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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는 진화한다오늘 밤샘 시위의 풍경

   

6월 첫날 저녁부터 진행된 시위가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날 집회는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재임시절 만들어 놓은 시청앞 광장에서 4만여 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시작되었는데, 시위군중은 태평로를 거쳐 광화문에서 경찰과 대치하였다가, 결국 시청 앞에서 마무리하였다. 마치 자업자득이란 말처럼 이 대통령은 자신이 행한 바대로 그 대답을 들을 것이다.

대책없이, 그래서 창조적인 시위

뉴스에서는 같은 시각, 진중권씨에 대한 인터뷰가 흘러 나왔다. “경찰은 여전히 전근대적 방법으로 시위를 막는데, 시민들은 탈근대적 방식으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상 시민들은 지휘부가 따로 없어서 즉흥적으로 모이고 위기에 창조적으로 대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30일 밤 시위 때에는 다음날 새벽 4시경에 마무리되었으나, 이날 집회에는 아침 6시가 가까워지도록 일부 시민들은 흩어지지 않고 남아서 시청 앞에서 횡단보도를 중심으로 시위하였다. 날이 밝아지고, 경찰의 물리력으로 해체된 도로 위 군중이 인도로 올라가서 신호등에 푸른불이 커질 때마다 집단적으로 “이명박 퇴진”을 연호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며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른바 ‘횡단보도 투쟁’이라 불러도 좋을만한 합법투쟁이다. 처음엔 일부 시민이 즉흥적으로 시도하였으나, 곧 남아 있던 군중들이 합세하여 대단한 시위가 되었으며, 지나가던 차량들이 경적을 울려 지지를 표시하였다.

경찰도 보호해 주자

지난 밤 시위 중에 시민들은 성숙한 태도를 보여 주었는데, 일부 취객이 술병을 깨뜨리자 곧 제지하고 깨진 유리조각을 주워 담았으며, 광화문을 가로막은 전경버스 4대를 밧줄로 걸어서 빼낸 시민들은 전경버스에 불 지르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단속하였다. 한편 수시로 쓰레기를 주워담았으며, 페트병을 들고 다니며 담배공초를 수거하였다. 물론 시청 앞 광장에 떨어진 촛농을 긁어내는 시민들도 있었다. 한편 시위 현장에서 발견된 경찰을 돌려보냈으며, 시위 군중 사이로 끌려나온 전경버스에 타고 있던 운전수 등의 경찰들은 “진영에서 이탈된 경찰은 병력이 아니니 건들지 말라”면서 보호해 주었다.

오히려 경찰이 도로에서 시위하는 것 같아

   
경찰이 삼면에서 치고 나와 광화문 일대를 장악하고 시위군중들이 시청쪽으로 밀려났다. 경찰이 장악한 도로변에 줄지어 서서 방패로 앞을 가리자, 시민들은 보도 위에서 경찰과 마주서서 구호를 외쳤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얘네들이 집회하는 것 같아.” 그랬다. 시민들이 보도에 길게 둘러서 있는 가운데 경찰들은 도로 안에서 이리저리 대열을 이동시키며 집체훈련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군사작전을 구경하는 것처럼 재미있어 하였다. 시민들은 자유롭게 앉아서 담배도 피우고 삼삼오오 앉아서 이야기도 나누며 자유롭게 활보하는데, 도로변에 배치된 경찰들은 부동자세로 서서 기합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시민들은 자유민이었고, 경찰은 우리에 갇힌 사람들처럼 보였다.

마치 경찰이 시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사이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태연자약하게 돌아다녔다. 시민들 가운데 아무도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경찰의 행동을 진기한 구경을 나온 사람처럼 지켜보았다. 경찰이 진압할 때 네 다리가 번쩍 들려서 잡혀간 청년은 전경버스에 올라타고서, 창문으로 어떠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좀 부끄러운 듯 웃어보였다. 경찰이 방송으로 “즉각 해산하지 않으면 검거하겠다”고 경고하자,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노래를 부르며, “검거해! 검거해!”하고 맞받아 소리질렀다. 해산을 채근하는 방송이 계속나오자, 어느 대학생들은 “택시비! 택시비!”하고 농담을 구호삼아 던지기도 하였다. 시간이 벌써 새벽 두시를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시위 중간 중간에 물 마시라고 어디선가 생수를 사와서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고, 사탕이며 초코파이를 봉투에 담아와서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조선일보 쌤통이다

이번 시위에선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 곤혹을 치렀다. 광화문 앞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가로 막은 전경버스 위로 올라가 취재경쟁을 벌이는 기자들에게, 한 시민이 공개적으로 기자증을 확인하면서 조선, 중앙, 동아 일보 기자는 내려보냈다. 취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시위 중에 보니, 그때 면박을 당하고 밀려난 기자가 길가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조선일보미술관 앞에서는 그 옥외간판이 시민들에게 긁혀서 못쓰게 되었고, 누군가 테이프를 붙여 ‘좃선일보’로 둔갑해 버렸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핸드폰으로 그 간판을 기념 촬영한다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누군가 이런 말을 던졌다. “요즘 조선일보에 광고가 안 들어와 논조를 조금 바꾸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 광경을 보고 “조선일보 쌤통이다!”고 하였다. 시민들은 조선일보 등의 뻔뻔스러운 모습에 야유를 보내는 것이다.

노래해! 노래해!

   
새벽까지 이어진 시위로 지친 시민들 중에는 아예 돗자리를 펴고 누워 있는 이도 있었고, 오렌지빛 한련화가 만발한 서울시의회 계단 앞에서 정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리곤 경찰에서 해산을 종용하는 방송을 할 때마다 시민들은 “노래해! 노래해!”를 외치며, 마이크 잡은 김에 노래 한자락 하라고 야유하였다. 즐겁고 경쾌한 시위다. 시의회 건물 담벼락엔 “시민의 행복을 으뜸으로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공허하게 쓰여 있었다. 새벽 네시가 가까이 오자, 계단에 앉아 있던 한 시민이 옆 사람에게 말한다. “우리 민족처럼 체력이 좋은 사람들은 없더라고. 매일 밤을 새도 계속하잖아.” 그 와중에도 경찰은 해산하라는 방송을 계속 한다. 그 때 지나가던 시민 하는 말, “아이 씨, 애도 안 뱄는데 왜 해산하라고 해!”

네시 가까이에 경찰은 시청 앞까지 도로에 있던 시위군중들을 밀어내었다. 그리고 서둘러 전경차량들을 도로에 투입하여 시민들이 차도에 나서지 못하게 막았다. 그때부터 즉흥적으로 시작된 횡단보도 투쟁이 아침 6시가 되도록 계속되었다. 밤을 꼬박 새운 시민들과 하룻일을 나서는 시민들이 인도와 차도에서 조응하고, 경적을 울리며 의지를 교환하였다. 대한문 앞이 훤해졌다.

/한상봉 2008-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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