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 사람기행-경남거창군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는 ‘르뽀-사람기행’ 시리즈를 신설, 연재합니다. 농촌, 혹은 도시에서 느리지만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마다하지 않는 우리 벗님네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취재 보도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모습을 나누려 합니다. ‘르뽀-사람기행’ 첫 번째 취재 지역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접경지역, 산과 물이 잘 어우러진 청정지역 경남 <거창군 사람들>입니다. 지역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나누고 싶은 분들은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에 취재, 보도 요청을 해주기 바라며, 독자들의 많은 제보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과수농가, 특히 사과밭 파수꾼은 이 맘때가 되면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여름 내 땀흘려 일하는 것은 여느 농가와 다름없지만 농한기라 할 수 있는 겨울철에도 바삐 움직여야 하는 것은 겨울철 과실인 부사의 수확 때문.

경남 거창군 고제면 용초마을 ‘딸부자 농원’ 김진덕씨(42세). 전국 농민회 고제지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육질이 단단하고 과즙이 달기로 이름난 거창 삼봉산 사과의 으뜸 재배자 중 한 사람이다.

▲ 정성껏 사과를 따서 바구니에 담고 있는 김진덕 씨(사진/상인숙 기자)

2000년부터 경작을 하지 않는 휴면지에 사과나무를 심어왔다는 김진덕 씨.

"대체작물로 사과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옛날에는 대구 사과가 유명했는데 기후 변화로 사과 산지가 많이 바뀌었어요. 해발 500~600m가 넘는 곳에서 재배되는 사과의 맛이 소비자들의 입맛을 바꾸어 놓은 거죠."

거창 사과 ‘홍로’의 맛과 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2007년부터 농촌진흥청에서 주관하는 탑프루트사업을 3년 동안 병행하면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했다. 따라서 거창 사과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진 것도 사실. 김진덕씨는 물론 이 지역 사과 재배자들은 사과 재배에 열과 성을 다하며, 전문가로 구성된 자체 품평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김진덕씨는 삼봉산 사과 영농조합 품평회에서 개인 우수상을 여러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흔히 사과 재배에 농약을 많이 사용한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김진덕 씨는 저농약, 친환경 농법으로 사과밭을 가꾸고,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 흙이 살아야 열매도 살고, 그 열매를 먹는 사람들도 산다는 것이 그의 지론.

“내 아이가 먹을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마음으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고 말하는 김진덕씨는 “제초제를 쓰면 잡초는 제거되겠지만 죽은 풀이 흙을 죽이고 결국 사과나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그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풀을 깍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깍은 풀을 그 자리에 놓아두면 그것이 퇴비가 되기 때문에 땅이 살아나고, 흙이 살아나면 유기물이 풍부해져 좋은 과수를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퇴비농법은 바로 그의 땀이라 할 수 있는데. 풀을 깍아 사과 나무 아래 반듯하게 깔아주고, 그 위에 잿물이나 쌀 뜨물도 부어준단다. 제초제를 쓰지 않으면 그야말로 사람이 손으로 직접 해야하니 말이다.

그는 고제면에는 농사짓는 젊은이들이 많아 희망이 크는 듯하다고 말한다. 20~30대 젊은이들도 있고, 대부분 40~50대 중반의 장년들이 활발하게 농사일을 한다고 귀뜸해 준다. 이렇게 구성된 작목반에서는 저농약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저농약 인증’을 받았다고 자랑한다.

“저농약 인증은 대단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칩니다. 내 밭에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고 되는게 아니죠. 이웃 농가에서 제초제를 쓰면 마찬가지가 돼버리니 처음엔 남의 밭 풀도 깍아주곤 했습니다. 내 밭의 풀치기도 힘든데 처음엔 힘들었지만, 차츰 주변에서도 인정하고 제초제를 쓰지 않더라구요. 제초제를 안 치면 미생물이 생겨 땅이 기름지고 좋아지기 때문이죠.”

▲ 사진/상인숙 기자

딸 넷에 늦둥이 아들 태어나자 온동네에 잔치 벌어져

과수원지기 김진덕씨의 농장 이름은 ‘딸부자 농원’이다. 중학교 2학년 맏딸을 비롯해 초등학교 6년, 4학년, 유치원생 등 딸 넷에 돌이 지난 아들이 있다. 딸부잣집에 늦둥이로 아들이 태어나자 온동네 잔치가 벌어졌다고 한다. 졸지에 유명인이 됐다. 인터넷에도 소식이 뜨고 지역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취재를 했다.

농민회 운동을 하면서 언론과 자주 접했던 그로서도 늦둥이가 태어나고, 그 아들이 돌이었을 때 보인 언론의 반응에 상당히 부담이 되고 힘들었다고 한다. “하긴 제 나이 마흔 둘인데, 벌써 아이가 다섯이고, 특히 요즘 저출산 시대에 다산을 한 집이니 언론의 조명할 만도 하다 싶었지만, 집사람이 특히 많이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이젠 그런 관심에서 비켜나서 좋구요.”

“순리대로 사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생기면 낳고,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옛부터 아이들은 제 복대로, 제 밥그릇을 갖고 태어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다행히 아이 다섯 모두 순산을 했고, 건강합니다. 그것이 제일 감사합니다.”

