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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고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시사비평-한상욱]

   
▲ 2008년 8월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이 단식하며, 미사 전 김정대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한상봉 기자)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 가리라(욥 1,21)

내일이면 추석 연휴이다. 저마다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떠난다. 가고 싶어도 고향을 찾아 가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3년이 훨씬 넘게 싸우고 있는 우리 동네 콜트악기 노동자도 그러할 것이고 대우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러할 것이고 다시 깃발을 올린 기륭전자,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인 동희 오토노동자들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고향 찾아가기를 주저할 것이다. 또 있다. 아직 감옥에 갇힌 용산의 철거민과 가족들은 더 없이 쓸쓸할 것이다. 그리고 떠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 한사람이 명동성당에서 계신 문정현 신부님이다. 바람 한점 없던 지난 여름부터 신부님이 명동성당의 한 모퉁이에서 기도와 묵상, 성서구절을 목판에 새기며 하루하루를 보낸지 이제 40일이 넘어갔다.

매일 오후 명동성당 마당에서 신부님은 무릎 위에 목판을 놓고 한점 한점 정성스레 성서구절을 새긴다. 그중 하나의 성서구절이 ‘벌거벗고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욥 1,21)이다. 인간존재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다. 세상에 내 것은 없다. 다만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받았을 뿐이고 죽을 때 다시 빈몸으로 돌아갈뿐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떠나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해석 나름이겠지만 누구나 벌거벗고 세상에 왔으니 인간은 누구나 똑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덧칠에 덧칠이 되어 무게가 쌓여져 몸은 무거워지고 명예, 권력,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평등이 우선되는 가치가 아니라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잘살아야 한다는 강박감 앞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점점 멀어져 간다. 한국사회라는 곳은 이렇게 왜곡된 가치가 세상에 판을 쳤고 이제 교회 안으로 스며들었다. 비정상이 정상적인 것 처럼 둔갑되었다.

교회 역시 그러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세상의 속된 가치가 거리낌 없이 수용되었으며 예수의 가르침과 전혀 다른 이질적 가치가 이중적으로 공존하는 곳으로 변해갔다. 세상의 경쟁과 성장주의와 마찬가지로 교회는 성장 이데올로기에 빠져버렸고 세상과 같은 방식으로 닮아갔다. 그러는 사이에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영혼들의 설 자리는 사라져갔다. 교회 건물은 커지고 늘어갔지만 이웃, 사랑, 연대의 가치는 멀어져 갔다. 정치 지배권력과 유사해지기도 했다.

얼마 전 대학에서 종교사회학을 가르치는 분과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분 스스로가 개신교에 다니는 신앙인이기도 했다. 한국 교회의 위기에 대한 그의 진단은 간단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신앙의 권위를 빌려 잘못된 믿음을 신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위기의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나도 백번 동감했다. 잘못된 믿음은 잘못된 신앙을 허용한다. 공동체는 없고 개인의 기복과 구원만이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되어버렸다.

다시 생각해본다. 문 신부님이 명동성당에서의 머무는 것은 교회의 존재에 대하여, 교회가 걸어가는 길에 대하여,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벌거벗고 세상과 직면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다. 그리고 다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믿는 사람들의 실천의지에 대한 문제이다. 이것은 세상과 교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한상욱 /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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