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위의 마을’에 사는 산촌 유학생들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입구. 산위의 마을에 있는 산촌 유학생들을 찾아가는 길은 온통 꽃대궐이다. 풀빛 신록 속에 피어난 꽃들이 여기저기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것처럼 무리지어 피어있다. 무리지어 핀 들꽃이 예쁘다. 저 혼자만 튀는 게 아니어서 더욱 예쁘다.

적막한 산촌, 낭랑한 아이들 소리

산길로 들어서니 갈래길이 난 게 아닌데도 길을 잡기가 어렵다. 이쪽저쪽 보이는 샛길도 다 내가 가야 하는 길로 보인다. 이 길로 가야 하나 저 길로 들어서야 하나, 한 번 잘못 들면 뙤약볕에 되돌아오는 수고가 보통이 아니니, 선뜻 발길이 놓이지를 않는다. 지친 걸음이 어서 목적지에 닿고 싶은데 올라간 길을 되물리자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때, 무슨 소린가 들리는 듯했다. 포르릉 날아오르는 새소리조차 뚜렷하게 귀에 울리는 적막한 산촌에서 낭자하게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소리가 귀를 잡아당기지 않을 수 없다. 길라잡이 삼아 그 소리를 따라 산길을 오르자니 참으로 기분이 묘하다. 산중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함성, <산위의 마을>을 찾는 이의 마음을 여간 들뜨게 하는 게 아니다.

소백산맥 줄기 뻗어 내리는 산자락 아래, 너른 마당에서 아이들의 함성이 드높다. “내 제자가 되려면 누구나 서로 섬기고 사랑해야 한다.”는 솟대 옆에 서각해 놓은 성구가 눈에 들어온다. 며칠 뒤에 있을 행사 때 사물놀이 공연을 하기로 하였는데, 이를 위해 한창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산줄기를 따라 파도를 친다. <산위의 마을> 식구들 역시 행사 준비로 손발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마당 한쪽에서 구부리고 일하는 박기호 신부도 보인다.

예수살이 공동체의 산촌마을, 위기와 기회

산위의 마을은 예수살이공동체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데, 지난 3월 1일 예수살이 공동체는 10주년을 기념하였다. 예수살이공동체가 세워지고 4년 뒤 <산위의 마을>은 시작되었다. ‘지상에서 천국처럼’이라는 예수살이공동체의 구체적인 이상을 구현하는 농촌 공동체가 태어나면서, 이 땅에서 소비를 끊어내고 자생 자립하려는 예수살이 영성은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을 공동체요 농촌 공동체인 <산위의 마을>은 초창기 함께했던 일곱 가족 가운데 네 가족이 떠나면서 시련을 겪었다. 한편으로는 역동적인 공동체의 삶이 현실에 뿌리내리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위기가 기회였다.

“지금은 숫자 빼고는 모두 성장해 있습니다. 모르는 지점, 틀린 것은 다시 해나갑니다. 머리 쓰는 일 대신 몸을 쓰고, 몸이 힘들 정도로 일을 하려고 합니다.” 박기호 신부가 들려주는 말이다. 그래서 몸이 깨닫는 지점, 바로 그 지점에서 베네딕토 성인의 ‘기도와 노동’을 실현하는 것일까, 이는 몸과 마음이 튼실하게 땅에 붙박여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이렇게 영성으로나 마음으로 성장하고 보니 지금도 관계를 맺고 있지만, 서로가 구현하는 이상이 달라 퇴촌한 가족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기만 하다. “숫자적인 어려움, 물질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공동체 식구들은 내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내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외연을 넓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필리핀이나 볼리비아 등지에 대한 미션으로, 산위의 마을에서 배운 농사 기술을 현지인들한테 가르치며 함께 사는 일 말이다.


코끝 찡한 어둠 속, 성찰의 시간

산속 깊은 데서 들려오는 소쩍새의 울음이 구슬프게 들린다. 어느 결에 코끝 찡한 어둠이 내리고 있다. 마당을 휘저으며 뛰놀던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온 종일 들판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고 성당으로 발길을 놓는다. 저녁 기도 시간. 아이들이 꾸밈없이 부르는 성가 소리에 저절로 마음이 열린다. 하루를 성찰하는 시간, 칭찬거리는 물론 부끄러움마저 내보이는 아이들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시간, “내가 있는 이곳은 어디인가?”

산위의 마을이 이곳 보발리에 둥지를 튼 것은 5년 전, 존재 자체로 빛을 발하는 아이들이 산골에서 사는 배경은 이러하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가곡초등학교 보발리 분교는 폐교 위기를 맞았는데, 학교와 지역에 뿌리내리려는 공동체는 서로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산위의 마을에 산촌 유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학교는 폐교되지 않았고 산골 마을에는 싱그러운 아이들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어느 새 아침, 축복 속 등교길

새벽 미사를 드리고 아침밥을 먹은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나가더니 어느새 마당에 다시 모여들었다. 학교 가기 전에 기도를 드리고 신부님과 공동체 어른들한테 축복을 받는다. 오늘,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간다. ‘가곡초등학교 보발분교.’ 산위의 마을에서 학교까지 곧장 가면 20분 거리지만 달리고 치고받고 장난치다 보면 거리상의 시간은 별 의미가 없다. 유치원에 다니는 강산이가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떼를 쓴다. 누나와 형들이 달래보지만 막무가내로 보챈다. 수연이 누나가 등을 내밀며 업히라고 하지만 엉엉 울기만 한다. 그러다 형들이 달음박질쳐 내려가고 누나들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니 엄마한테 떨어져서 수연이 누나 손을 잡는다. 언제 울었냐 하는 표정이다.

