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도시 소비자가 공존하는 법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전국에서 시민들이 이명박 정부의 졸속협상에 분노하여 촛불시위를 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는 전방위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데, 광우병의 원인이 공장제 사육방법과 육식사료를 먹이는 데서 발생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농가에서 집집이 부리던 일소가 사라진 상태에서 집단적인 소사육을 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상업주의의 망령으로 미국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 안에서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소입식운동은 아직 실험적이긴 하지만 도시 소비자와 농촌을 동시에 살리는 하나의 방법으로 눈여겨 볼만하다.

자급퇴비를 만들기 위해 소입식 시작

현재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소입식 운동을 살펴보았다. 소입식운동이란 생명운동의 일환으로 유기농업을 하려는 농민들이 안정적이고 질 좋은 유기질 자급퇴비를 마련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 것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외양간에 소를 키워 밭을 갈았으나 그 일소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식용만을 위한 비육소만 남아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 비육소들 역시 공장에서 시장에 내어놓는 항생제가 섞인 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고기는 물론 그 부산물인 똥거름도 그저 안전하다고만 할 수 없으며, 유기질 사료를 먹은 소가 내어놓은 똥거름으로 퇴비를 만들어야 이른바 유기적 생명농업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광주대교구나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에서는 소입식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도시 소비자들이 집단으로 소입식 자금을 내놓아 송아지를 구입해 주면, 그 송아지를 유기질 자급사료로 먹여 키우면서 질 좋은 거름을 얻어내서 밭에 퇴비로 뿌리고, 이렇게 다 자란 소들은 도축하여 다시 입식자금을 제공한 소비자들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 소비자들은 그 쇠고기를 팔아서 남은 수익금으로 다시 소입식 자금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순환하는 것이 소입식 운동이다. 더구나 그 소에게서 얻어낸 똥거름으로 발효시켜 만든 유기질 퇴비로 키운 작물들 역시 소입식에 참여 했던 도시소비자들과 직거래하여 농촌과 도시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상생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13개 본당에서 입식 지원

안동교구 소사육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충섭(요한, 54)씨에 따르면, 현재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에 소입식 자금을 제공하고 있는 본당은 목동, 주엽동, 목3동, 화곡본동, 홍은 3동, 양천, 일산, 울산 무거, 한강, 행신1동, 화정동, 문정동, 구로본동 성당 등 13개 성당이다. 농민들은 이들을 ‘도시꽃님’이라 부르고, 자신들을 ‘농촌뿌리님’이라 부른다. 그 결과 2004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45마리 분 일억 오천육백만 원 정도가 입식되었다고 한다. 이들 입식된 소들은 설과 추석 등 명절을 맞이하여 통째로 도축해 쇠고기 나눔을 하게 되는데, 소들이 정상분만하여 두 번 정도 송아지를 낳고 나면 도축한다. 이 송아지들은 소 사육비 대신에 농민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다. 대개 사육기간은 약 42개월 걸린다고 한다.

먼저 쌍호공소에 인접한 점마을에 있는 한 농가를 방문하였다. 김동길(사베리오, 64)씨는 마침 축사를 새로 짓고 있었다. 입식 소를 키우고 있는 농가들은 대부분 축사 문제로 고민이 많다. 앞서 말했듯이 일소가 사라진 만큼 예전처럼 외양간을 소유한 농가도 드물고, 특히 마을 안에 있는 농가들의 경우엔 소사육을 위한 쾌적하고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고 말한다. 쌍호공소 주변의 농가에선 축사에 왕버들나무를 파쇄하여 뿌려놓고 소의 똥거름과 섞이게 하여 퇴비를 생산하는데, 주로 양파나 마늘밭에 뿌리고 있다. 그러나 축사문제와 더불어 농민들의 가장 큰 고민은 집에서 만들어 먹이는 자급사료다. 김동길씨는 장마철이나 겨울에 먹이는 볏짚뿐 아니라 참숯을 먹이기도 한다. 축사 한쪽엔 소죽을 끓이는 큰솥도 걸려 있었다. 담배를 피어물던 김동길씨는 “소 살 힘은 있어도 소 먹일 힘은 없다”는 말로 자급사료 마련의 힘겨움을 털어놓았다.

땅도 살리고 안전한 먹을거리도 마련하고

경북 의성의 쌍호공소 주변을 둘러보고 상주로 이동하면서 강성중(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사무국장)씨에게 소입식운동이 소비자들에게는 어떤 이익을 주냐고 물었다. 강성중씨는 “농민회에선 본당에 있는 생협과 주로 계약을 맺는데, 자신들이 입식한 돈으로 암송아지를 사서 농가에 맡기고 수시로 찾아보고 나중에라도 안전하고 확실한 고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입식한 소의 귀에는 ‘00성당 입식’이라는 패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한 해에 두어 차례 소비자 대표들과 농민들이 서로 만나서 회의를 하는데, 문제가 생기면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고 해결책을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돈이 묶여 있기 때문에 설령 본당신부가 바뀌더라도, 소입식 운동을 어쩌지 못한다”는 잇점도 있다고 한다.

한편 가톨릭농민회 안에서는 입식소의 축사 마련 때문에 고민하면서, 공동사육장에 대해서도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나, 아직은 옛날 방식대로 개별 농사에서 2-3마리씩 키우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편이다. 그리고 입식소가 낳은 황소를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황소는 암소와 달리 다루기가 쉽지 않고 송아지를 낳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학수씨가 자신이 축사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축사 문제와 자급사료 문제로 여전히 고민중이다.

상주 모동의 이학수(48)씨의 경우엔, 비교적 축사가 쾌적한 편이다. 비가림을 할 수 있는 외양간이 있고, 그 옆에는 좀 헐겁기는 하지만 풀을 뜯으며 소들이 놀 수 있는 공터도 있다. 가끔 소들은 울타리를 벗어나 사과밭에 가서 놀기도 해서 골칫거리긴 하지만, 방법을 찾고 있다. 이들 농가들은 대개 소 사육이 주업이 아니라 과수원이나 밭에 쓸 퇴비를 얻기 위해서 소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소를 키울 수 있는 시설이 절박하다. 자가소를 포함하여 5마리의 소를 키우는 이학수씨는 요즘 주로 풀을 베어 먹이로 준다는데,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7-8푸대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겨울엔 보릿겨나 볏짚이 주된 사료다.

이학수씨는 포도밭에 그동안 유박비료를 뿌리다가, 입식소 사육을 시작하면서 소의 똥거름을 왕겨에 섞어서 밭에 뿌리기 시작하였는데, 그 때문인지 최근엔 잎이 큰 작물에 많이 번지는 갈밤병 등이 많이 근절되었다고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유박비료 등은 질소량이 많아서 웃자라면서 맛도 떨어진다고 했다.

소입식운동이 농촌을 살리고 안전한 먹을 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물론 아니다. 그리고 이 운동 역시 아직은 실험적인 상태에 있다. 농촌은 이미 도시문명이 낳은 상업주의에 많이 젖어 있으며, 예전 방식으로 생명농업을 하기에는 농민들의 연배가 지나치게 노년층에 집중되어 있다. 젊은 일꾼들이 귀농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귀향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가톨릭농민회에서 바라는 바 역시 그러한 것이다.

/한상봉 200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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