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동성당의 매력, 소유의식 털고 담장 없애며 나눔의 정신 심어
고즈넉이 흐르는 음악, 작지만 아담하게 꾸며진 개울과 연못, 잘 가꾸어진 정원과 곳곳에 놓인 벤치는 여느 쌈지공원의 모습이나 개인 주택의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담장마저 없는 이곳은 동네 사람, 오가는 나그네, 동네 꼬마들의 단골 휴식처이자 놀이터 역할까지 한다. 도대체 어디이며 주인은 누굴까? 바로 서구 불로동성당(주임신부 민영환 토마스모어) 마당 이야기다.
이곳 성당의 이야기는 청소년들을 위한 암벽등반 장비설치와 머리에 얹은 게이트볼장으로 이어진다. 이쯤이면 성당은 특정 종교를 위한 전유물이거나 사적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공공장소이자 나눔의 공간으로 여길만하다.
불로동성당은 지난 2004년 11월 김포성당에서 분할된 후 지난해 초 새 둥지를 마련한 신설 성당이다. 주보성인을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으로 모신 탓일까, 위의 분위기가 무척 자연스럽다. 성당을 신축하며 지역주민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민영환 신부는 성당건축위원들과 수없는 논의와 연구를 거쳐 디자인과 구조 등 꼭 필요한 공간이며 기능을 갖추는데 노력했다.
외형적인 규모나 권위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배려, 신앙의 덕목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다소의 반대와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이 공감하고 이해해 주었다.
성당을 짓고 난 얼마 뒤인 7월 한 신자가 타 성당으로 떠나며 실내 암벽등반 장비 기증을 타진해왔다. 남편이 그 분야 기술자였기에 일은 수월했다. 약 2천만원 가량 드는 장비가 한쪽에 그렇게 마련됐다. 위로 오르는 인공암벽과 달리 불로동성당의 암벽은 낮지만 옆으로 이동하며 중급수준의 기술을 요한다. 아이들은 놀이터삼아, 청소년들은 기술을 익히며 체력을 키울 수 있다. 아직은 인공암벽 등반이 일반적이지 않고 많이 알려지지 않아 이용이 잦은 편은 아니다.
성당 2층 옥상에 올라앉은 게이트볼장은 2007년 10월 빛을 봤다. 마땅한 여가활용 스포츠 시설이 없는 노인들을 위해 민 신부가 서구청에 지원을 요청한 결과였다. 지역주민의 건강증진과 체력단련을 위해 서구의 예산과 국민체육진흥공단의 기금이 이곳에 쓰였다. 지난 4월15일 정식 개장식을 갖은 불로동성당은 20여명으로 회원을 모집한데 이어 지도강사, 심판, 운영요원을 갖추는 대로 케이트볼장을 개방할 예정이다.
신자들은 은근히 성당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외부에서도 특이하게 여기면서도 이용하기 편안한 동네 문화 체육 공간이 덤으로 생긴 것처럼 좋아한다고 민영환 신부는 귀뜸해 주었다.
민 신부의 남다른 철학은 이미 앞선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가 2004년 남동구 만수3동성당 주임신부였을 때 인천시의 민간 ‘담장없애고 나무심기’ 사업에 참여, 초창기 본보기를 삼은 바 있다. 당시는 담장이 없는 건물을 상상하기도 어려웠거니와 이미 있는 담장을 없애고 나무와 꽃을 심어 이웃과의 마음의 벽도 허문다는 용기가 일상적이지 않았다.
민영환 신부는 “성당 공간의 활용과 기능을 결정하는데 있어 주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신자들의 건의를 상당부분 고려했다.”며 “우리가 갖추고 있는 조건들은 성당 신자들에게도 우선 필요한 기능으로 ‘우리 영역, 우리 것’이란 독점의식에서 벗어나 함께 나누고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 신부는 “앞으로 인공암벽이 설치된 공간에 탁구대도 들여놓아 작지만 알찬 문화, 체육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나름대로 성당이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이자 이웃간의 소통의 장, 사회복음화에 기여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영일 2008-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