한 녀석이 “꺾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 흰민들레를 꺾어준다. 어, 이 귀한 게 어디서 났을까? 발밑을 보니 온통 흰민들레밭이다. 지천으로 피어난 꽃길을 걷자 하니 이곳이 천국이지 싶다. 산딸기 둥글레 노란민들레 하얀민들레 각시붓꽃 산도화 돌배꽃 조팝나무 금낭화 애기똥풀 현호색 등등. 무리지어 피어나 아름다움을 뽐내면서도 교만하기보다는 소박하다.

노란 진액이 무섭다고 울상을 짓는 수연이를 보자 남자애들이 더 신이 나서는 애기똥풀꽃의 노란 진액을 휘둘러댄다.

“수연아, 여기 있는 게 좋아?”
“좋기도 하고 외롭기도 해요. 애기똥풀꽃같이 여기 와서 꽃이름도 알고, 서울 친구들은 이 꽃 이름 몰라요.”
“그러게. 이렇게 나무들이 색색깔로 빛나는 것도 모르잖아?”
“네. 나도 몰랐는데요.”


제 빛깔대로 소리를 내는 아이들

산길을 지나 밭에서 쟁기질하는 할아버지를 보자 수연이가 공손히 인사를 한다. 등하교 길에 마주치는 동네 어르신이란다. 달음박질치고 소리 지르고 우당탕탕 하는 사이에 학교에 왔다. 모두들 한곳으로 몰려간다. 어버이날 부를 합창 연습이 있단다. 아이들은 제 빛깔대로 소리를 내는 재주가 남다른 것 같다. 제 맘대로 질러대는 소리에 화음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선생님이 주의를 준다. 자,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혼자서 올라가지 말고, 함께 부르는 소리에 마음을 맞추고…. “근데요 선생님~”으로 시작하는 아이들의 항의성 질문에도 젊은 남자 선생님은 인내심 있게 대답하고 버릇없다고 야단치기보다는 아이들을 끝까지 설득하려고 한다.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에 오래 전부터 있어온 서로에 대한 태도인 것 같다.

왁자지껄 흥겨운 노래 연습이 끝나자 아이들은 각자의 교실로 돌아간다. 전교생 19명, 산촌 유학하는 아이들 15명. 선생님 4분. 조촐한 식구들의 하루 생활이 시작되었다. 각급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내일 현장학습(소풍) 나가는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곧 수업에 들어갔다. 따사로운 햇살이 창을 통해 아이들한테 곱게 내린다.

강산이가 있는 유치원 교실에서는 세 명의 아이들이 제 맘대로 놀이에 열중하는 가운데 선생님이 흥을 더해 준다. “어제는 자전거 타기 했는데 오늘은 무얼 할래?”

수업받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운동장으로 나왔다. 텅 빈 운동장이 조금 있으면 달려 나올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 적막하던 산골에 낭랑한 아이들 소리로 가득찰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산골마을에는 생동감이 되살아날 것이다. 문득, 아이들의 꿈을 노래할 수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의 꿈을 노래하게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산위의 마을에서 산촌 유학하는 아이들이 느끼는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자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온다. 한낮의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하는데 되풀이되는 사물놀이 연습 시간. 땀을 찔찔 흘리면서도, 장구니 북을 둘러메자니 그 무게에 어깨가 짓눌리는 것같이 아픈데도 하기 싫다, 그만하자는 소리는 없다. 그저 열심히 하고 신명나서 뛰어다니고 그러다 보니 연습시간이 다 되었고, 저녁 어스름이 찾아왔다. 산속에서는 또 다시 두견이가 꾹 꾹 꾸욱 꾹~ 긴 울음을 토해 낸다. 새 날을 준비하려는 하루가 이렇게 지고 있다.


정직하게 몸이 원하는 만큼 사는 거룩한 산

“이곳(산위의 마을)에 온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죠. 소유를 버린다는 건데….” 또다시 박기호 신부가 들려주는 말이다.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 그리스도교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만큼 실제로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공동체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여, 산위의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희생에 기대어 살면서 자신들이 행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의 삶과 연결이 되어, 누구나가 필요한 존재라는 걸 자각하며 살아가기를 꿈꾼다. 그래서 “정직하게 몸이 원하는 만큼 먹고, 마음과 정신은 자연처럼 단순하고 맑게 정리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바로 그 지점이 베네딕토 성인의 기도와 노동의 영성이 기틀을 잡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공동체 안에서 아이들은 물질에 집착하는 교육을 받는 게 아니라,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과 위대한 자연의 품에서 자신의 맑은 기운을 뿜어내는 삶을 살아가는 기틀을 다지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그저 흐뭇해졌다. 최고가 되어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 게 아니라, 최선을 통해 다른 사람과 어우러지는 삶에 대한 교육. 그 현장에 다녀왔다.

“세상의 중심은 어떤 성스러운 산이다. 누구라도 개인적인 여행을 할 수 있고 우리의 도시 한가운데 있는 성스러운 산으로 순례의 길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심은 흔히 사회의 ‘시궁창’에서 발견된다. 진정한 중심은 저 멀리 아래에, 사람의 삶에 필수적인 나날의 ‘천한 일’을 하는 육체적인 경험 속에 있다. 어둡고, 천한, 낮은 곳에 있으며, 거기서 우리는 모든 빛을 초월하는 ‘빛’에 감촉될 수 있다”(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쌓아가는 정의의 길로 들어선 이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있을진저.

/박오늘 200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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