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이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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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언론보도에서 새롭게 등장한, 그러나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기사들이 있다. 학생들의 병영체험, 안보체험 교육에 관한 보도들이다. 체험, 훈련, 견학 등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교육활동’이 사회적 감시도 여론의 견제도 거의 불가능한 틈을 타 최근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관하는 기관은 군과 교육청에서부터 학교 그리고 군출신들이 운영하는 민간기관 등이다. 교육은 군부대 안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사설 훈련장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군에서 직접 군장비와 무기를 시내에 가지고 나와 아이들에게 선보이고 체험하도록 하기도 한다. 군복을 입고 약간의 장비를 갖추고 훈련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연령층은 어린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걸쳐있다.
이러한 군사훈련의 주최 측에서는 물론 건전한 교육목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애국심 고취’와 ‘건전한 통일·안보관 확립’ 등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명분이며, ‘극기’, ‘체력단련’, ‘리더십 형성’ 등도 교육의 취지로 내세운다. 학생들의 안보체험 훈련을 강요했던 한 지방 교육청의 경우 “학생들의 올바른 국가관 확립을 위한 시책”이라고 주장했다.
군의 경우 지금까지 쉽게 접해 보지 못한 장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총검술, 각개전투 등 ‘재미있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을 받아서 훈련을 전개한 한 군 부대장은 “이번 안보현장 견학을 통해 우리 군을 좀 더 잘 이해하고 확고한 안보의식 및 건전한 국가관을 배양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러한 보도를 본 사람들은 한번쯤은 과연 그런 것이 21세기 안보교육일까, 애국심이 그렇게 고취되나,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남북관계에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수 있다. 그렇지만 군과 사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일에 대해 정부, 언론, 시민사회를 통틀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아니 치밀하게 생략된 질문이 없는지 찾아보자. 즉 질문을 제기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없는지 말이다.
먼저 군장비는 그냥 군장비인가? 전투기와 소총, 대포와 장갑차 등은 군장비인가 살상무기인가? 아동·청소년이 전문적인 살상무기를 다뤄보는 ‘체험’은 허용할 수 있는가 없는가?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는 무기와 살상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인과 불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사회임을 생각했을 때, 이상하기만 하다.)
다음으로 어디까지가 교육이며 어디부터가 군사훈련인지 묻는 사람 또한 별로 없다. ‘체험’과 ‘교육’이라는 명칭에 현혹되어서 어린 학생들에게 부당하게 군사훈련을 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고 묻지 않는다. 군복을 입고 군모를 쓰고 방독면을 쓰고 총검술을 익히는 것은 극기훈련인가 군사훈련인가? 군복을 입은 초등학생들이 군교관의 지시에 따라 ‘단결’과 ‘애국’을 외치면서 하는 극기훈련은 군사훈련인가 아닌가? 군에서 일방적으로 만든 군 관련 홍보물을 학교에서 상영하도록 하는 것은 군의 개입인가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듯하다. 군의 병영체험을 보도하는 언론보도는 ‘사실보도’만 하지 비평을 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그 다음 치밀하게 생략된 질문은 아동·청소년들이 이렇게 군사훈련 또는 준 군사훈련에 노출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일제가 우리에게 도입한 전통, 즉 국가의 안보관, 적개심, 군사기술 등을 군이 교육에 개입해서 아동에게 주입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또한 이런 경우 정부가 이를 규제할 의무를 방치하는 것은 아닌가, 방치했다면 방치함으로써 국제인권법에서 주어진 아동·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한 것은 아닌가의 질문이다.
특히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가인권위원회를 두고 있는 국가일뿐 아니라, 현재 한국 인사가 유엔 아동권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아동·청소년의 인권을 지키고 그 예방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의 인권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토대인 국제아동권규약은 아동·청소년의 인권보장에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이 교육권이며, 그 교육은 인권과 평화, 다양성과 관용을 학습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아동의 군사활동을 참가를 매우 적극적으로 배격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이 규약의 비준국이며, 따라서 정부는 이 규약의 인권규정을 이행할 책임을 지닌다. 군의 책임 역시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유사 군사훈련이 교육과 체험의 이름으로 아동과 청소년에게 시행되고 있는데 아무도 적절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있는 '이 상황'이다. 유신독재 시절의 학생 군사훈련, 그 이전에 일제시대의 군사훈련을 연상했던 사람이 많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질문이 제기되지 않는다. 그것은 질문의 의지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질문을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천안함 논란처럼 군사문제와 관련된 보복의 두려움인지 아니면 말이 통하지 않을 상대에 대한 기피인지 분명치 않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위험한 것은 의문조차 제기하지 못하는 이 침묵이 아닐까.
이대훈/ 프란치스코, 성공회대 평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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