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의 필름창고-영화 속, 역사 속 이 노래]

전 세계인의 애창곡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이들이 부른 노래가 한 곡 있다. 고종석은 자신의 휘파람 애창곡이라고 했는데, 역사의 주요한 현장에서 힘차게 불렀으며, 쟁쟁한 혁명가가 세상과 이별한 뒤에 그를 추억하는 사람이 모여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책에서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때 불렀던 노래가 바로 '인터내셔널가'다.

▲1900년대 인터내셔널가 악보 표지
파리코뮌 당시인 1871년 사회주의자이자 운수노동자였으며 시인이었던 프랑스의 외젠 포티에가 파리코뮌을 기념하기 위해 1871년에 쓴 시가 노래의 기원이 됐다. 당시의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시를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에 맞춰 불렀다. 그러다가 1888년 역시 프랑스인인 피에르 드제이테가 곡을 만들었으며, 이것이 우리가 아는 '인터내셔널가'의 멜로디다.

드제이테는 곡을 만들면서 운율 등을 고려해 가사를 일부 수정했다. 드제이테가 새로 곡을 붙인 '인터내셔널가'는 1889년 2차 인터내셔널이 결성되자 즉각 사회주의자들의 찬가로 채택되었으며, 이후 유럽을 넘어서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잘 찾으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심지어 아프리카어 버전도 들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번역되어 불리는데, 예전엔 <역사의 새 주인>이라는 제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영화 속 여러 빛깔의 '인터내셔널가'

이처럼 역사적이며 전 세계인의 애창가였던 '인터내셔널가'는 여러 영화 속에서도 심심찮게 들을 수가 있다. 영화에 대한 검열이 심각했던 시절에도 심심찮게 이 노래가 들렸다. 검열당국이 이 노래의 역사성을 잘 몰랐던지, 알고도 귀찮았던지, 이 정도는 봐줄 수 있었던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가끔 들렸다. 수많은 영화 속 '인터내셔널가'가 어떠한 맥락에 놓이냐에 따라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내 기억 속에서 이 노래가 나왔던 영화를 몇 편 소개해볼까 한다.

러시아혁명을 배경으로 한 <머나먼 도나우강>과 <닥터 지바고>에서는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장중하게 울려 퍼진다. <세상을 뒤흔든 10일>의 저자 존 리드의 생애를 다룬 영화 <레즈>에서도 러시아혁명을 배경으로 이 노래의 전곡을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인터내셔널가'는 격동의 시기를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소품으로 작용한다.

▲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의 포스터
로버트 드니로와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열연한 <1900년>에서는 농민들이 지주와 투쟁하면서, <랜드 앤 프리덤>에서는 파시스트와 투쟁하다 전사한 동지를 묻으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이때 이 노래는 하나의 결의를 담은 투쟁가로, 동지에 대한 장송가로 다가온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이 노래는 그렇게 불리워지면서 수많은 싸우는 사람들의 가슴을 타오르게 했을 것이다.

천안문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문>에서도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1989년의 천안문 사태를 사회주의에 대한 반발로 이해하는 시각이 있는 듯한데, 한편 부패한 국가자본가들에 대한 저항이라는 시각도 있다. 어쩌면 중국의 인민들은 한때 그들의 벗이었으나 성안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나오지 않는, 다시 예전의 황제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중국 지배자들에 대해 반발하면서, 진정한 사회주의 건설을 갈망하면서 불렀으리라.

<양철북>에서는 어느 누군가가 창 밖에서 살며시 '인터내셔널가'를 연주한다. 이 영화에서 '인터내셔널가'는 사회주의자였을 당시의 국외자(局外者)를 암시한다. 주인공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두 사람이 근처에도 얼씬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장면이 있다. 그 두 사람 중 하나는 유대인이었고, 또 한 사람은 살며시 이 노래를 연주했던 이였다. 나치 치하에서 가장 혹독하게 탄압을 받았던 이들이 유대인과 사회주의자였음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티벳에서의 7년>과 <에어포스원>에서 흘러나오는 '인터내셔널가'는 서방의 입장에서 이 노래의 의미를 확 비틀어버리고 있다. <티벳에서의 7년>에서는 중국이 티벳을 침공할 때 이 노래가 흘러나옴으로써 어떤 제국주의의 행진곡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그리고 <에어포스원>은 상당히 묘한 장면에 이 노래를 삽입시킴으로써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어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악당 두목이 딱 체 게바라 스타일로 나오는데, 그들의 의도는 불순하기 그지없다.

이토록 많은 역사성을 담은 이 노래는 아는 분도 있겠으나, 많이 들어는 보았는데 아 그게 이 노래였던가 할지 모르겠다. 그냥 훅 지나가는 장면을 볼 때 이 노래 하나만 알아도 잘 이해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다. 그러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얼마나 궁리를 하면서 하나의 신을 밀도 있고 정확하게 담아내려고 노력했겠는가.

노래는 그것을 부르는 사람들에 의해 그 생명력이 이어진다

며칠 전 칠레에서 구출된 33인의 광부들이 노래 2곡을 불렀다. 하나는 국가적 제례로 준비되어 모두가 불렀던 칠레국가, 다른 하나는 그들 광부들만이 불렀던 광부의 노래다. 뒤의 노래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 그들의 삶과 밀착되어 늘 불렀을 생환을 자축하는 노래다.

양희은이 포크송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했던 장면이 인상적이다. “노래는 그것을 부르는 사람들에 의해 그 생명력이 이어진다”고. '인터내셔널가'는 전 세계의 일하고, 투쟁하는 이들에 의해 그 생명력을 이어온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인터내셔널가'는 한물 가고 어쩌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노래로 취급될지 모르지만, 한때는 아주 생생하게 피끓었던 삶들과 같이했고, 지금도 어느 한편에서는 그렇게 불릴지 모른다.
 

▲영화 <랜드 오브 프리덤>에 삽입된 인터내셔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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