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바오로 2세 "성행위는 출산만을 위해.. 절제와 금욕 필요"

최근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에이즈 예방 차원에서 특별한 경우에 '콘돔 사용'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아서 화제가 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출산을 위한 성행위만을 적법한 것으로 인정해 왔으며, 자칫 괘락을 탐닉하기 위해 성행위가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감에서 모든 피임과 피임도구 사용을 금지해 왔다. 

그동안 교회 안에서 유일한 피임방법으로 제안하고 있는 것은 배란주기를 고려한 '주기법'뿐이다. 이는 해당 시기가 올 때까지 욕정을 참아야 한다는 점에서 금욕주의를 내포한 성행위였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를 두고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 자연 주기법은 평범한 사람들, 특히 아프리카 등의 가난한 이들이 실행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방법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심각한 문제 제기를 받아왔다.     

이처럼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피임 도구뿐 아니라 피임 자체를 단죄해 왔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전적으로 출산을 위한 성행위 외에는 부도덕하다고 굳게 믿었으며, 비오 11세 교황은 이러한 금욕주의를 강조하는 <순결한 혼인>이라는 회칙을 발표하기도 했다.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조차 남성 상위가 아닌 다른 체위로 이루어지는 성행위는 모조리 죄라거나 피임은 근친상간보다 더 사악한 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구조절을 위한 산아제한운동이 거세게 일면서, 비오 12세 교황은 1951년 가톨릭 산파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자연적으로 임신이 되지 않은 기간을 이용한 '주기법'을 제안했다. 여성의 배란주기 가운데 임신이 되지 않는 날을 골라서 교합을 가지도록 권유한 것이다. 이러한 결단은 피임에 관한 가르침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까지는 피임하려는 의도 자체를 배척했으나, 이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성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발전으로 배란억제용 피임약이 개발되면서 교회는 곤혹스러워졌다. 교회에서 권하는 주기법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데, 여성의 주기는 본인의 건강이나 나이, 근심 걱정과 그밖의 다른 요인 때문에 수시로 바뀌는 만큼 누구든 배란 주기에서 실질적인 불임기간을 확인하자면 날마다 체온을 재서 도표로 만들고 달력들을 면밀하게 비교해 가며 해독할 필요가 있었다. 설령 그렇게 체크하더라도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주기법이 성행위의 의미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주기법은 정신적, 육체적 사랑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성행위를 오히려 신체의 성적 기분전환으로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 이를 테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때가 오면 여성은 짜증스럽고, 남성은 화가 난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한 달 동안 애정을 자제했다는 데서 화가 나고, 여성은 갑작스럽게 남편의 요구에 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성행위가 부부간의 사랑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러운 친밀감의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정해진 날짜에 치르는 성행위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성은 기본적으로 생식을 위해 있지만, 매번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먹는다. 하지만 생존에 필요한 분량 이상으로 먹고 마시는 행위가 윤리적으로 죄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사실 먹는 행위는 생일잔치나 성찬식 등 친교와 애정표현의 특별한 상징적 의미와 영적 의미를 가진다. 성행위 역시 마찬가지로 생식뿐 아니라 친밀감의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인간에게 요청되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바오로 6세 교황은 1968년 <인간생명>이란 회칙을 발표해 전통적 입장을 다시 상기시켰다. "교회는 자연법을 해석하며 변함없이 자연법을 지키도록 사람들을 권고하여, 어떠한 부부행위든지 인간생명을 출산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바이다"(11항)라고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후계자인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은 1979년 즉위후,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을 때, <인간생명>이 시험관 수정을 단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공적으로 수정이 이루어졌던 영국의 갓난 여자아기에게 더없이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냅니다. 아기의 부모로 말하자면, 나는 그들을 단죄할 아무런 권리가 없으며... 그들은 스스로 원하여 의사들에게 이루어 달라고 부탁했던 그 일로 실상 하느님 앞에서 커다란 공로를 세웠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발표해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요한바오로 1세 교황은 한달 남짓밖에 재위에 머무르지 못하고 죽었으며, 뒤를 이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에게서 칭호 외에는 아무것도 물려받지 않았다. 폴란드 출신의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가정공동체>를 발표해 피임을 "생명을 반대하는 정신"의 표출로 단죄했다. 교황은 성행위란 너무나 놀라운 것이어서 항상 완벽해야 한다고 말한다. 산아제한 때문에 피임을 한다는 것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행위가 완전해지려면 그 안에 절제와 금욕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바로 자신을 다스리고 자제력을 지닌 까닭에 인격체인 것이다. 실제로 사람이 자신의 주인이 될 때라야 상대방에게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사람이 성을 포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은 배우자에게 정욕을 느끼지 않고 비록 혼인을 했더라도 동정을 염원하는 순결한 마음을 지닌 채로 지낼 수 있음을 입증할 때 비로소 성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이같은 견해는 사제독신제의 필요성과 동정생활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 것이며,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성경말씀을 성적 순결과 연결지으려는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특별히 마리아의 동정성에 바치는 철저한 신심을 지니고 있었고, 그는 마리아의 동정성을 혼인한 여성에까지 확대시키고 싶은 유혹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콘돔 등 피임도구들이 출산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어, 무절제한 성행위를 부추길 위험이 있다. 그러나, 출산만을 위한 성을 강조하느라고 자연스럽고 정당한 인간의 성적 욕구를 무시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에이즈 예방 차원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가톨릭신자 가운데 자녀출산을 위해서만 성행위를 하거나 자연주기법에 의존해 피임을 하는 사람들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현실적 설득력을 잃고 있다. 또한 가톨릭교회에서는 피임도구 사용을 금지하면서도, 낙태마저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피임에 실패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경우에도 당사자로 하여금 낙태문제를 둘러싸고 극도로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결국 피임과 낙태 금지는 일차적으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미혼모 등을 온전히 구제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해 특히 여성들에게 반대받는 표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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