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뭇하게 졸다 깼어요.
창틀에 앉아서
바람소리 듣다가 그만 졸다가
당신 생각을 하였나 봐요.
잠결처럼 부드럽게 다가와
꿈결처럼 가볍게 사라지는 당신을
생각 했었나 봐요.

가을이네요.
유리창 같은 하늘 때문에
저는 어디든 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끈적이는 땀내도 없이
살을 후비는 차가움도 모르고
곁에 있어도 아무도 모를
투명한 눈빛으로 제가 있네요.

아이들의 피부에 닿아 흐뭇해지고
출렁이는 벼이삭 사이를 빠져나가며
마냥 춤을 추고 싶네요.
가을은 모든 목숨들이 익어가는 계절,
모든 생명들이 생애를 셈하며
온갖 사랑들이 그대로 여물어 가네요.

주님, 이 가을에는 제발 그런 마음만이
온 세상 가득하게시리
녹슨 쇠 조각 죄다 거두어 가시고
시인의 말처럼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게 하소서.
제가 그 가슴에 내려와 당신 자비를 노래하리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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