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의 짱똘]

스스로 ‘모독’을 즐긴다?

연극 보러 돈을 주고 들어간 관객이 배우에게 욕지거리를 듣는다. 이어서 객석에 앉아 물세례를 받는다. 그럼에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 지독한 역설의 카타르시스다. 연극 <관객모독>은 1966년 초연된 피터 한트케의 획기적인 작품이다. 국내에는 1977년 극단 <프라이에뷔네> 고금석 연출로 첫 공연된 이후, 극단 <76> 기국서 연출에 의해서 2,3년에 한 번씩은 공연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존의 연극을 풍자하며 반연극적 태도를 일관하기는 하지만 실은 연극의 생명성과 현장성의 환기를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모독>의 ‘스토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설명하기가 난해해진다. 기존연극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연극. 그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든 연극. 행복한 결말도, 슬픈 사랑이야기도 없는 관객과 배우 그리고 연극자체만이 다루어지는 연극이다. 여기까지가 <관객모독>이란 연극을 소개하는 말들이다.

▲ 연극 <관객모독>

원치 않는 ‘모독’은 싫다

그러나 연극 <관객모독>이 아니라 정부 부처 장관들의 개각과 관련하여 실시간 라이브의 <관객모독>을 얼마 전 국내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관람한 바 있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와 함께 신재민 문화부, 이재훈 지경부 장관후보자가 이런저런 흠결로 자진사퇴하자 장관들의 인사권자는 갈아치우겠다고 했던 전임(?)장관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이른바 ‘도루묵’인사인 것이다. 하기는 그것이 재임명이 아닌 “당분간 유임”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정권의 고육지책을 넘어선 관객모독인 것이다.

8ㆍ8개각에서 교체돼 청와대에서 열린 고별만찬에까지 참석했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이 당분간 유임되는 이례적 상황을 언론은 ‘어색한 유임’이라고도 평했지만 한마디로 웃기는 일들이며 관객모독일 뿐이다. 청와대가 말하는 업무공백을 최소화하려는 변명 이전에 헌법상 국무위원 제청권을 갖는 국무총리가 공석이라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우리는 매번 헌법공부를 한 대로 국무위원 제청권을 국무총리가 갖는다고 하면서도 실제의 제청권은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됨을 모두 알고 있다. 이것 역시 철저한 관객모독인 것이다.

연극 <관객모독>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실험적인 작품이자 새로운 형태의 연극이지만 정치권과 장관 임명권자가 국민을 상대로 하는 관객모독은 관객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심사숙고야 했겠지만 이런저런 정치적 잣대로 총리 혹은 장관들을 내정하고 청문회 과정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치부가 들어나면 주저앉히기도 하고 그러고 나서 즉각 땜방 하기 어려운 자리는 ‘당분간 유임’, ‘어색한 유임’을 선언하는 것은 분명한 관객모독이다.

<관객모독>에 대한 의사표현이 필요하다

먹고사는 일상에 지친 국민들이 세상사에 별관심이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마라. 주권을 가진 국민을 관객으로 한 번 생각해보라. 무대 위에 올라 있는 배우 같은 정부 당국자들과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보고 있는 관객으로서의 눈들을 떠올려보라. 스스로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유치하고 덜떨어진 작품인지 스스로 평가해보라. 분명 관객모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연극<관객모독>이 흥미로운 것은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는 공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객이 서슴없이 손을 들어 의견을 말하고 무대에 직접 올라가 배역을 맡는 적극적인 자세가 있기에 그 연극이 훨씬 의미 있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도 <관객모독>을 당하지 않으려면 국민들의 적극적 의사표현과 참여가 실현될 때다. 지금여기에서 말이다.

김유철 /시인.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지부장.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교회비평집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2009 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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