 대하여 백성들에게는,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세리들에게는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군인들에게는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고 외쳤다.(루카 3,11-14 참조)

세례자 요한의 말씀을 요약하면, 나보다 못 사는 사람들과 모든 것을 나누고, 그런 사람들도 최소한 인간답게 사는 세상과, 그런 나라와 사회를 만드는데 투신하는 사람들이 구세주 예수님을 잘 맞이하는 사람들이요, 다가오는 성탄 대축일을 잘 준비하는 사람들이고, 미사에서 성체를 올바로 모시는 사람들이며, 갑자기 올지 모를 죽음도 잘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규범인 <가톨릭교회교리서> 제1397항은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참되게 받아 모시기 위해서는, 그분의 가장 어렵게 사는 형제동포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아야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를 알아본다는 것은 그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도와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교회와 성인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줄 때,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그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단지 돌려주는 것’ 뿐이라며 동기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평신도의 대헌장인 <평신도 교령> 제8항은 ‘정의에 따라 이미 돌려주었어야할 것을 마치 사랑의 선물처럼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를 가르친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도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것은 내 것을 그들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하느님께서는 그대의 모든 죄들을 용서해주시고 이 거룩한 성찬의 식탁에 초대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더 자비로워지지 않았다.’고 꾸짖으시며, ‘그들과 나누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을 죽이는 짓이다.’라고까지 말하였다.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내 자신이 직접 나누는 방법이다. 둘째, 교무금 십일조 봉헌으로 교회를 통하여 나누는 방법이다. 셋째, 가난한 이들을 우선시하는 올바른 정권을 뽑아 세워서 더 많이 나누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살려고 다짐하는 사람만이 다가오는 성탄대축일과 갑자기 닥칠 우리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는 사람이요, 참된 신자이다.

“성체성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투신하게 한다.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참되게 받기 위해서는 그분의 형제들인 가장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아야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제1397항)

조성학/ 신부, 청주교구 증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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