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박영대]

▲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중에서 박중훈.

맡은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한겨레신문> 2010년 8월 7일 자 23면에 실린 영화배우 박중훈의 글 “배우의 마음으로….”를 읽었다. 영화 <황산벌> 촬영 때 계백 장군이 처자식을 칼로 베는 장면을 찍기 1주일 전부터 새벽에 일어나 몰래 잠자는 처자식을 노려보기 시작했다는 고백을 읽으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반전 메시지를 담았지만 코미디 성격의 영화였는데, 자신이 맡은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그 정도로 노력했다니 놀라웠다.

권용석 변호사가 앞장선 사단법인 행복공장(www.happitory.org)에 참여하면서 같은 이사로서 박중훈 씨를 몇 번 만났다. 마지막 만났을 때는 그전의 반듯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건들거리는 게 영락없는 동네 양아치였다.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이 개봉된 뒤에야 그때 박중훈 씨가 촬영장 밖에서도 자신이 맡은 배역, 동네 양아치 ‘동철’에 몰입하고 있었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촬영장 밖에서도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가 최근에 몇 가지 일을 겪으면서 정말 그래야겠다,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야 극 중 인물이 습관처럼 몸에 착 달라붙은 연기가 가능하겠구나 생각했다.

지난달에 2박3일로 지리산에 다녀왔다. 출발 1주일 전에 발대식을 핑계로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을밀대 냉면집에서 다섯 명이 만났다. 한 분이 늦어 나머지 네 명이 먼저 방에 자리 잡고 앉는데, 붙어 앉으려고 하니까 좌장격인 어른이 늦게 오는 사람을 위해 가운데 편한 자리를 남겨두라고 하셨다. 또 한 수 배웠다 싶었다. 그런데 불과 1주일 뒤 지리산 여행을 하면서 헛배웠다는 게 금방 들통났다.

"너 담배 피울 때 늘 재떨이를 네 앞으로 끌어다 놓는 거 아니?"

지리산 밑에 사는 학교 선생님 댁에서 이틀 밤을 신세 졌는데, 첫날밤에는 좁은 부엌에서 삼겹살을 구워 소주 한 잔을 했다. 한참 먹다 보니 가장 어른이 가장 불편한 화장실 앞 자리에 앉으셨고, 나는 가장 편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사실도 일행 가운데 한 명이 지적해주고 나서야 눈치챘다. 아뿔싸. 그제라도 자리를 바꾸자고 하니 그 어른은 아무 상관없다며 한사코 손사래 치셨다. 또 한 번 아무 생각 없이 몸 습관대로 행동한 결과였다.

20대 후반에 친구로부터 따끔한 충고를 들은 적이 있다. 친구와 마주앉아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담배를 피우는데, 친구가 정색하고 “영대야, 너 담배 피울 때 늘 재떨이를 네 앞으로 끌어다 놓는 거 아니?” 한다. 전혀 의식하지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문제였다. 작은 일이지만 알게 모르게 내 중심으로, 나 편한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절대로 재떨이를 내 앞으로 끌어다 놓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 중심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습관마저 바꾸지는 못했다. 지리산에서 한 행동을 봐도 한참 멀었다.

의식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몸에 밴 습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공부 책이나 선생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의식 없이 행동하지 말고 무슨 행동을 하든 마음 모아 하라고 가르치는 모양이다. 하다못해 숨 쉬는 것도 의식하고 느끼면서 하라고 한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좋은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한다. 의식하지 않은 채 습관대로 행동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편하게 할 소지를 줄이려고.

어느새 심각한 표정으로

언젠가 아내가 충고하기를, 골똘히 생각하거나 길을 갈 때(아마 이때도 자연스럽게 무슨 생각을 할 거다) 내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무섭기까지 한단다. 그 뒤로는 혼자 거울 보면서 웃는 연습도 해서 이왕이면 웃는 낯으로 지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좋은 습관을 들이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어느새 심각한 표정이 되어 “또, 또.”, 아내의 지적을 받는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나를 바꾸어 새로 좋은 습관을 들인다는 것은 과거 습관에서 벗어난다는 것인데, 그게 쉽지 않다. 습관은 정말 질기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습관도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결국 순간순간 의식하며 행동하는 게 최선일 거다. 좀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예수도 제자들에게 늘 깨어 있으라고 요구하셨다. 습관은 바탕마음,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바탕마음,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습관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바탕마음, 마음가짐을 바꾸지 않고 습관을 바꾼다는 일은 불가능할 거다.

자잘한 습관이라도 제대로 바꿔보려고

바탕마음, 마음가짐을 통째로 바꾸는 게 우리가 말하는 회개가 아닐까. 바탕마음을 하느님 나라, 하느님 뜻에만 두는 일, 그렇게 내 바탕마음, 마음가짐을 한꺼번에 바꾸는 일이란 정말 어렵다. 나이가 들면서(어른들이 들으면 가소롭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자잘한 습관이라도 제대로 바꿔보려고 애쓸 뿐이다. 그러다 보면 바탕마음, 마음가짐도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최근 지갑, 메모리스틱을 연달아 잃어버렸다. 잃어버리진 않아도 깜빡하는 일이 잦다. 챙기는 걸 자꾸 잊으니 앞으로는 더 간소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상징으로 필기구를 하나로 줄여 만년필만 주머니에 꽂고 다닌다. 이것만이라도 계속 잘 지킬 수 있어야 할 텐데.

박영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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