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박영대]

▲<이것이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엄기호 지음/푸른숲 펴냄
엄기호 연구위원이 네 번째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을 냈다.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담고 있다. 앞서 낸 책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헌정사가 눈길을 끈다.

‘겉도는 말, 헛도는 삶’이라는 화두를 던져주신 조한혜정 선생님과
나와 함께 세상을 읽는 힘 있는 언어를 만드는 작업을 같이 한
연세대 원주캠퍼스와 덕성여대의 학생들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


‘겉도는 말, 헛도는 삶’이라……. 그대로 나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아, 이 짧은 말이 칼로 찔린 듯 아프게 다가왔다.

엄기호는 이 책의 들어가는 글 “너흰 괜찮아”에서 이 책을 왜, 어떻게 썼는지를 밝히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엄기호는 덕성여대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쓰고 토론하고 강의하였다. 그 결실이 이번 책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분명하게 정리된 엄기호의 학문 방법론을 보았고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흔히 이야기하듯이 인문학은 답을 찾는 학문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학문이다. 엄기호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질문쟁이, 인문학자이다.

"나는 나 스스로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안 따위는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만 내가 잘하고,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좀 더 명확한 언어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일이다. 삶과 세상에 대해, 해답이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을 가질 수 있도록 자극하는 일이다. 나는 인간은 삶에 대해 새로운 질문이 많아질수록 세상을 새롭게 살아갈 용기가 더 많아지는 존재라고 믿는다. 질문과 함께, 질문에서 인간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 (27쪽)

가슴 뭉클해지는 명문이다. 엄기호의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엄기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역할이 바로 신학자의 역할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신학자는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인들이 자신 신앙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질문을 던지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신학자는 골방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저자거리에 함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일상과 관계를 신학하는 자리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어제 한 후배와 낮술을 했다. 최근 내가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 마련한 자리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신앙인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게 복음적인가 아닌가가 아닐까요? 그래서 복음적이라고 생각하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결국 신앙인이라는 건 이 질문을 붙잡고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니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선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 달 전쯤 나와 함께 인문학 공부를 하고 있는 ‘농썰모임’의 고3들이 수시 접수를 위한 자기소개서를 썼다. 조언을 부탁해서 읽어보니 아무 특징도 없어서 인터넷을 검색하면 샘플로 제시하는 자기소개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 때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어떻게 쓰면 대학 입학 사정관이 마음에 들어 할까를 고민하면서 쓰지 마. 너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 너희가 너희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봐. 너희가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묻고 대답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어.”

다시 써온 자기소개서를 읽어보니, 그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보였다. 그래서 행복했다.
엄기호 말은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질문과 함께, 질문에서 인간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지? 이게 엄기호 연구위원이 새 책을 통해 내게 던진 화두이다. 늘 고맙다.

박영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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