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삼인출판사 (오창익 지음/ 조승연 그림)

이 글은 서평차원에서 쓰기 보다는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하여 지은이가 들려주는 에피소드에 대해 생각해볼 시선을 주고 싶다.

이 책은 인권 운동가로서 일정하게 편향된 시각이 반영되긴 하였지만, 한국사회가 지양해야 될 내용에 대한 글만을 전개하고 있다. 오창익만의 시선으로 특이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감성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연신 끄덕이는 고개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것은 우리나라 평균 성인에게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시각에서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현상의 이면을 비집고 들어가 생각의 거리를 던져준다.

사실 난 '종교'에 관한 이야기에 더 주목하고 싶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저자 역시 예수를 믿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지만 한국‘개신교’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더욱이 작가 자신이 종교인임을 배제한 채 인권운동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이 ‘객관적’인 시선은 개신교의 현재에 대한 정곡을 찌른다. 작가가 거침없이 말하는 개신교의 특이한 현상은 어떤 것일까?

1. 술 먹고 담배 피우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

저자는 세계적으로 술과 담배를 금하는 기독교는 한국 개신교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난 국내를 벗어나본 적이 없어서 해외의 개신교는 어떤 모습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예수가 살던 시대의 예수공동체와 비교해 보았을 때 전혀 다른 길로 이탈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학자들이 19세기 미국에서 전래된 한국 개신교의 태생에 관해 책에서는 “미국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왔을 당시, 늘 술에 취해있고 노름을 즐기는 형편없는 나라였다. 입교 과정에서 금주와 금연을 강조했던 것이 한국 개신교의 전통으로 남게 된 것이다”고 한다. 기독교인이 되면 금주와 금연은 당연시 되어야하는가의 물음에 대해 개신교회에서는 속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왜 교회는 명쾌한 대답대신에 “성서에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얼버무리고 있는 것일까? 한국에 개신교가 전파되면서부터 ‘성경’은 바리케이드 역할을 하고, 억지스러움은 나날이 고질병이 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2. 학교를 교회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지난 2004년 대광고등학교 학생회장이 종교의 자유를 외쳤던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학칙이 존재하는 곳, 채플을 패스하지 못한 자는 성경을 옮겨 적는 레포트를 내어야 졸업이 가능한, 그것도 졸업장 대신 수료증을 주는 학교도 있다. 그곳이 사립학교다. 믿음이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학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같은 학교에는 종교의 자유를 가질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본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컴퓨터가 지정해주는 곳으로 가야하는 고등학교의 경우는 어리다는 이유로 이들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묵살시키기를 일삼는다. 참 흥미로운 것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강요’하는 학교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종교의 자유는 자신이 믿는 종교예식에 참석하는 자유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에 의해 종교를 강요받지 않을 자유도 포함됨을 인식해야한다.

3. 네온사인 십자가

우리나라 어딜 가든 꼭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붉은색 십자가다. 교회의 상징인 십자가는(간혹 하얀색 십자가가 있기도 하다) 365일 밤하늘을 밝히고 있다. 이 광경에 대해 저자는 한국의 도심 야경을 높여 주는데 공헌을 하고 있는 교회의 십자가는 예수가 죽임을 당한 무자비한 형틀로 참혹한 고통은 외면하고 영광만을 드러내려 애쓰고 있다고 말한다. 왜 그들은 무조건 크고 높게 십자가를 세워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높이려 하는 것일까?

높은 십자가를 세우고,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네온사인으로 밝혀두는 목사들의 이유는 하나로 통일된다고 보여 진다. 세상을 구원하는 표지를 높이 세우는 것은 신앙인의 도리라는 것이다. 사실 십자가는 예수의 고난과 그 고난 속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고통이 담겨있는데 예수의 고난은 생각지도 않고 예수로 하여금 인간들 자신이 드높아지려는 모습, 참 이상하다.

4. 예수천국, 불신지옥

“주 예수님을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아멘.” 거리 곳곳에서 많이 들어본 말일 것이다.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예수를 믿는다? 죽어서까지 편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 때문에 하느님은 열어놨던 천국 문을 닫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기독교인들은 하지 못한다.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고,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분이니까 그럴 리가 없다. (내가 하느님이라면 당장에라도 천국 문을 걸어 잠그고도 남았다.) 착하게도 다른 사람의 구원까지 생각해주는 기독교.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여덟 자 구호는 한국에서만 귀 따갑게 울려 퍼진다.

종교의 선택은 내면의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하지, 누군가의 강요에 따른다면 거짓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개신교의 선교활동은 지나치게 공세적이다. 그것이 당사자에게는 생명을 살리는 복음전파일수도 있지만, 종교에 대해 별 관심 없던 사람들에게는 기독교라는 종교집단에 대해 혐오감을 일으키거나 정신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경우도 꽤 있다. 종교의 자유에서 선교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선교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5. 무감각해진 인권감수성을 깨우자!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모든 소재들이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익숙해져 있는 문화(?)들을 단 하루라도 접하지 않으면 허전할 정도로 당연시 되는 풍경들. 그렇다면 이 작가는 왜 이토록 보편화 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조명한 것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인권감수성에 예민해져야함을 시사하고 있다. 익숙함으로 포장되어 무감각해진 인권감수성으로 인해 무심코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권은 타인에 대한 존중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개념이다. 작가는 인권운동가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해 봤을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현실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황당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인권 감수성'이 한 단계 높아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은하(제3세계 그리스도교 연구소 및 KSCF 회원. 성공회대 신학과 재학중) 200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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