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누구인가-호인수]

내가 나를 가식 없이 성찰해서 개과천선하는 데는 뭐니뭐니 해도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요법이 제일이다. 그것도 밍밍한 집적거림이 아니라 방망이로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아 눈앞에 별이 번쩍일 만큼 원색적인 자극일수록 효과는 더 크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난번에 쓴 칼럼 “사과해야 할 종교는 개신교뿐인가”가 그렇게 큰 분노와 반발을 일으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마감시간에 쫓겨 급하게 쓴 것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거명한 ㄱ씨의 정치 종교적 성향을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서로 얼굴을 붉힌 일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댓글들이 끝이 안 보이게 이어졌다. 이를 심각한 사태로 판단한 편집부가 급기야 그 글들을 대거 삭제함으로써 자유언론을 표방한다는 <지금여기>가 독자들의 입을 막았다는 새로운 비난을 초래했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나는 내가 평소에 앞에서는 이런 말하고(혹은 말도 못하고) 뒤에서는 딴소리하는, 천주교사제답지 못한 이중인격자로 낙인찍힌 줄은 몰랐다. 사람이 어찌 백이면 백 모든 이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며 한결같이 생각과 말과 행동의 일치를 보일 수 있겠나마는 그래도 그렇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부천의 고강동본당 교우들 가운데 자그마치 80%나 되는 분들이 나를 끔찍이 싫어하는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 줄 진작 알았더라면 교구장께 애원을 해서라도 여기를 떠났을 것이다. 싫으니 떠나라고 등 떠미는데도 진드기처럼 기를 쓰고 붙어있어야겠다는 사명감도 내게는 없을 뿐만 아니라 제발 머물게 해달라고 구차하게 애걸할 만큼 자존심을 팽개치고 사는 나도 아니다.

나의 인사이동이 다른 동료들보다 잦은 2~3년, 3~4년에 한 번씩 있었던 이유가 내 삶이 타의 모범이 되기 때문이라는 시건방진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문책성 인사였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교구장의 지시, 또는 묵인 하에 벌이는 교회의 크고 작은 사업들에 대하여 소신껏 지지나 비판의 글을 썼지만 그런 나의 행위가 교계제도를 부정하고 교도권에 반기를 드는 하극상이 된다고는 추호도 염려하지 않았다.

몰랐다. 몰라서 저지른 잘못이니 너그러이 용서하라고 한 마디만 하면 면피가 되는가? 아니다. 아니란다. 실컷 잘못해 놓고 잘못했다고 사과만 하면 끝이고, 또 똑같은 잘못을 하고 입만 뻥긋하면 되는 그런 반성과 고백은 소용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지적이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아, 어떻게 나의 진정성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 참 난감하다.

내가 남의 사표가 되는 모범생은 아닐지라도 결코 신자들에게 욕이나 해대는 자격미달의 사제는 아니라는 것을, 표리부동한 이중인격자는 아니라는 것을, 떠나라고 고사를 지내는데도 막무가내로 못 보고 못 들은 척하는 철면피는 아니라는 것을, 툭하면 잘못해서 이 본당 저 본당으로 쫓겨다니는 골칫거리는 적어도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나이 벌써 환갑이 넘었다. 이 얼마나 구차한 변명인가?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동정표를 얻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세상은 어차피 100% 진실이 통하는 투명사회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한 마디 변명도 없이 예수님처럼 의연하기만을 바란다면 그건 온통 허물과 흠집투성이인 내겐 너무 가혹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아직 수덕이 덜 돼서 내게 몽둥이찜질을 퍼부은 분들에게 엎드려 절은 못 하겠지만 새삼 깊은 묵상의 기회를 제공해준 데 대해서는 깊이 감사드린다. 진심이다. 아울러 아직도 무지렁이에 지나지 않는 나를 스승이신 정양모, 함세웅 신부님과 같은 반열에 놓아주신 배려 또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고강동 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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