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의 짱똘]

참 치사한 세상이다. 에비 에미 잘 만나면 한평생 ‘오라이!’ 하면서 살 수 있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그들만의 세상에 끼지 못한 것에 배가 아파서 하는 말처럼 들리는가? 그렇다. 그것도 심하게 아파서 주먹으로 통감자 만들어 흔들며 해대는 말이다.

가난보다 평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원주에 ‘밝음신협’을 만들 때 ‘不患貧 患不均(불환빈 환불균)’이란 현판을 걸어놓았다. 이는 “가난을 걱정하지 말고 불평등함을 걱정하라”는 뜻이다. 이 말은 <논어 계씨 편>의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불환과이환불균 불환빈이환불안)’에서 나온 말이다. ‘정치를 함에 백성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백성이 평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며, 백성이 가난한 것보다는 백성이 안정되지 않은 것을 걱정하라’는 뜻이다. 논어 경전에 나오는 이 말을 위정자들은 뼈 속까지 새겨서 들어야 할 일이다. 자기 한 몸 잘나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한 몸 잘남을 넘어 제 자식이며 일가친족과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똥파리 떼에게 호의호식하라고 내어준 자리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

재산의 대물림, 학벌의 대물림이 모자라 신분의 대물림까지 획책하는 못된 부류들과 못됨 심보들이 사회를 멍들게 한다. 멀쩡히 흐르는 강물에 주리를 틀더니 이제는 사람 사는 세상을 아예 거덜 내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하다. 새로운 밀레니엄이라고 불리는 21세기라고 호들갑을 떨어대며 남의 꿈까지 들여다보는 <인셉션>이란 영화가 나오는 세상에서 우리는 국사책에 나오던 고리타분한 음서제도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기억을 돕는 의미로 말하자면 음서제도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중신 및 양반의 신분을 우대하여 친족 및 처족을 과거와 같은 선발 기준이 아닌 출신을 고려하여 관리로 등용하는 제도였다. 고려나 조선시대의 기득권층이 미래형인간이었는지, 21세기 한국의 기득권층이 과거형인간인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다. 이것은 아예 ‘벡 투더 퓨처 4’쯤 된다.

비극보다 더 비극적인 일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아닌 정치인들이 대거 당선됐다. 광역지자체장 중에서 특별히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정치인들은 김두관 경남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 그리고 이광재 강원지사였다. 그 중에서 김두관 경남지사의 집무실에는 ‘不患貧 患不均(불환빈 환불균)’이라 쓴 액자가 있다. 김 지사는 이 말을 고등학교 때 <샘터>에서 보고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과연 그런 정치를 펼칠 수 있을 것인가?

‘사람 사는 세상’을 가슴에 품고 한 때 우리 곁에 있었던 눈물 많은 위정자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보지도 못하고 우리 곁을 비극적으로 떠났다. 그러나 더 비극인 것은 자신들의 입으로 공정한 세상, 평등한 세상을 말하며 뒤로는 끊임없이 특권의 혜택과 기득권의 권력을 누리는 자들이 이 나라 공직사회와 이른바 상류사회에 그득하다는 것이다. 그 비극보다 더 비극인 것은 그런 일에 차별당하고 영원한 종노릇하는 것에 대하여 분노하고 타파해야 할 많은 사람들이 그 부당한 길을 기회만 있으면 찾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당한 일들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한 몫 잡는데 끼이지 못한 분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보다 더한 비극은 이 나라 종교인들에게 있다. 나라꼴이며 세상살이 꼴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예배당과 성당과 절집에서 옹알거리고 있을 뿐이다. ‘아멘’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에라이 쯧쯧..

예수는 그런 일에 목숨을 걸었다

정진석 추기경은 얼마 전 그를 찾아온 이재오 특임장관에게 “국민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느낄 때에 마음이 불편한 것 아니겠느냐”며 국민을 위한 정치를 당부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칠 일이 아니며 그쳐서도 안 된다. 그것은 의례적인 덕담일 뿐이다. 종교지도자들은 국민을 불평등하게 취급하는 권력을 만나면 회초리를 들어 그들을 때리든지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든지 해야 할 일이다. 예수는 그런 일에 목숨을 걸었다.


김유철
/시인.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지부장.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교회비평집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2009 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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