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전자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 범종교인 촛불기도회 열려

지난 5월 19일 오후 7시에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1000일을 기념하여 ‘비정규직 철폐 범종교인 촛불기도회’가 기륭전자 정문 앞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와 실천불교승가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의 종교사회단체가 참여하였는데, 가톨릭 성직자로는 예수회의 김정대 신부가 기륭전자와 금속노조, 발전노조 등의 노조원들과 함께 참석하였다.

기륭전자의 파업이 19일로 1000일을 맞았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 파견에 맞서 싸운 지 햇수로 4년이 됐다. 그 사이 회사는 대표이사만 4번이나 바뀌었지만, 누구도 이들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지난 11일에는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 4명이 서울 시청 앞에 설치된 임시 철탑에서 고공 시위를 벌였다. 위태로운 이 시위로 기륭전자는 정말 오랜만에 회사와의 교섭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6일 모처럼 노사 대표가 마주 앉았지만 회사는 “국내에 생산라인이 없어 복직은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이들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의 끝은 아직 아득하기만 하다.

박승렬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촛불기도회에서 가섭스님은 마침 쌀쌀한 날씨를 탓하며 머리를 매만지며 자신이 가장 추울 것이라며 웃음을 자아내고는 1000일 동안 투쟁해온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서울구치소에 한 달에 2번씩 방문하는데, 구치소 정문도 이렇게 굳건하게 닫혀 있지는 않았다”면서 “이 기륭전자의 닫힌 철문은 이 세상이 둘로 나뉘어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 닫혀진 철문이 언제 열릴지 가슴이 참 아프다”고 하였다.

또한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을 새기며 가슴으로 안아드리고 싶다. 1000일은 수행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데, 불교에서는 환골탈태하는 긴 시간이다. 그동안 우리 노동자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큰 욕심도 아니고 정규직 되기를 소원해 왔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요구인지 모르겠다. 어쩌다 이들을 외면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1000일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날이다. 우리 종교인들도 노동자들의 의지처가 되어 동행하고 노래하며 어우러질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김정대 신부는 고난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쳤는데, 김신부는 당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통하여 외로운 비정규직 싸움에 따뜻한 관심과 연대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몸의 일부가 병들어 있다면 그 고통은 몸 전체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김신부는 <민중의 외침>이라는 책 첫머리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하여 "독일의 나치 정권은 공산주의자를 색출하여 처형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관심도 갖지 않았다. 나치 정권은 얼마 후에 개신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톨릭이기 때문에 조용히 침묵했다. 그리고 난 후에 나치 정권은 가톨릭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주위에는 나를 위하여 외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서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김정대 신부에 따르면, “지금 비정규직은 일반적인 고용형태로 자리 잡으며 그 숫자가 850만에 이른다. 이는 임금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숫자이다. 이런 고용형태를 통해서 기업은 지출을 줄였고 이는 기업의 이익이 됐다. 반면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월 평균 소득 120만 원의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김신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는 현실은 나와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 당장은 나 자신이 비정규직이 될 수도 있고, 가깝게는 가족 중 어떤 사람이 비정규직이 될 수 있기에 나만 정규직이면 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날 기도회에는 노동가수인 박준(토마스) 형제가 월요일마다 명동성당 앞에서 벌이는 길거리 공연도 접고 달려와서 노래공연을 해주었고, 한국기독학생연합노래패의 공연과 이삼헌 선생의 춤공연도 곁들여져 추운 밤에 열기를 보태주었다.

마지막으로 양비안네 수녀와 정태효 목사,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 등이 낭독한 공동결의문에서는 “지난 1000일 동안 연약한 여성노동자들이 걸어온 길은 참으로 혹독한 고통의 길”이었으며, “점거와 천막 농성, 노숙농성 속에서 구속을 감수했고, 가정생계의 파탄을 감내하였으며, 30일 단식을 했고, 3보1배를 했으며, 철조망을 넘었고, 강철 대문을 뚫었고, 삭발을 두 번 씩이나 하면서” 우리 사회의 양심들에게 호소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1000일의 과정을 통하여 “기륭전자 경영방침이 실패했음을 확인”한다면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자기 일터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경영진의 결단을 촉구하였다.

/한상봉 2008-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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