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손에 성경, 다른 손에 교리서]

우리의 신앙은 사도들로부터 물려받은 교회의 신앙이며, 서로 나눔으로써 부자가 되는 생활의 보화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185항 참조) 교회의 신앙은 삼위일체의 신앙이며, 삼위일체의 신앙은 통공신앙생활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통공신앙 안에서 성체를 모심으로서 하늘의 온갖 은총을 서로 나누며, 제7계명의 내용대로 생활함으로써 지상의 온갖 축복을 서로 나누게 된다.

하지만 우리 신자가 이렇게 삼위일체신앙을 통공신앙 안에서 생활화하지 못할 경우에는 우리 국민과 민족은 서로 싸우게 되고, 그런 싸움이 극에 다다른 이 한반도에서는 비참한 전쟁이 또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정권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 모두가 조금 나누었던 정책까지 포기하고 있다. 일부 상위집단이 보다 더 차지하려고 모든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깨어 있는 극소수만을 제외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이 사실을 정확히 모르고 있다. 만일에 대다수 국민들이 올바른 언론매체를 통하여 자기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은 완전한 참패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서울과 경기도 지역의 시장과 도지사는 근소한 차이지만 여당이 모두 승리하였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정치판에서의 싸움은 여당과 야당사이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볼 때 그런 것 같지만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상위 부자집단 3%와 나머지 대다수 서민집단 97% 사이의 싸움이다. 이 싸움의 성격은 모든 국민이 열심히 일한 대가로 얻은 총 국민소득을 어떻게 분배하는가, 어떻게 서로 나누는가에 달려 있다. 올바르게 나눈다면 좋은 싸움이고 불의하게 나눈다면 나쁜 싸움이 된다. 이 나쁜 싸움이 계속된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구한말의 싸움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왜 또 다시 우리나라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먼저 우리 믿는 이들의 잘못된 선택에 있다. 잘못 선택한 이유는 3%의 상위 부자 집단의 대변지인 조·중·동 신문을 아직도 구독하고, 따라서 그들의 논리에 길들여진 노예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럴듯한 보도를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집단의 기득권을 방어하려는 것뿐이요, 더 나아가 우리의 당연한 몫까지 결과적으로 독식하려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 중에서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상위 3% 부자를 위한 부자 신문을 보거나 그러한 정당을 지지하고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제7계명을 직접 범하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간접적으로 도둑질을 하는 것이다. 그런 선택과 구독은 좀 도둑이 아니라 대다수 97% 국민의 몫들을 훔치는 큰 도둑떼가 되게 한다는 말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446항 참조) 이제부터 매사를 선택할 때마다 보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올바로 바라보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가톨릭 시민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 갖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것이다.” “먼저 정의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정의에 따라 이미 주었어야 할 것을 마치 사랑의 선물처럼 베풀어서는 안 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446항)

정보는 민주적 참여를 위한 주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이다. 정치공동체의 상황과 사실들, 제시된 문제 해결책을 모르고서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 이 복잡한 사회생활 영역에서 정보와 의사소통을 위한 여러 형태의 도구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실질적인 다원주의를 보장하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적절한 법률을 통해서 이들 도구를 공평하게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어야 한다.…특별히 주목하여야 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들이 조종하고 있는 뉴스미디어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에, 정치활동과 금융정보기관들의 유착까지 더해지면 이는 전체 민주주의 제도에 위험한 결과를 미친다.(간추린 사회교리 414항)

조성학/ 신부, 청주교구 증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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