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공의회 열어.. 하느님 안에서 사랑과 평화 찾아가

지난 8월 12일부터 3박4일 동안 의정부 교구 전역에서 2010 한국청년대회가 개최되었다. 청년 사목이 유실된 한국교회 안에서 청년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갈망들이 나오고 있다. 오늘 8월 20일은 로제 수사가 떼제공동체를 처음 시작한 날이다. 이참에 '젊은이들의 공의회'라는 떼제공동체와 로제 수사에 관한 이야기를 올린다. 이 글은 한상봉이 <야곱의 우물>에 실었던 글을 조금 더 다듬은 것이다. -편집자   

▲ 단조롭고 반복적인 음성과 불꽃이 청년들의 마음을 가장 깊게, 그러나 가장 열정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사진출처/떼제 홈페이지(http://www.taize.fr )

침묵과 기도와 노래

떼제공동체에서 사는 신한열 수사를 떠올립니다. 말씨 하며 뽀글머리가 눈에 삼삼합니다. 대학시절 한창 데모하고 변혁의 굿판을 치르고 있을 때, 동아리 선배였던 그 형은 매사에 진지하면서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선배였지요. 나이야 한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았지만, 선배의 끝 모를 호기심과 고민거리는 내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지요.

그 형이 졸업 후에 <생활성서> 기자로 들어가더니, <생활성서>의 기조가 급진적으로 바뀌더군요. 그의 열성이 그의 일터를 변화시킨 것일까요. 그런데 어느 날 소식을 들으니 만사 제쳐 두고 프랑스 떼제라는 곳으로 가버렸다고 하더군요. 평소 외국어를 잘하더니 그렇게도 살 수 있겠거니,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잠시 잠깐 다니러 갔다던 떼제에서 그 공동체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는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떼제란 특별한 침묵과 기도와 노래였지요. 그리고 선한 눈빛을 가진 로제 수사 정도였지요. 이른바 세속화 시대를 사는 우리 주변에서 전례가 빛을 잃어가고, 꼭 유럽이 아니더라도 이미 제 곁에도 이미 신앙과 교회를 떠난 이들이 많습니다. 설령 미사참례를 간혹 하더라도 그저 일과처럼 따분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한때 예술치료를 공부하고 피정지도를 이따금 하게 되면서 전례의 중요성이 새삼 재록 느껴지더군요. 그 이상의 것을 지향하며 그 너머의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분은 여전히 신비이며,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서만 어렴풋이 감지되는 사랑이지요.

<자유를 샘솟게 하는 사랑>에서 떼제 공동체를 창립한 로제 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이는 노래로 기도함으로써 모든 세대의 용기와 신심을 북돋아 줄 수 있습니다. 만일 교회의 전례나 예배 동안 어린이 하나 혹은 여럿이 노래로 기도를 선창하고 어른들이 후렴을 따라 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교회는 작은 촛불 여러 개, 성화들,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천 몇 폭, 그리고 무릎을 꿇거나 앉을 수 있는 방석이나 낡은 돗자리 등 아주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많은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누힌은 “말씀이 노래로 불리어질 때 그것은 우리 영혼 깊숙이 스며든다. 나는 오늘날 교회로부터 멀어져 가는 젊은이들이 교회에 마땅히 충만해 있어야 하는 신비를 거기서 발견하기만 하면 구름같이 몰려들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지요. 실제로 1974년 떼제에서는 4만여 명의 젊은이들이 ‘젊은이들의 공의회’라고 불리는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그가 죽고 없는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떼제를 방문합니다. 거기서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언어로 하느님을 예배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이 무엇인지 토론합니다. 그는 묻습니다. “그대는 자전거 위에 올라앉아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 사진 출처/떼제 홈페이지

일치와 화해의 상징

1940년 8월, 25살의 한 청년이 고국인 스위스를 떠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부 프랑스지역을 여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장차 하느님이 그에게 보내실 사람들과 더불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눌 공동체를 만들고자 집을 찾고 있었지요. 한창 전쟁이 무르익고 유럽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서로 학살하는 현장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신뢰를 나눌 수 있는지 실험하려는 것입니다. 중세유럽의 가장 큰 수도원 중의 하나가 있는 클뤼니 근방에서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던 로제는 어느 할머니로부터 점심밥을 초대받고, “젊은이, 여기에 머물게. 우리는 너무 가난하고 외롭다네”하는 말을 듣는 순간에 그곳에 정착하기로 합니다. 부르고뉴 남쪽에 있는 이 마을 이름이 ‘떼제’였습니다.

▲ 로제 수사
로제는 꿈을 이루고자 먼저 신학과 수도원 전통에 대하여 공부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다른 개신교 청년 6명과 1949년 부활절에 장엄 서약을 하고 공동체 안에서 평생 살기로 다짐합니다. 그들은 독신으로 살며, 재산을 공유하고, 로제를 ‘일치의 종’으로 삼아 그리스도를 닮고 그분을 섬기겠다고 다짐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외부의 도움이나 희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노동으로만 살아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창립 초기부터 어떤 선물이나 기부도 받지 않았습니다. 한편 <하느님의 오늘을 살며> <일치, 삶의 희망> <그대의 축제는 끝이 없으리> <투쟁과 묵상> <감히 기대조차 못 했던 삶> <사랑의 경이> <그대의 사막에 꽃이 피고> <기다림의 열정> <님의 사랑은 불이어라> 등 로제가 쓴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인간이 고통받는 현장에서 자신의 삶으로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떼제에 자리 잡으면서 로제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름답고 고요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1950년 공동체의 두 명의 수사들은 떼제 근처에 있는 탄광에서 일하기도 했지요. 한편 공동체는 여전히 작지만, 시선은 항상 세계적인 차원에 두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갈라진 세계의 고통 한가운데서 희망을 찾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현재 떼제에는 백여 명의 수사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그중에는 브라질과 방글라데시의 빈민촌과 아프리카의 농촌, 미국 뉴욕 슬럼가와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온 이도 있습니다.

