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국현대교회사 -17]
-1970년대, 세계 가톨릭교회에 불어오는 진보적 열풍

가난한 사람들의 양식을 위해 교회 미술품을 팔라!

1970년대에는 초반부터 교회 기관지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의 관심에 관하여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마감된 이후 수년 동안 세계교회는 대사회적, 교회 내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관념적 수용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나, 1967년 메델린 중남미대륙 주교회의와 바오로 6세 교황의 <민족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이 발표되어 공의회의 신학이 각 민족의 상황과 구체적으로 접합되면서 현실적 사목정책이 제기되고 마련된 것이다. 특히 1970년대에는 그 성과들이 점차 열매를 맺어 새롭고도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그 대안이 각처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경향잡지> 1971년 12월호 '바티칸 소식란'에 “가난한 사람들의 양식을 위해 교회미술품을 팔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는 교황청이 솔선수범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보여달라고 촉구하는 것으로 매우 과감한 발언이었다. 이는 과거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설립 당시 교황청으로부터 단죄를 받았던 이유도 그들의 복음적 청빈 때문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무척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경향잡지>의 기사에서 영국의 히난 추기경은 “교황청에서 별로 사용하지 않는 성작과 미술품을 굶주린 사람들의 식량에 도움을 주기 위해 팔아야 한다”고 1971년 10월 20일 주교 시노드에서 말했다. 그는 덧붙여 말하기를 “바티칸 미술관의 보물들은 세계에 속하며 낭비해서는 않된다. 그러나 바티칸에 소장되어 있는 예술 걸작품 중 일부를 교황청이 팔아서 모범을 보인다면 대단히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제안에서 세계 제1차 대전후 교황 비오 11세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성기를 팔도록 가톨릭교회에 독려했음을 상기시키면서 “별로 사용하지 않는 성작, 성광, 기타 성물들은 틀림없이 수천이나 될 것이다. 대성전과 수도원에 있는 값진 성기와 제의들은 1년에 단 한두번만 사용”되므로 “그와 같은 성물을 팔아서 굶주린 사람들의 식량을 살 수 있다면, 전례에 사용되는 것보다도 더 큰 영광을 하느님께 드리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영신주의에서 해방하는 교회로 : 1970년 멕시코 주교회의

1970년 5월 <사목>지에서는 멕시코 주교단의 움직임에 대한 기사를 싣고 있다.

“멕시코 주교단은 매우 진보적이다. 멕시코에 있는 가톨릭교회는 대화를 촉진시키고, 불의를 탄핵하고, 사람들을 압박하는 이들을 후원하는 일을 종식시키고, ‘영신적 영리주의’의 인상을 주는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고 멕시코 치와와의 대주교가 말했다.

주교들의 결의사항을 소개하면:
(1) 교회의 사목활동은 사람들을 압박하는 문제의 밑바닥까지, 그 뿌리까지 파고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불의를 탄핵해야 하며,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부면에서 사람들을 압박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을 인정해주거나 암암리에 지지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2) 교회는 한 단체로서 개방적이며 봉사적인 자세를 취하여 세계의 어떠한 종류의 그룹과도 협조할 수 있어야 한다.
(3) 젊은이들은 사목활동에서 더없이 중대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은 현대사회에서 관한 힘의 상징이며 교회의 영원한 젊음의 표지이다.
(4) 멕시코 주교단의 빈곤대책위원회는 교회가 점차적으로 속권의 외적 표지를 감해야 할 것이며 속권과 사회의 부로부터 물질적 특권을 받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전례의 단순화를 지향하고, 성사의 성직매매를 피해야 한다.
(5) 영신적 영리주의의 인상을 주는 모든 것은 교회로부터 배척되어야 한다."(<사목> 1970. 5, 68-69쪽 참조)

▲ 엘살바도르 한 마을 벽에 그려진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사회주의를 위한 가톨릭모임 : 칠레

1972년 9월호 <사목>지에는 박상래 신부가 칠레의 ‘사회주의를 위한 가톨릭대중모임’에 대한 기사를 소개하고 있다. “복음과 사회주의의 공존은 불가능한가?” 라는 제하의 이 글은 일제하에서 부터 줄곧 반(反)사회주의적 입장을 견지해 왔던 교회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기 위한 조심스러운 모색으로서 시대적 분위기를 담고 있다. 비록 외국의 사례이지만 반공을 국시로까지 격상시킨 유신정권하에서 사회주의와 복음의 결합 가능성을 보여준 칠레의 가톨릭사회주의자 모임에 대한 소개는 나름대로 교회가 냉전 이데올로기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와질 수 있는 교회 분위기의 변화 결과이다.

박상래 신부는 400여명의 평신도와 많은 사제들이 칠레 산티아고에서 가진 이 ‘사회주의를 위한 가톨릭대중모임’은 “나는 피압박자들에게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러 왔습니다”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과 “그리스도인들이 전폭적인 혁명을 과감하게 증언할 때,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은 그 어느 누구도 꺽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한 체 게바라의 말이 시종일관 이 모임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참가자들은 한주일동안 남미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가톨릭대중의 의식을 일깨워 이 대륙의 여러 민족들의 해방을 위한 전선에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을 더많이 참여시킬수 있을까 그 구체적인 오리엔테이션을 모색하였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사회분석도구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피압박민족의 해방을위한 ‘그리스도교 고유의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참가자들의 소신이었다. 그러기에 이들은 이른바 ‘제3의 길’을 처음부터 거부하였다. 효율적인 해결책은 하나뿐, 그것은 이 대륙의 현행 자본주의 체제에 혁명을 통하여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길이다.

