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방곡곡에서 6.10 촛불 대행진

절묘했다, MB정부는. 누가 그런 꼼수를 생각이나 했을까? 6월 10일, '100만 촛불 대행진'의 날이 밝았다. 시민들은 들뜬 기분으로 저녁을 기다렸고, 시민보다 어리석은 경찰과 정부는 긴장하였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는 난데없는 대형 컨테이너 박스가 설치되었다. 62대의 컨테이너를 위아래로 2단으로 쌓고는 분리되지 않도록 용접까지 한 뒤에 강철 와이어를 앞뒤로 묶은 뒤 도로에 금속팩을 박아 고정시켰다. 컨테이너 박스에는 1개당 4톤이 나가는 모래주머니로 가득 채웠다. 컨테이너 벽에는 시민들이 오르지 못하도록 윤활유(그리스)를 발랐다.

외침에 대항하는 성벽이 아니라 자신을 청와대로 보낸 국민이 대화 좀 하자고, 국민의 소리에 귀 좀 기울이라고, 서로 소통하자고 외치는 소리에 오히려 불통의 벽을 쌓아올리는 대통령. 정말 절묘하고도 기가 막힌 장벽이 아닐 수 없다.

저녁 6시, 지하철 5호선은 광화문에 서지 않는단다. 하여 종로 3가에서 광화문 쪽으로 걸어올라 갔다. 종로 3가 쪽은 평소와 별반 다른 기미가 없다. 종로 2가쯤 가니 성균관대 학생들의 대열이 눈에 보였다. 오늘 촛불 행진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주기를 독려하고 있었다. 길 건너편으로는 아고라 깃발을 든 무리가 종로2가에서 종로3가로 행진해 오고 있었다. 그들 역시 잠시 뒤에 있을 6.10 촛불 대행진에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 같았다. 이쪽과 저쪽에서 반가운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종로 2가 지나면서는 갖가지 사안이 적힌 전단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광우병 쇠고기 전면 재협상' '의료 시장화 반대' '물 공공부분 사유화 반대' '대운하 반대' '4.15 공교육 포기 정책 반대' '공영방송 장악 잔대' 등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대 사안들이 적힌 전단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100일 된 정부의 총체적인 문제가 그 안에 다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광화문에 들어서니 한 아주머니의 고성이 들린다. "얼른 여기 광화문으로 와, 말도 아니다. 오늘 촛불 집회에 오라고." 이순신 동상이 삐죽이 보이는 불통의 벽 앞에서 아주머니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서서히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광화문 쪽에서 시청 쪽으로는 이미 인산인해이다. 광화문 한복판에서부터 서서히 시민들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거리거리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이동하는 데 여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다. 광화문 쪽에서 시청 쪽으로 가는 데 30분이 걸렸다. 한산한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에는 구국 의지에 불타는 집회가 한창이다. 개신교 성령 부흥회 같은 집회 분위기에서도 신심이 남다른 신자들은 하늘을 향해 기도의 함성을 올리고 있었다. "오늘, 하느님 꽤나 복잡하시겠는걸!"

사람들의 물결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이제는 움직일 틈조차 없다. 그저 앞사람이 가는 만큼 나도 걸음을 옮길 뿐이다. 퇴근시간이 지났는지 무리지어 다니는 젊은 직장인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기말고사 기간인 중고등학생들도 여전히 많다. 오늘 촛불대행진을 진행하는 대학생들, 백발의 노인들, 중년의 아저씨 아주머니들, 예닐곱 살 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 아들네미를 무동 태운 아버지, 남녀 젊은이들. 그야말로 세대를 초월한 축제의 한마당이 제대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축제의 자리를 마련해 준 이가 대통령이라니 이 또한 얼마나 커다란 아이러니란 말인가? 귀를 여시오, 귀를! 소리를 들으시오, 소리를.


서서히 열기가 더해가던 촛불대행진은 7시가 지나면서 더욱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자유발언을 통해서는 이제는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대운하, 교육, 의료 민영화, 경제위기 등 졸렬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어졌다. 8시가 지나자 인원은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사회자는 이곳 광화문에서부터 저 남대문까지 40만의 시민이 민심의 촛불을 밝히고 있다고 알려줬다. 또한 지난 1987년 민주화 항쟁 과정에서 물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와 박정기 씨와 '6.10 민주 항쟁'의 희생자인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가 참석하였다. 단상에 있는 아들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한열이가 죽은 지 21년이 된 오늘, 한열이가 촛불 행사에 참석했다."며, "아들의 촛불이 100만, 1000만의 촛불을 이어주는 촛불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박정기 씨 역시 "국민 모두가 이명박 정부를 사기꾼으로 낙인찍었다. 우리는 정당히 투쟁할 것이고 대통령은 이제 모든 것을 접고 하야하면 된다."고 하였다.

"나는 촛불 집회에 오늘 처음 나왔는데, 이거 이러면 안 되지. 저런 벽을 쌓아올리는 대통령이 어디 있어."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아저씨가 흥분하며 말을 건네 온다. 빙그레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려고 일어섰다. 동아일보 앞으로는 여기저기 쌓아올린 스티로폼 위로 많은 시민들이 올라서 있다. 사람들이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한다. 거리 행진이 시작되려는가 보다.


9시가 지나자 촛불 대행진이 시작되었다. 50만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종로통 중앙선에 길게 놓여진 촛불이 타오른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불장난에 신이 났다. 종로 2가에서 거리행진을 지켜보았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지인들을 만난다는 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다.

그러나 종로2가에서 3가로 나가지 못하는 거리행진은 안국동 쪽으로 길을 틀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행렬이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자 촛불 시위자들은 종로3가로 나아갔다. 구호도 다양해졌다. 쇠고기 재협상을 하라, 이명박은 퇴진하라, 이 또한 기가 막힌 일 아닌가, 그 어느 정부가 단 100일 만에 국민한테서 퇴진 압박을 받는단 말인가?



도대체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종로 을지로 세종로 등지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자 그 자리에 앉아서 새로운 놀이문화를 펼쳤다. 사물이 등장했고 즉석에서 노래가 나왔다.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의 촛불 시위는 밤이 깊어도 꺼질 줄 모르고 타올랐다.

이렇게 타오르는 촛불 시위가 언제 끝날 것인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몫이다.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주시려는 고매한(?) 뜻이 아니라면, 대통령님, 이제는 좀 소통을 하시지요!

/박오늘 200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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