이 공동체는 처음 개신교인들로 시작하였지만, 점차 성공회와 가톨릭 신자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갈라진 교회의 일치 운동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로제 수사는 아버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는 로제가 13살 때 가톨릭 신자 집안에 기숙을 시켰던 적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로제는 가족처럼 대접받았으며, 가난한 살림에도 아랑곳없이 아이들을 키우며 매일 성체를 모시는 부인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로제 수사는 성체성사를 “밥을 걷어 먹이는 교회의 모성적 사랑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로제 수사는 여러 종파로 갈라진 그리스도교 신앙의 일치를 위한 원천으로 교황과 로마를 응시했습니다. 1949년 교황 비오 12세와 처음 만나기도 하였지만, 그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1958년에 교황으로 선출된 요한 23세였습니다. 요한 23세 교황 역시 로제처럼 작은 시골동네 출신이었으며, 두 사람 모두 순진무구한 마음을 간직했고, 쇄신할 수 있는 교회의 능력에 대한 희망을 간직했습니다.

요한 23세는 로제 형제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관인으로 제일 먼저 초대할 정도였지요. 그 당시 요한 23세는 자신을 방문한 로제와 그의 형제들을 보고 “아! 떼제, 그 작은 봄철”이라고 외쳤습니다. 공의회 기간 로제가 다른 나라, 특히 칠레와 브라질 등 제3세계 주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들에게서 극도로 고통받는 세계를 발견하였으며, 그들과 연대할 필요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말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소신처럼 행실로 증거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 떼제에 온 젊은이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의 고뇌, 갈등, 사랑과 평화, 하느님에 대해…. (사진 출처/떼제 홈페이지)

젊은이들의 기도하는 공의회

떼제공동체는 교회의 목적이 교회가 아니듯이, 공동체를 늘리는 데 마음을 쓰지 않았고, 이곳을 거쳐 가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기도하며 생각을 나누어 세상으로 다시 나아가도록 돕습니다. 그들은 예전과 다른 희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6년에 떼제를 방문하여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떼제를 지나가는 것은 샘터를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나그네는 잠시 쉬면서 갈증을 풀고 길을 계속 갑니다. 공동체의 수사님들은 여러분을 여기에 붙잡아두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여러분이 기도와 침묵 가운데 그리스도를 통해 약속된 생명수를 마시고 님의 기쁨을 맛보며 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님의 부름에 응답하기를, 그리하여 이곳을 떠나 다시 여러분의 본당과 학교,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일터에서 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여러분의 형제·자매들을 섬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날 떼제에서는 연중 계속하여 젊은이들의 모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여름 동안은 매주 70-80개국에서 3천-6천 명의 순례자들이 떼제의 언덕에 모입니다. 보통 일주일 단위로 프로그램에 참석하는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온 젊은이들은 2-3개월씩 머물기도 합니다. 아침 낮 저녁 세 차례의 공동기도를 중심으로 엮어지는 한 주간의 프로그램 동안 로제 형제와 수사들은 하얀 수도복을 입고 그들 가운데 꿇어앉아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곳엔 벤치나 의자가 거의 없으며, 젊은이들과 수사, 주교와 추기경들도 바닥에 꿇어앉아 묵상에 잠깁니다.

그들은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공동체에는 Silence, Stilte, Stille, Silencio 등 여러 나라 말로 ‘침묵’이라고 쓰인 포스터가 걸려 있으며, 기도 안에서 짧은 말 마디를 반복해서 부름으로써 그것이 어느 나라 말이든지 하느님을 찬미하는 데 손색이 없이 충분하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젊은이들이 짧은 노랫말을 프랑스 어나 영어, 폴란드어나 라틴어로 반복해서 부르는 동안 수사들은 여러 나라의 말로 독창을 덧붙입니다.

로제 수사는 어느 아프리카 교부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대 안에 계신다. 그곳이 그분의 거처다. 그분께 기도를 바치되 마치 그분이 그대 밖에 멀리 계신 양 소리쳐 외치지 마라. 그분은 그대 존재의 깊은 곳에 계신다.”

바로 이들은 짧은 기도를 통해 자신 안에 잠겨 계신 하느님을 생생하게 상기시키려는 듯합니다. 로제 수사는 기도할 때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상책이 아님을 권고하고 있다. 십자 성호를 긋고 머리를 숙여 무릎을 꿇는 행위로도 충분히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마를 땅에 대고 기도하는 것은 매 순간 새롭게 우리 삶을 봉헌하려는 깊은 열망을 표현한다”고 말합니다. “기도는 내적 투쟁이며, 때로 그것은 아무 말 없이 침묵 가운데 그저 우리 전 존재를 하느님께 맡기는 것”이랍니다.


▲떼제의 기도와 노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