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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발자취를 따라서> 연재를 시작하며


남편 베드로와 제가 많은 성인들 중에서 유독 성 프란치스코 발자취를 따라가기로 결정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시대에 우리를 포함한 한국교회가 세상의 징표로서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가를 반성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난함을 마음과 몸으로 체험하며 살아갔던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의 삶을 나침반으로 삼아 오늘 우리 일상을 살아가고자 함이었습니다.

일상사에 묻혀 수시로 그 나침반을 집 안 한쪽 구석에 방치해 놓을 지도 모르지만 종종 청소하다가 깜짝 놀라 미안해하고 그 위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무심한 우리 자신을 다시금 반성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이 변변치 못한 글(최금자)과 사진(김용길)을 접하면서 부족하고 가난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우리 마음을 읽어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우리의 첫 공식 작업, 즉 베드로의 첫 개인사진전과 남편을 위한 저의 첫 사진전시회 기획 일로 분주한 마음으로 너무 늦게 이 글을 올리게 됨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 성지는 프란치스코 부모님, 아버지 베드로 디 베르나르도네와 어머니 마돈나 피카 집에 세워진 성당이다.

프란치스코는 약간은 혁명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몽상적이고 열정적인 청년이었다. 청년 프란치스코는 문밖에 혹은 길거리에서 기다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 식사 때에 자신의 몫에서 빵과 버터를 따로 떼어두었다.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감은 그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아버지 상점에서 비싼 옷감을 팔고 있느라고 정신이 없던 순간에 한 거지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적선을 청하려고 다가가자 거칠게 그를 내쫒았다. 프란치스코는 그 거지가 가게를 나가려고 하는 순간 그를 가혹하게 대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는 “만약 이 세상에서 위대한 그 누구의 이름으로 나에게 청했다면 기꺼이 그것을 들어주었을 것이 아닌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나에게 도움을 청했던 사람을 어떻게 내가 내쫒았단 말인가?” 이 사건은 프란치스코의 내면을 흔드는 하나의 성찰이었다.

우리는 새 성당에서 청년 프란치스코가 부뿐 아니라 영광과 품위를 얻고자 기사가 되려는 소망을 읽을 수 있다. 그 시대에는 군대와 전쟁 승리를 통해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아시시를 통치한 독일 주둔지를 공격하는 반란군에 참여하였으며 페루지아와의 전쟁에 군인으로 참여하다가 참패하고 포로로 잡혔다.

어느 날 무기와 깃발이 가득한 성에 대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이것이 모두 너의 것이다.’ 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영광을 얻고자 집을 떠나 구알티에리 디 브리엔네 군대에 들어갔다. 스폴레토에서 병을 얻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목소리를 듣고 되돌아온다. 성에 대한 꿈은 전혀 다른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이 경험으로 인해 프란치스코는 평화란 ‘모든 이들과 모든 피조물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며 그것들과 친화하는 행동’임을 되새기게 되었다. 이때부터 프란치스코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의 전령인 성인으로 살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아시시 여자 그 누구와도 진정한 사랑에 빠져보지 못한 프란치스코가 어느 날 저녁 식사 후에 거리를 거닐다가 그 어느 여자보다 아름다운 가난의 성모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성모님은 프란치스코의 전 삶을 성화의 길로 인도하셨다. 이 위대한 체험 후에 프란치스코는 현재 ‘새 성당’이 된 부모님 집에서 나왔다. 새 성당이 중요한 까닭은 이곳에서 성인으로서의 시발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화창한 날 프란치스코는 말을 타고 산책을 하던 중 거리에서 나병 환자와 마주치게 되자 잠시 머뭇거렸으나 피하지 않고 그를 품에 안고 나서 흥분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는 나병에 전염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였다. 이 얼마나 칭찬할만한 일인가.

프란치스코는 두려움 없이 사랑이 충만한 상태로 존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쓰게만 느껴졌던 그것이 영혼과 육신의 부드러움으로 나를 회개시켰다.” 라고 자신의 유언장에 기록하였다. 이 집을 나와 다시 되돌아 왔을 때는 새로운 삶의 에너지로 충만하였다.

다미아노 성인처럼 “프란치스코, 가서 너도 보다시피 허물어가는 내 집을 수리하여라.” 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이 초대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아버지 소유의 많은 천을 폴리뇨 시장에서 판 돈으로 이 성당을 수리하기 시작하였다. 똑똑한 아들을 유능한 상인으로 키우고자하는 아버지의 소망과는 반대로 가난하고 세상의 부와는 단절한 삶을 살고자 하는 프란치스코가 정면으로 부딪히기 시작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에 의해 작은 광(새 성당 안쪽에 위치한, 사진참조)에 감금되었다.

그러나 이미 성인으로 탄생한 프란치스코를 어머니가 풀어주었다. 그는 자신을 고소한 아버지의 모든 유산을 아시시의 주교 앞에서 포기하였다.

그 날 이후로 프란치스코는 집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이제 성당으로 변한 그의 집은 아시시에서 성인 프란치스코가 아닌 프란치스코에 대해 말하는 한 장소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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