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박영대]

8월 28일 토요일, 조카딸 함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순조롭게 함을 받고 술판이 벌어지려는 즈음 핸드폰이 울린다. 시간을 보니 저녁 8시 14분, 발신전화번호는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실. 어, 지금 시간에 인권위에서 나에게 전화할 일이 없는데. 약간 불안해진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저, 천주교 인권위 아무개입니다.”

다음날 결혼하는 후배 활동가이다. 어라, 이 친구가 내가 깜빡 잊고 자기 결혼식 안 올까봐 전화했나? 그럴 친구가 아닌데. “이번에 새로 위원으로 위촉되시고 해서 소식지에 칼럼 원고를 받고 싶어서요.” 다음날 결혼할 사람이 아직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중독자인 그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혼 전날 저녁까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의 부탁인데 더한 것도 어찌 안 들어줄 수 있겠는가? 그럼 그럼, 쓸게. 내일 보자고. 칭찬에 인색한 편인 어느 후배는 이 활동가를 두고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회가 낳은 최고의 활동가라고 격찬했다. 점점 그 평가에 공감하고 있다.

다음날, 일요일인데도 노트북을 끼고 열심히 일하는 아내 옆에서 뒹굴 거리며 책 읽다 졸다 하다가 결혼식엘 갔다. 집에서 30분 거리인데 늦장부리다 좀 늦었다. 신랑 신부 입장은 이미 끝났고, 따로 주례가 없는지라 주례사 아닌 덕담이 시작되고 있었다. 모두 네 분이 덕담을 하셨고, 사이와 마지막에 축하 공연이 한 차례씩 있었다. 화려한 결혼식장 분위기와 결혼 축하 덕담 내용만 아니라면 영락없는 대중 집회 분위기였다. 뜬금없이 1979년 11월 살벌한 계엄 아래서 모이기 위해 열렸다는 명동YMCA 위장 결혼식 사건이 생각났다.

또 하나의 결혼식도 생각났다. 진짜 결혼식이었는데, 위장결혼식으로 의심받았던 결혼식. 내가 군대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니 1982년과 1984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내 동갑내기 친구가 7년 연상의 여자 선배와 결혼했다. 신랑은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에 갔다 왔고, 신부는 지역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게다가 결혼식 주례와 장소가 인천에서 가장 이름난 운동권 사제와 그분이 있는 외진 성당이었다. 삐딱하게 보자면 위장결혼식으로 의심할만한 소지가 너무 많은 결혼식이었다.

그래서 경찰은 결혼식장에 닭장차까지 출동시켰다.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다. 결혼식이 끝난 뒤 주례 사제는 출동 경찰 책임자와 담판을 벌였다. 이왕 출동했으니 하객을 일반 버스 타는 곳까지 닭장차로 태워다주라고. 성당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20분쯤 거리였다. 이 담판은 흔쾌하게 성사되어 당대 인천의 골수 운동권들은 줄줄이 스스로 닭장차에 올랐다. 아마도 이게 촛불 때 유행하였던 ‘닭장차 투어’의 효시가 아닐까 싶다.

결혼식은 정말 독특했다. 사회부터 여성이다. 여성이 결혼식 사회를 맡지 말라는 법이 없지만 처음 봤다. 주례 없이 신랑 신부가 활동하는 단체들의 관계자 네 분으로부터 덕담을 들었는데, 3대 1, 여자가 더 많았다. 이도 흔치 않은 일이다. 2대 2, 비장애인과 장애인 비율도 같았다. 하객 가운데도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많았다. 신부가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는 모양이었다. 결혼식장에서 그렇게 많은 휠체어를 본 것도 처음이다.

좀 아쉬운 게 있다면 마이크 성능이 별로이고 장내가 소란해 덕담과 신랑 신부의 결혼 서약이 잘 들리지 않았다는 거다. 단 밑에서 덕담을 하니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분들은 더 안 보였다. 단 위에서 하면 좋을 텐데 생각하는 순간,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도 의식하지도 않았던 게 보였다. 결혼식장의 단에는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덕담한 모든 분들이 단 밑에서 했고, 신랑신부도 내내 단 밑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어, 이거 휠체어 탄 장애인은 결혼식 주례도 편히 못하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 집회 같았던 결혼식 분위기를 살려 이 글을 구호로 정리하겠다. 대중 집회에 참여해보신 분은 익숙하겠지만, 발언 뒤에 구호로 정리하는 게 상례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함께 하시면 좋겠다. 어색하면 팔은 올리지 않으셔도 된다. 장애인의 주례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투쟁!

박영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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