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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반대말[시사비평-김유철]

죽임 아닌 살림

월간 <살림>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그 잡지가 주부들이 보는 것으로 오해했지만 뜻밖에도 그 잡지는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나오는 월간지의 이름이었다. 1970년대 동시대인들에게 민중신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안병무선생님이 설립했던 연구소에서 나온 책으로 2002년까지 출간됐었다. 그에게 7,80년대 상황신학으로서 민중을 해석하면서 집안을 운영, 관리하는 의미의 살림을 넘어선 죽임의 반대인 ‘살림’. 머물러 있는 명사임과 동시에 내면의 움직임을 간직한 동사로서의 ‘살림’을 전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살림’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남성보다는 여성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 기륭 권명희 열사

2년 전 가을 경기도 부천에서 한 여성이 백혈병으로 숨졌다. 그리스도교의 표현으로는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이 슬프고 억울한 죽음이었다. 1963년생이니 우리 나이로는 당시 46살의 아직 한창 나이이고, 14세와 15세의 딸과 아들 하나씩을 이 땅에 남겨두고 가는 그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었다. 그 여성은 이른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2004년 6월 10일 우량기업 기륭전자에 입사한 그녀는 2006년 1월 31일 휴대폰 메시지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바에야 입사와 해고는 회사의 권한이라 할지라도 절차가 있는 것이고 모양이 있는 것이다. 고약한 놈들!

실용성 ‧ 유연성 ‧ 공정성이란 누구를 위한 말일까?

언젠가부터 ‘비정규직’이라는 빌어먹을 신흥 신분제도가 노동자들을 옭아매고 있다. 하기는 이제는 그것이 일반 회사는 당연하고 관공서, 학교와 종교인들이 운영하는 기관에도 만연하고 있다. 비정규직에 의한 실용적(?)인 노동자 관리가 마치 새로운 경영기법인 냥 각계각층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살림’이 아니다. 나만 그리고 우리만 산다고 살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죽임의 말일 뿐이다. 남들의 생존 앞에 허투루 갖다 붙인 ‘실용적’이란 표현이 모자라 ‘유연성’이란 미끌미끌한 단어가 나오더니 갑자기 튀어나온 ‘공정한 사회’란 말 앞에서 결국 할 말을 잃는다.

“Rich Together, Rich Korea!”

영어로 된 이 말은 국내 한 금융회사의 구호였다. 세계유일강국으로 추앙받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몇 년 전부터 불안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도무지 못 알아들을 용어만 나왔다. 아무리 들어봐도 무언가 안 좋은 경제뉴스임에는 틀림없는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둔한 내 머리만 탓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를 위해서 한 금융회사가 일간신문의 전면광고를 통해 정리(?) 해 주었다.

미국 금융시장에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리먼브러더스는 파산신청, 메릴린치는 매각되었습니다. 이미 JP모건에 매각된 베어스턴스증권을 포함하면, 미국의 5대 메이저 투자은행 중 3곳은 사라지고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두 투자은행만 남게 되었습니다. 은행권도 사정은 비슷하여 미국 지방은행 11군데가 파산하였으며 … 상업은행도 BOA와 JP모건체이스 등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 엘런 그린스펀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도 “미국은 백년 만에 한번 있을 금융위기에 직면했다. 더 많은 대형 금융기관들도 이번 위기 중에서 무너질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일등기업은 불황을 즐기는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즐길 수 있는 일등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면, 미래에 찾아올 엄청난 이익 증가를 그려보며 일등기업과 함께 불황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가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는 것은 모두가 두려워하고 공포에 쌓여 있을 때가 가장 좋은 투자의 시기라는 점입니다. … 두 눈을 크게 뜨고 현재의 공포를 미래의 기회로 바꾸는 투자의 지혜 … 세상의 변화를 축제로 바꾸는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기륭전자 앞 권명희 조합원 영결식에서(사진/한상봉 기자)
여성의 반대말은 죽임이다

한마디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란 말이다. IMF시절에 “이대로”를 외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를 외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것을 ‘축제’라고 부르니 아뿔싸! 이 땅은 이미 육식공룡들의 쥐라기 공원이다. G20을 개최하는 선진국 대한민국의 2010년 최저임금은 8시간기준 시급 4110원이다. Rich Together, Rich Korea라고? 눈물이 난다. 아니 진저리쳐진다.

여성의 반대말은 남성이 아니라 죽임이다. 여성의 반대말은 불평등이며, 파괴이며, 억압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살림을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여성의 몸을 통해 하늘의 생명을 받을 때도 열 달의 정성과 기도가 필요하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살림이야 하물며 말해 무엇 하랴. 가을이 깊은 만큼 마리아 성모님이 그리운 날들이다.

 

김유철 /시인.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지부장.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교회비평집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2009 리북)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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