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8] 동행-유다와 예수

▲ 동행-유다와 예수
짙은 녹색빛을 띈 요르단강이 구불거리며 흘러가는 모습이 멀리 내려다 보였다.
강주변의 우거진 숲 언덕은 강변 양쪽으로 강을 따라 구불구불 검은 색을 칠해 놓은 듯 했다. 그리고 숲 언덕 너머로 광활한 사막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강에 가까워질수록 물비린내가 진하게 풍겨왔다. 강가의 숲속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떼를 지어 이야기를 하거나 휴식을 하고 있었다. 요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혼자서 조용히 걷고 있는 순례자는 물론 가족단위 혹은 마을단위로 무리를 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환자들을 들것에 메고 오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구경하면서 강가에 도착했다. 너른 강변 한쪽엔 아파스 바위가 높이 솟아 그늘을 만들었다. 작은 키에 깡마른 이가 무릎까지 차오른 강물에 서서 사람들의 온몸을 물에 담그는 세례의식을 해주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저이가 요한이 분명했다. 그의 제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노인들을 부축하고 어린아이들을 달래며 질서를 유지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파스 바위 밑에서 숲까지 일렬로 줄을 서 있었다.

십여일 전 이곳에 먼저 온 동료 몇이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모두 가느다란 흰띠로 허리를 묶어 요한의 제자임을 표식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이 며칠 사이에 맑게 변해 있었다. 저녁식사 후에 숲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들은 제각각 할 일이 있는지 되돌아갔다. 그는 일단 이곳 숲속에서 오늘 밤을 지내고 내일 날이 밝으면 요한의 설교를 들어 볼 참이었다.

저녁이 되자 요한의 제자들이 강가에 큰 솥을 걸고 불을 지폈다. 솥에 물과 통밀을 쏟아 붓고 숲속에서 채취한 푸성귀들을 썰어서 함께 넣었다. 그리고 강가에서 금방 잡은 물고기를 토막 내어 넣었다. 사람들이 밥그릇을 들고 솥단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유다도 봇짐에서 밥그릇을 꺼내들고 맨 끝에 줄을 섰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을 흘리면서 끓는 솥을 큰 주걱으로 휘젓고 있는 젊은이도 허리에 흰띠를 메고 있었다. 유다의 차례가 와서 밥그릇을 내밀었다. 젊은이가 죽 한 주걱을 퍼서 그의 밥그릇에 담으면서 ‘야훼께 영광’이라고 말했다. 유다도 ‘야훼께 감사’라며 응답했다.

그토록 많은 군중들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이 모두 차분했다. 밤이 되자 제자들 몇이서 등불을 켜고 숲속에 자리를 잡은 군중들 사이를 돌았다. 그들이 들고 있는 바구니엔 여러 가지 풀잎과 뿌리, 열매들이 종류별로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누워있는 환자들의 병세를 묻고 그에 알맞은 잎이나 뿌리들을 짓찧어 상처에 발라주기도하고 먹이기도 했다. 어떤 제자들은 환자를 반듯이 눕혀놓고 가슴이나 배를 쓸거나 손가락으로 눌러서 치료를 했다. 그리고 양손을 비벼서 열이 나는 손바닥으로 환자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제자들의 그런 모습에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진정성이 우러나왔다.

잠시 후에 아까 만났던 동료들이 유다를 찾아왔다. 시몬이 자리를 잡고 앉더니 그에게 물었다.
‘어떤가?’
‘그래....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군’
‘그렇다네. 우리는 뒤늦게라도 이곳에 오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 한다네. 그런데 자네 왼쪽 뺨에 상처는... 뭔일이 있었는가?’
‘예리고에서 이곳으로 오는 숲속에서 옛동지들과 잠깐 조우를 했네. 별것 아니네’
‘그럴 것 같아서 자네를 기다리는 동안 걱정이 많았네. 요한선생님께 자네의 이야길 했네. 며칠 전부터 자넬 기다리고 있는 눈치일세’

▲ 그림/홍성담

유다가 봇짐을 베고 누웠다. 선선한 밤바람이 물비린내와 함께 불었다. 그는 이곳으로 오길 백번 잘했다고 생각했다. 번잡하고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도시를 탈출한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했다. 관리나 세작들의 눈을 피해 매일매일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이골이 났다. 미래의 전망을 이미 상실한 긴장감은 사람을 점점 황폐하게 만들었다.

전망을 잃은 조직은 내부에서 충돌하기 시작했다. 갈릴리 호수 남쪽에 대상들의 중요한 상업루트인 부유한 도시 펠라에서는 2년 전에 예루살렘 지도부와 지역조직이 서로 무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와 친분이 있었던 펠라의 조직책이 예루살렘 지도부에서 내린 결정을 공개적으로 반박하자 지도부는 비밀리에 자객을 보내 펠라 조직의 중요한 동료들을 살해했다. 겨우 목숨을 건진 펠라 조직책은 다른 곳으로 피신한 후에 그 날 사건을 지휘했던 예루살렘의 지도부 동료를 습격하다가 칼에 맞아 죽었다. 젤로트의 모든 지역조직들이 긴장했다. 로마당국이나 헤로데 측은 이 살인사건을 계기로 젤로트를 궤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단순한 강도사건으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그는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예루살렘 지도부를 더욱 의심했다. 그들은 헤로데 측과 보이지 않는 거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떤 극점과 그것의 상대적인 극점과는 언제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서로 똑같은 짓과 생각을 한다는 것이 그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진리였다. 도시는 사람들의 관계가 만들어 놓은 이러한 구차스러운 비밀이 몰래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 똬리를 유지하기 위해 늘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그 후로 동료들 사이에서 조직내부의 블랙리스트가 풍문으로 떠돌았다.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춘 동료들도 생겨났다. 그의 의견이 매사안마다 젤로트 지도부와 부딪치자 그들은 그를 점점 따돌렸다. 그리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부쩍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조직에서 떠날 것을 심사숙고한지 반년 만에 결행을 했던 것이다. 지도부의 칼날은 언제든지 은밀하게 자신의 등을 노릴 것이다. 이것도 모두 자신이 그동안 뿌린 인연의 결과다. 젤로트와의 질긴 인연은 그렇게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하늘을 바라보고 누워서 그런 생각을 하던 유다가 진저리를 쳤다.

바퀴벌레와 쥐와 구정물과 서로 뒤섞여 살아가는 도시의 불빛이 산 너머 저 멀리서 가물가물하면서 그의 피곤한 눈꺼풀을 눌렀다.

<계속>

홍성담
/ 안토니오, 화가

 

 홍성담은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1999년 개인전 ‘脫獄’을 서울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그리고 2004년 개인전 ‘假花’를 학고재화랑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으로 일본, 한국, 독일등에서 전시했으며, 2010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초대전 ‘흰빛 검은물’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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