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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톨릭 대안학교인가?[교육과 깨달음-변경환]

우리학교는 특성화 대안학교로서 인가를 받은 고등학교이다. 그리고 2011학년도 신입생 전형을 하여 40명 모집에 약 2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요사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대안학교의 신입생 모집 소식을 들어보면 학교마다 적지 않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것은 인가받은 특성화대안학교의 경우이다.

전국의 30여 개 각 대안학교들마다 4대1, 5대1 이상의 경쟁 속에서 아이들이 뽑히고 있다. 지원하는 아이들과 부모들은 해마다 늘어가지만 대안학교의 정원은 별로 변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경쟁률은 높아만 가고 있다. 물론 특성화대안학교들이 조금씩 늘고는 있지만 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의 증가 속도는 더 빠르다. 왜 그럴까? 이 물음을 달리 표현하자면, 왜 우리의 공교육은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핀란드 교육의 경우, ‘곧바로 진학하지 않는 자’(did not continue directly in education)제도가 있다(<핀란드 교육의 성공>, 후쿠다 세이지 저, 북스힐 참조). 이 과정은 평생교육 발상에 기초하여 사회경험을 쌓으면서 공부하는 10학년에 해당된다. 이런 과정 및 여러 특징들에 의해 핀란드는 교육의 행복함이 높고 평가도 높게 받는 교육 선진국이라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제도적이나 외형적으로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고등학교 형태와 전문계고등학교의 2+1(직업체험과정),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중요시하는 자율학교, 대안학교 위탁교육제도 등.

   
▲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일반학교든 대안학교든 청소년들은 저마다 꿈과 희망, 절망과 아픔을 고스란히 나누어 갖고 있다(사진/한상봉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5만~6만 명의 학생들이 해마다 학교 밖으로 내몰리고 있음에도 교육적 대안을 찾는 대안학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을 흡수해내지 못하고 있다.

교육적 배려가 더욱 필요한 이 버림(?)받는 아이들이 공교육에서도 대안교육에서도 갈 길을 못 찾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특성화된 교육을 하는 대안학교들은 꾸준히 늘어왔지만 학생들과 부모들의 수요에 비춰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갈 수준으로 입학의 문은 매우 좁다. 이들에게 또 하나의 좌절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우리 교육계 안에는 소위 ‘학교 부적응 학생’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술과 담배, 본드흡입과 폭력 등 눈에 띄는 아이들이 주된 부적응으로 불리고 대안학교의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필자가 바라보는 소위 ‘학교 부적응’의 다른 형태는 ‘멍 부적응’이다.

학교에서 수업 중이나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시간 죽이기 학교생활을 하고 집에 가서는 게임에만 열중하는 아이들이 있다. 꿈을 꾸고 꿈을 위해 열정을 내보이는 시기에 무기력한 생활에 젖어버린 아이들, 기계적으로 대답하고 매사에 힘이 없으며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사 다니는 아이들.

필자가 있었던 한 대안학교에서도 그랬던 아이가 하나 있었다. 예전의 학교에서는 무기력하게 학교와 집, 게임방을 전전하던 맞벌이 부부의 아들인데 처음 만났을 때에는 풀린 눈동자를 어디에 둘지 몰라 시선이 분산되던 아이였다. 그러던 아이가 그 대안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아이에게는 삶의 반전이 시작되었다. 학교생활에 의미가 생기고 꿈을 찾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 아이는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선생님과 소통의 문이 열리었고, 친구들과 공유하는 꿈 찾기 프로젝트를 만나게 된 것이다. 도보순례를 하고 방과후학교에서는 기타를 배우고 열정을 가진 친구들 속에서 열정을 배워가는 이 아이의 눈빛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인격적으로 존중을 받는 느낌이 참 좋았다는 아이의 학교생활은 그렇게 행복해졌다.

우리 교육의 입시 스트레스와 강압적인 시스템 안에서 대안학교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정답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하나의 의미 있는 돌파구로 받아들여진다면 좋겠다.

아울러 서로의 소통을 추구하고 학교의 고유한 철학을 고집해가는 대안학교도 늘고 있다. 그동안 십년이 넘게 법제화된 대안학교들은 기틀을 잡고 맏형님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아이들을 절망 속에서 구해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뒤를 이어 30여 개의 대안학교들이 행복한 교육 만들기를 구현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여전히 안타까워하는 것은 특성화 가톨릭 대안학교로서는 첫해 만들어진 청주 양업고등학교만 유일하게 자라왔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개신교 대안학교도 꾸준히 늘어왔고 원불교 대안학교들은 9개가 되어 어려움 속에 있는 더 많은 아이들을 행복한 교육현장으로 초대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몇 해 전 <가톨릭 학교교육헌장>을 재정비해서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정신은 대안학교의 철학과도 많은 면에서 상통한다. 여기서는 기존에 있는 미인가 대안학교들을 대상으로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가톨릭교회에서도 책임감을 지니고 공교육의 변화에 모델이 될 수 있는 법적으로 인가된 특성화대안학교를 늘려감이 어떨까 하는 마음이다.

일선 학교에서 내몰리는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도 좋고, 북한에서 넘어온 탈북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도 좋고,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도 좋다. 덧붙여 기존의 굳어 있는 학교교육 시스템에 새로운 반전을 주는 학교도 좋겠다.

이들이 국가의 법 안에서 온전히 보호를 받고 정식으로 학교 졸업장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사회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아이들로 성장하도록 가톨릭교회에서도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가톨릭 학교교육헌장 정신과도 가장 가까울 수 있는 특색있는 대안학교들을 늘려가도록 가톨릭교회에도 간절히 요청하는 바이다.

변경환 / 베드로, 교사, 지평선고등학교(원불교 특성화대안학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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