▲ 김진덕 씨는 저농약, 친환경 농법으로 사과밭을 가꾸고..(사진/상인숙 기자)
넷째 딸이 막내로 쭉 귀염을 받다가 동생이 태어나 질투를 하기도 한다고 귀뜸한 김진덕씨는 아이들 자랑에 입가에 미소가 묻어난다. 행여 막내딸이 소외감을 느낄까봐 “아빠는 네가 제일 좋아.”라고 하며 사랑을 듬뿍 준단다. 그렇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누나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늦둥이 아들이 김진덕씨에게도 힘을 주는 것은 틀림없으리라.

“시골에 아이들이 점차 줄어들어 학교도 많이 폐교됩니다. 거창중학교의 분교로 있는 고제중학교도 전교생이 60명이 채 안됩니다. 교육법으로는 학생이 50명이 안되면 통폐합한다는군요. 농촌학교를 살려야 농촌도 살아나고 또 젊은이들의 귀농도 많아질텐데......사실 농촌에서 교육문제는 상당히 심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아이들이 시골에 살면서 흙을 밟고, 자연을 닮으며,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것이 좋다고 한다. 흙냄새를 맡으며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땅의 품에 안겨 인성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고 한다,

“도시에는 흙이 없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나눌 꿈이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시골로 체험학습을 오지만, 시골의 아이들은 놀아도 밭에서 놀고 산에서 놉니다. 흙은 바로 생명입니다. ”

그는 “벌써부터 둘째 딸이 농사를 짓겠다고 한다”면서 너털 웃음을 짓는다. 들에 가면 자식같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집에는 자신을 닮은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눈망울이 가득하니 그의 어깨에는 절로 신명이 묻어난다. “농사를 짓는 것은 바로 자식을 키우는 마음”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김진덕씨는 햇빛과 바람과 물에 고마워하며, 무엇보다 자신과 사과밭을 힘껏 안아주는 땅이 고마울 따름이다.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농민으로 거듭나, 우리 농업 지킬 것......

농부 김진덕, 딸부잣집 과수원, 거창군 농민회 고제면 지회 회장 등등, 김진덕씨를 따라다니는 호칭들처럼 처음부터 그가 농부였던 것은 아니다. 농촌의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에로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났듯이 그도 젊은 날, 대처로 나가 직장생활도 하고 결혼도 했다. 직장에 충실하며, 열심히 일을 했지만, 대한민국을 강타한 IMF의 여파는 그의 삶의 판도도 흔들어 놓았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땅, 거창으로 향했다.

▲ 사진/상인숙 기자
“고향으로 돌아온 뒤 처음에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었어요. 그러다 채소농사도 짓고, 포도농사도 했어요. 하지만 우리 지역에선 이런 작물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축산 쪽에 관심이 있어 축산업을 하려 했지만, 부모님은 물론 주변에서도 말렸어요.”

“사과 농사를 짓지 않고 그 때 축산을 했으면 수입 규제 등으로 한우가 각광을 받아 돈방석에 앉았을 것”이라고 웃음짓는 김진덕씨는 “그래도 사과를 선택해 지금까지 사과 나무를 가꾸고 사과를 수확하는 것이 기쁘고 즐겁다.”고 말한다.

“12~15년 산 나무가 최고의 수확을 냅니다, 가장 왕성하게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청년기인 셈이죠. 예전에는 나무 수령이 15~20년 된 것도 있었습니다만, 요즘엔 수확을 생각해 수령이 오래되면 캐내고 다시 심습니다. 단계적으로 나무를 교체하고, 관리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5천평의 과수원 중 절반인 2,500평은 10년산 나무, 나머지 절반은 5년산 나무를 갖고 있는 김진덕씨는 홍로 사과나무 500주, 부사 사과나무 800주에서 수확을 낸다. 그의 집 사과가 맛이 있고 빛깔이 고운 것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해서 만들어 낸 재배 기술 때문이라는데.

“사과 한 알이 착색되고 맛있게 크려면 보통 사과잎 75~80장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 잎들이 양분을 끌어다 열매에 공급하는거죠. 그런데 기술력이 있으면 잎이 30장만 있어도 하나의 열매를 키워낼 수 있습니다.”

사과를 크게 키우려면 열매가 적게 달리게 해야 하며, 이렇게 키운 대과들은 대부분 “제사상에 오르니 귀신이 먹는다”고 농을 하는 김진덕씨는 중간크기로 먹기 좋은 크기를 최고의 품질로 키워내려고 한단다.

김진덕씨가 사과농사에 열심인 것은 ‘농부’가 자기의 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농촌, 그리고 우리의 농업이 살아나고 꽃피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지켜내지 못한 것은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농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미 세계는 식량의 지배로 재편됐고, 10년 후 식량 대란이 온다면 우리는 식량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해 선배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습니까?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그나마 우리들이 부딪혀 작은 변화라도 끌어내고 있지 않습니까.”

경남은 지방선거에서 큰 변화를 이루어 냈다고 말하는 김진덕씨는 이제 농촌에서 후배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적 어려움이라고 토로한다. 그래도 귀농자들이 조금씩 늘어나 농촌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 뜻을 함께 한다고 다행스러워 한다.

“농사를 짓는 것은 농부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그에 앞서 우리 농업을 지켜 내 아이에게 물려주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내 힘닿는데까지 나는 내 땅을 지키고 우리 농업을 지킬 것입니다, 그것이 농사를 천직으로 삼은 나의 몫입니다.”

추수가 끝난 빈들판을 바라보며 이듬해 농사를 가늠하는 농부들. 한겨울 찬 바람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의 잉태에 분주한 대지의 삶을 닮고 싶은 김진덕씨는 오늘도 사과나무 한그루에 꿈을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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