"위계교회의 교서나 기타 발표문에서 흔히 읽어볼 수 있는 권선징악적인 사회부정의 고발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이의 제기, 나아가서 고발은 이미 하나의 시대착오이거나 아니면 지배계급의 언어를 빌려쓴, 따라서 호소력이 전무한 한낱 설교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기에 이러한 설교조의 부정고발 대신에 이제는 ‘과학적 언어’와 분석을 통하여 자본주의적 수탈과 착취의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필요성은 신앙의 새로운 언어를 요구하며, 이 신앙의 새로운 언어는 성서의 새로운 판독을 요구한다."

박 신부는 이러한 일련의 결의와 태도표명은 참가자들의 기질이나 일시적 흥분, 더구나 정치적 야심이나 이념을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신성화시키려는 데서 동기된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앙의 역사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진정성 추구의 일단이었으며 동시에 신앙의 역사화를 진지하게 기도할 때, 으례 따르기 마련인 지적 명석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전형”이라 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사회주의적 노선을 하나의 이념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방법론으로 채택할 수 있었고,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교적 현실참여의 효율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전한다.

"이처럼 추상과 구체성, 신앙의 요구와 사회참여의 구체적 현실화, 지적 명석과 효율, 이념의 초월과 방법론의 채택, 그리고 여기에서 결과하는 정치선택과 그 여파, 마지막으로 이러한 태도결정의 지역적 한계성에 대한 분명한 의식, 이렇듯 소박한 자세는 성서의 말씀을 새로이 판독하려는 청종(聽從)의 자세와 일맥상통한다"고 지적되어 있다.(<사목> 1972.9 68쪽 참조)

1972년 5월 1일자 프랑스 주교단 노동절 메시지

사회주의운동과 교회의 복음적 가치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실제 내용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악마적 요소에 대해서 서로 공감하고 있다고 프랑스 주교단은 공적으로 천명하기도 하였다. 1972년 5월 1일 발표된 노동절 메시지는 40여명의 주교들이 연서한 사목교서였다.

"근로자의 자유와 집단적 지위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운동이 시초부터 사회주의 지향적이었다고 하지만, 복음이 어떠한 형태의 사회주의와도 공존이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노동운동을 무더기로 거부하거나 단죄할 수 없다. 사회주의 안에도 다원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오늘의 실정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만 그리스도교 신앙은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이며 무신론적 철학을 예나 다름없이 용납하지 않는다. 한편 복음이 요구하는 사랑과 어떤 의미의 혁명활동 사이에는 화합의 여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권과 전인류의 지위향상이 보장되고 인간의 초자연적 소명이 충분히 표현될수만 있다면, 사회주의적 경제 및 정치체제와 복음사이에는 공존불가능이란 그야말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단언한다.

... 노동운동과 메시아니즘적 운동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그러기에 사회주의적 노선선택을 신앙이나 교회의 이름으로 신성화시키는 일은 단호히 거부한다. 그럼에도 복음적 진복(眞福)과 사회주의적 정치 및 경제계획을 일관하는 인간해방과 평등정신 사이에는 깊은 연계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사목 > 1972.9. 70쪽)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교회의 이러한 입장 변화는 물론 이탈리아 공산당이 그람시 이론에 따라서 반종교적 입장을 철회하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비교적 상대화하는 가운데 특히 이탈리아 안에서 가톨릭교회와 제휴를 통하지 않고 대중운동을 전개한다는 점에 회의를 보인 것과 같이 서구 사회에서 네오마르크시즘이 광범하게 유포되는 변화된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는 두 비오 교황 당시에 교회가 냉전이데올로기에 빠져 모든 사회주의 성향에 대해서 단죄해왔으나 요한 23세 교황 이후에 유물론 철학과 사회주의 운동을 구별해야 한다는 입장에 따라서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교회는 분단 상황이라는 상수로 인하여 사회주의에 대한 금기조항을 크게 벗어날 수 없는 가운데 세계교회의 조류가 소개된 것이다. 물론 한국교회는 이러한 동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공주의적 입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요청하는 사회적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폭이 확장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김지하 사건은 교회의 이러한 변화와 이중적 입장을 드러나게 해주었다.


▲영화 <이노센트 보이스>, 정부군과 이에 저항하는 반군의 내전이 지속되는 80년대의 엘살바도르 내전(Salvadoran Civil War, 1980 ~ 1992)를 배경으로, 아버지 대신 갑자기 가장이 된 열한 살 소년 차바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영화로 아름다운 유년시절의 평화로움을 파괴하는 전쟁의 잔혹함을 표현하고 있는 영화. 이 영화의 각본가 오스카 토레스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포로생활을 바탕으로 한 실화에서 비롯된 이야기로 인해 영화적 표현의 진실함이 진하게 전달된다. 감독 : 루이스 만도키 (Luis Mandoki) 출연 : 카를로스 패딜라 Carlos Padilla 레오노어 바레라 Leonor Varela 주나 프리머스 Xuna Primus 구스타보 무노즈 Gustavo Munoz 다니엘 지멘네즈 카초 Daniel Gimenez Cacho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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