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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민주화 운동과 불교
버마의 민주화 운동이 2주가 넘어가고 있다. 19년 만에 다시 일어난 이번 민주화 운동에서 버마의 군부가 2~3 차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발포하였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그 결과 승려를 포함하여 최소 10여명 이상이 숨졌을 것이라고 예상되었으나, 지난 10월 1일 버마 양곤에서 들어온 소식통에 의하면 버마 군부가 수천 명의 버마 시민을 총살시키고, 살해된 수백 명의 승려 시신을 정글에 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20세기에나 간혹 들을 수 있었던 이러한 참극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자행되며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와 민족을 떠나 한 시대를 같이 사는 인간으로써 절망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버마는 오랜 기간 불교 국가였다. 지금도 버마 국민의 약 90% 정도가 불교도이다. 이런 버마에서 승려들의 존재는 버마 민중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국민의 모든 생활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불교적 가르침은 버마 사회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생활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버마의 한 환경단체 활동가의 증언에 따르면 버마의 군부가 버마의 한 지역의 숲을 불법으로 벌목하려고 들자 승려들이 법복(승려의 붉은 의복)을 벗어 나무에 한그루씩 걸어놓았더니 그 나무들은 벌목하지 않았을 정도라고 한다. 이렇듯 버마에서 불교는 종교 이상의 삶의 기준인 것이다. 군부의 삼엄한 억압정책 속에서도 이번 시위가 이렇게 크게 번져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 것도 시위의 중심에 승려들이 나선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이유 없는 공공요금의 인상으로 촉발된 이 시위는 처음에 수백~수천명에 불과하였으나, 9월 22일경부터 버마 곳곳에서 1만 명 이상의 스님이 가두에 서서 반정부 행진을 벌여 시위가 격화된 것이다. 평화행진을 주도했던 버마승려연합은 부처님 사진을 가슴에 안고 불경을 외며 행진을 벌였는데, 군부가 승려들을 해할까 두려워 여성신도들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이들을 에워싸기도 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주류 종교 중에서도 비교적 사회정치적 참여경향이 약한 불교, 그 중에서도 개인의 해탈과 깨달음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한 동남아 지역의 상좌부 불교(소승불교) 국가 버마에서 승려들이 궐기한 것은 1950~60년대부터 동서양을 불문한 전 세계 불교권 국가에서 일고있는 참여불교의 사상과 무관하지 않다. <참여불교>란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Dalai Lama), 태국의 슐락 시바락사(Sulak Sivaraksa), 스리랑카의 아리야라뜨네(A.T. Ariyaratne), 베트남의 틱낫한(Thich Nhat Hanh), 버마의 아웅산 수지와 같은 동남아의 불교 정치 지도자들이 비폭력·자유·평등·인권·생명존중과 같은 불교적 가치를 현실세계에 구체적으로 실현함으로써 인류의 고통을 제거하고 맑고 따뜻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현실참여운동이다. 참여불교 운동은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행동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과 교육을 중시하여, 단지 이시대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개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수행과 교육으로 인해 자비와 지혜로 가득 차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서원하면서 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이 이 참여불교 운동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불교 운동은 20세기 들어 불교인들이 새롭게 주창한 이념이 아니라,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과 말씀에 더욱 가까운 것이라 데에 큰 의미가 있다. 20세기 이전 주류 종교는 개인의 깨달음(구원)과 수행을 무엇보다도 중시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전 지구적 분쟁과 자본의 횡포를 겪으면서 종교적 가르침 혹은 교조의 가르침이 개인의 깨달음 추구 못지않게 사회적 정의구현을 위해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특히 모든 것은 절대 독립적일 수 없으며 끊임없이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연기사상이 핵심인 불교에서는 이러한 참여불교 사상이 더욱 무리 없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 부처님은 보리수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열반하실 때까지 산속에서 수행만 하신 것이 아니었으며, 한순간도 중생의 곁에서 떠나신 적이 없었다. 국가 간의 분쟁이 있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분쟁의 현장에서 평화적 해결법을 제시하셨다. 부처님의 중재는 단순한 문제원인의 제거나 해결이 아니라 분쟁의 당사자가 상대를 이해하고 그에 대한 자비의 마음을 갖게 함으로써 스스로 적의를 거두게 하는 것이었다.

참여불교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버마 민주화 운동의 중심 아웅산 수지도 버마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이러한 참여불교 정신의 실천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웅산 수지는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라고 말한다. 권력상실에 대한 공포가 권력을 행사하는 자를 타락시키고, 권력의 채찍에 대한 공포가 권력에 예속된 자를 타락시킨다고 진단한 아웅산 수지는 충만하고 구속이 없는 생활을 바라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갖가지 기본적 자유 가운데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며 이 자유가 모든 자유를 얻게 하는 수단인 동시에 목표라는 것이다. 아웅산 수지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며, 이러한 용기는 나는 물론 나와 함께하는 동포들의 눈에 씌워진 공포의 덮개를 벗겨주고자 하는 자비의 마음에서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불교의 경전 중 하나인 <무량수경>에서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해도 그 국토의 사람들이 미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절대로 깨달음을 얻지 않으리라" 라고 말한 보살의 서원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으며, 버마의 수만 명의 승려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버마군부의 총칼 앞에서 민주화 시위를 이끈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몇년전 아웅산 수지가 한 불교언론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을 간추리는 것으로 글을 끝맺고자 한다. 버마에 진정한 양곤의 봄이 찾아오기를...... 버마군부의 총칼 앞에서 두려움 없이 죽어간 승려들과 시민들의 귀한 희생이 값진 민주화의 꽃으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비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불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또 어떻게 살아서는 안 되는지를 가르쳐 준다. 불교가 어떤 종교라고 규정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이것은 분명하다. 자비로서 테러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밖의 많은 나쁜 것들을 극복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그러나 두려움은 버마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사람들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며, 스스로가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깨우칠 때 극복된다. 나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것을 도와주고 격려해 준다. 사람들이 충분히 자비심을 가지고 있다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이기심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만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들은 항상 두려워 할 것이다. 개인적인 필요 이전에 나라(공동체)의 필요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 모두가 이런 태도를 가지기는 어렵지만 버마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비교적 잘 수용하고 있다. 나는 때가 되면 두려움을 극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아웅산 수지) -달라이라마 방한준비위원회 자료집 “불교와 평화” 中에서 /이수연 2007.10.04

* 이수연 님은 수행과 회향, 자정과 혁신의 공동체 참여불교재가연대 총괄재정팀장이며,
前 달라이라마방한준비위원회 간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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