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배여진]-활동보조서비스 문제를 중심으로

"우리의 몸은 고기가 아니다!" 사람의 몸과 고기가 무슨 상관이길래 갑자기 웬 고기 타령인가, 하실 분들이 있을 거다. 위의 구호는 현재 보신각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 가짜 복지 규탄, 장애인 활동보조 살리기' 농성장에서 나오는 구호이다. 폭염과 태풍, 폭우 등 '기상탄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악조건에서 지속되고 있는 요즈음, 장애인들은 왜 또 거리로 나오게 됐을까.

우리는 흔히 언론을 통해 장애인에게도 급수가 매겨진다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장애등급은 1급부터 6급까지 있는데 장애가 가장 심한 경우가 1급이다. 각 장애등급에 따라 국가로부터 받는 사회적 서비스가 다르다. 장애가 그리 심하지 않은 장애인과 중증 장애인이 같은 지원을 받는 것은 불공평하므로 이렇게 장애인에 등급을 매겨 기는 것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장애가 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아주 동일한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 등급을 나누는 기준, 그것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아니 더 나아가 장애에 등급을 매기는 것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장애는 신체의 일부분을 상실하여 생길수도 있고, 여러 장애가 복합적으로 올 수도 있다. 특히 뇌병변 장애 같은 경우 마비로 인해 보행과 일상생활 동작 수행에 얼마나 제한이 발생하는 지를 평가하므로 같은 정도의 마비라도 그 판정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어서 형평성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 장애인들이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제공/민중의 소리)

장애인등급제, 장애인 차별의 상징

장애인등급제는 장애인의 몸을 의학적인 기준으로 등급을 매겨 구분하는 것으로 전 세계에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는 장애인 차별의 상징이다. 쉽게 말해 마치 고기의 품질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것처럼 장애인의 몸에 등급을 매겨 복지에 접근할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등급제는 의학적 기준으로 장애의 정도를 구분할 뿐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나 사회서비스의 필요도는 측정할 수가 없다. 국가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등급을 나눠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부터 시행하고 올해 초부터 강화된 장애등급 판정기준에 의해, 전국에서 장애등급이 하락된 장애인들은 활동보조서비스, 장애인연금 등 사회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장애등급 심사가 확대되면서 무려 36.7%의 장애인의 등급이 하락되고 있어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사회복지서비스를 박탈당하고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조금이나마 가능했던 일상생활을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해 전혀 할 수 없게 되거나 다시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 장애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시설로 들어가라는 말인가? 

활동보조서비스는 장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유급도우미를 파견하는 제도로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사회서비스이다. 기존의 시설보호중심이 장애인 복지의 패러다임이었다면 이제는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는 중심에 활동보조서비스가 있다. 서비스 이용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나 예산부족으로 대상과 시간이 제한되어 현재 장애계에서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활동보조서비스는 1급 장애인으로 신청자격이 제한되어 있고 월 최대 100시간, 최중증 독거장애인은 월 최대 180시간으로 이용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한 달을 30일이라고 계산했을 때 한 달 총 720시간에서 하루 당 8시간의 수면시간을 제외하면 총 480시간 중 약 1/5에 미치는 100시간 정도만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한 달에 100시간이면 하루에 겨우 약 3시간정도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더욱더 예산이 확충되고 확대되어도 모자랄 판에 올해 초부터 강화된 장애등급판정기준에 의해 등급이 하락된 장애인들이 활동보조서비스조차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따르면, 장애계에서는 2010년 예산을 3만5천명 기준으로 편성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3만명 기준으로 활동보조 예산이 삭감·편성되어 2010년은 연초부터 인천, 대구, 대전 등 많은 지역에서 활동보조 신규신청이 금지되는 사태가 발생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려 했던 장애인들이 계속 시설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다시 가족의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장애인

어렸을 때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고 척추도 휘어 휠체어에 두 시간 이상 앉아 있기 어려운 여수시의 김정화 씨는 활동보조 추가지원 신청을 하기 위해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은 결과 오른쪽 3번째 발가락이 움직인다는 이유로 2급 재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김 씨는 오른쪽 3번째 발가락이 경직성으로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1급에서 2급으로 장애등급이 하락된 김정화 씨는 이후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비단 김정화 씨만의 일이 아니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한 정부의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지침이 개악되고 예산절감을 위한 장애등급심사로 인한 피해사례는 지금도 속출하고 있다. 1년에 외출 횟수가 10회 미만인 장애인이 약 10만명, 장애인 가족 자살 사건이 최근 5년간 15건 이상이다. 장애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를 장애인 당사자에게 그리고 그 가족에게 부담케 하는 복지정책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그나마 앞으로 조금씩 전진하려던 정책을 다시 후진시키는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다시 가족의 ‘짐’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하루에 약 3시간 정도 받을 수 있는 활동보조서비스마저도 빼앗아 가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복지.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복지는 ‘가짜’ 복지 정책이다. 공정한 사회? 그 입에서 ‘공정’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부터 불쾌하기 짝이 없다. 안 그래도 밀려있는 출발점을 다시 저 뒤로 보내버리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공정’이란 말조차도 위선이고 가식이다.

아~ 자꾸 4대강 예산이 아른거린다

바로 오늘(9/13) 장애인 활동가들은 이재오 특임 총리의 지하철 출근길을 따라가 특임 총리 면담(?)에 성공했다. 장애인등급 재심사 문제와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대상 확대 및 예산 확보를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 면담을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자, 이재오 특임장관을 찾아 나선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급만남’에 이 특임장관은 무척이나 당황했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역시나 이들을 반기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약 10여분 동안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 않느냐”, “때와 장소라는 게 있는데 이렇게 데모하듯 하면…”, “지하철로 출근도 못 하게 만드시네” 같은 말들을 했다고 한다. 90도로 허리 굽힌 인사를 바라지는 않아도 그런 말을 내뱉기 전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목숨을 잃은 장애인들을 기억이라도 하고 말하면 좋겠다.

아~ 자꾸 4대강 예산이 아른거린다. 그 정도의 돈이라면 전국의 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고도 남을 것 같다는 건 수학에 재능 없는 나의 오산인가.

* 덧글
아무래도 이 글을 통해 장애등급제의 문제와 활동보조서비스 등에 대한 상세한 논의를 담기에는 부족했다. 자세한 내용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www.sadd.or.kr)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길. 또 혹시 보신각과 종각역 지나가시게 되는 분들은 활동보조권리보장 서명에 함께해주세요!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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