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영화 파블로의 필름창고
소년에서 혁명가로![파블로 필름창고-모터사이클 다이어리]

1997년에는 게바라 사망 30주년을 맞아 게바라의 손목 잘린 유해가 발견되어 쿠바로 왔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게바라는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으나 〈체 게바라 평전〉이 발간된 즈음인 2000년부터 우리의 확고부동한 슈퍼스타가 되어버렸다. 정치적 이념과 상관없이 그의 이미지는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전락해버렸는데, 자본주의를 타도하고자 했던 이조차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자본주의의 그 위력에 놀라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게바라는 낭만적 혁명주의의 전형으로 우리 시대에 내세울 만한 영웅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혁명가로서가 아니라 그가 혁명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여정을 그린다. 게바라, 에르네스토 혹은 푸세 그리고 알베르토는 라틴 아메리카 일대의 여행을 계획하고 모터사이클 1대에 동승하여 여행을 떠난다.

먼저 영화 속에 펼쳐지는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 라틴 아메리카의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 주로 영화는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에 초점을 맞춘다. 각 나라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유럽적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 넓은 초원에 가우초가 말 달리는 광활한 아르헨티나. 구리가 묻혀 있으리라 추정되는 광산을 배경으로 한 칠레. 안데스 산맥 그윽히 자리한 페루. 이토록 광활한 대자연과 더불어 여행 속에서 체가 경험한 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들이다. 칠레에서 만난 죽어가는 한 할머니, 도망 다니다 광산으로 흘러간 공산주의자 부부. 페루에서 만난 자기 땅에서 쫓겨난 수많은 원주민들, 산 파블로 나환자촌의 나환자들. 이들의 삶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광활한 라틴 아메리카는 1492년 콜럼버스 이후 스페인의 식민화, 독립 이후의 극도의 혼란과 폭정, 미국의 신식민화 등 혹독하고 비극적인 역사적 경험으로 얼룩진 땅이다. 우리가 이 지역을 보는 시선이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라틴 아메리카 하면 쿠데타, 마약, 자연재해, 정치적 혼란, 외채위기 등의 이미지가 떠오를 정도로 이 지역 사람들은 힘들게 살아왔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로 대표되는 ‘마술적 사실주의’는 이처럼 뼈 아프고 복잡하게 전개되었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배경으로 태동한 문학적 경향이다.

게바라의 민중과의 만남은 구체적 개인에서 이 지역 역사와의 만남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만남들이 아무런 부족함이나 걱정 없이 살았던 게바라의 눈을 바짝 뜨게 한다. 신영복 선생이 말씀하셨던 ‘관계론’처럼 게바라 자신의 ‘존재’에서 라틴 아메리카 모든 민중과의 ‘관계’로 나아간다고 할까. 이제 게바라에게 이들은 쿨하게 바라보거나 지나쳐 갈 수 있는 타인들이 아니다. 자신의 소중한 형제이자 친구요, 친밀한 이웃이며 심지어 자기자신으로 다가온다. 게바라 자신이 “내 말을 들으라. 가히 혁명적이라는 것은 사랑의 위대한 감정에 이끌려 일어난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타인을 향한 연민과 연대의 감정은 그를 혁명가로 이끌어갔다.

   
 


그 고물 모터사이클은 왜 이리 자주 엎어지는지. 나중엔 폐차처리하여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아니라, ‘도보 다이어리’가 되고 마는데, 영화는 진지함과 경쾌함을 오가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흘러간다. 베네수엘라에서 체는 알베르토와 헤어지고, 현재 아바나에서 사는 실제 알베르토의 모습,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들, 실제 그들이 여행 중에 찍었던 사진들로 채워지면서 영화가 저물어간다.

자기자신밖에 바라볼 수 없던 어떤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들려오던 하늘의 소리에 귀 기울여 전혀 다르게 살아가듯. 천진난만한 어린 게바라는 민중들과의 만남 속에서 성장해가고, 더 이상 예전의 게바라일 수 없었다. 게바라는 그 여행 속에서 만난 민중들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이후 이어갈 삶의 윤곽을 잡아간다. 이처럼 성장해가고 혁명가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게바라의 삶의 여정을 영화가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장의 힘이 게바라를 우상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게바라 삶 자체가 지닌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인 요소가 여전히 전 세계 젊은이들의 심장을 끓게 한다. 이런 게바라에 대한 열광에 찬물을 끼얹는 뒷이야기들도 적지 않게 나오기도 하지만 이젠 텅빈 기표가 되어버린 게바라의 그 매력적인 이미지에 대한 열광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다.

게바라는 이렇게 멋지고 비장한 시 한 편을 남겼다.

   
▲ 게바라의 최후

먼 저편―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들에게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하나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줌도 안 되는 독재와 제국주의 착취자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김지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객원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김지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