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누구인가-호인수]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김진호 목사는 개신교를 일컬어 “사과해야 하는 종교”라 했다(한겨레신문 10월 19일 자). 한국의 개신교가 “무례한 자”들이 대표하는 교회가 됐다는 거다. 그는 겸허하게 스스로를 “영향력도 없고 유명하지도 않은 잔챙이 목사”라 했지만 실은 개신교에서 몇 안 되는 진보적인 신학자로 고 안병무 선생의 맥을 잇는 주목받는 인물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오랜만에 구역미사 요청을 받았다. 구역은 너무 커서(평균 80~100세대) 성당에서 하는 미사와 별반 다를 바 없으니 작은 단위의 반미사를 계획하고 시작한지 3년이 넘었으나 오라는 데가 없어 근 1년 전부터 개점휴업(?) 중이던 터라, 나는 미사 보따리를 챙겨들고 신이 나서 구역장 댁에 들어섰다. 다른 구역에 비해 노인이 적고 사오십 대가 많아 성가소리도 우렁찼다. 미사는 자연스럽게 회식자리로 이어지고 떠들썩하게 무르익어갔다. 동네에서는 드물게 넓은 집이니(한 30평쯤 될까? 우리 동네는 18평 미만인 집이 전체 가구의 80%를 차지한다.) 거실만도 25명이 모여 앉기에 넉넉했다. 집주인 ㄱ씨는 교우들에게 연신 막걸리를 권하며 즐거워했다.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ㄱ씨 왈, “신부님은 강론 시간에 정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십니다.” 술이 과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표정이 굳어지거나 목소리가 커진 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박정희 대통령 때, 경부고속도로를 놓지 않았습니까? 그때에도 야당들이 난리를 쳤는데 반대를 무릅쓰고 해놓고 보니 나라 발전에 얼마나 큰 공을 세운 겁니까? 저는 대통령을 우리의 부모처럼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잘 살게 해주겠다는데 왜 아우성입니까? 4대강 사업해서 일자리 창출하고 좋은 나라 만들겠다는데 왜 반대합니까? 정치는 대통령이 하고 우리는 기도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분 딴에는 벼르고 벼른 조심스런 지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속은 상하는데 한 마디로 대꾸할 말이 없어 한숨만 나왔다. 언제까지 이런 말을 들으며 살아야 하나? 어디부터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이건 정치문제라기보다 생명문제, 계급문제라는 데부터? 종교도 신앙도 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지금여기를 떠나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기본부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펴낸 ‘사회교리’책을 사주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차근차근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려나? 천만에! 전에 많이 해봤지만 거의 다 소용이 없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가리려 한다. 토론이 될 리 없다. 한번 따져보자고 무릎걸음으로 바싹 다가앉으면 평생 원수가 될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더라도 나는 명색이 사제니까 사람보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지 않겠냐며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봐? 말처럼 쉽지 않다. 이건 분명 교회 안팎에서 극우 보수 세력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겠는데 그렇다고 아예 상대를 안 하자니 그것도 사제로서는 못할 짓이다. 자칭 가톨릭뉴라이트나 어버이연합도 아닌 것을.

ㄱ씨는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분이다. 평소에 점잖고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구역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대부분의 본당에는 이런 분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사목위원도 하고 구역장 반장도 하고 레지오마리애도 한다. 없어서는 안 될 분들이다. 이게 본당의 현실이다.

괴로워하는 사제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제생활 30년을 훌쩍 넘긴 나도 다르지 않다. 예수는 자캐오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지만(루가19,9) 예수의 교회는 거듭 실패하고(또는 포기하고) 그 대신에 슬그머니 하느님과 맘몬의 공생을 꾀한다. 바벨탑이다. 불안하고 부끄럽다. 김진호 목사의 말대로 과연 우리 시대에 사과하고 달라져야 하는 종교는 개신교뿐일까?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고강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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