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영훈 위원장, 팔당공동대책위 위원장, 팔당 생명살림 회장
- 20여 년 농민과 더불어 온 생명운동의 길
- 4대강 반대는 가치관 싸움, 나의 모두를 걸 것


서울지방국토청 앞에서 유영훈 회장(사도 요한, 57세)은 지난 8월 9일부터 무기한 단식 중이다. 지난달 29일 팔당 유기농 단지에 대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의 공탁신청으로 행정대집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두 번째 단식을 감행했다.  

유영훈 회장은 지난해 12월에도 19일 동안 단식을 하며, 서울에서 팔당까지 50여 킬로미터 도보순례까지 했다. 유 회장이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농지를 보존하기 위해 팔당 지역 농민들과 함께 투쟁한 1년 3개월 동안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였지만, 결국 올겨울 딸기 농사만이라도 짓게 해 달라는 요구마저 무시당하자 다시 거리로 나섰다.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다시 싸움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평생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농민운동과 생명운동에 천착해 온 그의 삶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편집자

“용기있는 사람은 나오시오”

▲ 유영훈(사도 요한) 팔당공대위 위원장

유영훈 씨는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도, 어머니는 평안도였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김포와 인천에서 다녀서 인천은 제2의 고향과도 같다. 유영훈 씨가 운동가의 삶을 살게 된 첫 계기는 대학 때였다. 대학 1학년,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뛰어들어오더니 총학생회장이 연행되었다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부도 되지 않아서 나갔을 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경찰 봉쇄를 뚫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답답해하며 그저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누군가가 “용기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시오. 우리가 뚫읍시다.”라고 말해 맨 앞, 가운데 줄에 섰다가 연행이 됐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유영훈 씨의 첫 번째 “행동”이었다.

신앙인, 농민운동가의 길;
‘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운동이어야 한다.’

그 뒤로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구속되기도 하면서 결국 군대에 가게 되었다. 제대를 하고 보니 학생운동 출신들이 대거 노동현장에 투신하는 분위기였다. 유영훈 씨는 인천에서 고등학교 동기들과 야학 활동을 하던 중 1980년 5월, 민주화의 봄과 함께 복교했다. 그러나 다시 현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때마침 한 선배가 가톨릭농민회를 소개해 1983년 3월, 수원교구 농민회 총무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 즈음 '사도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도 받았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 가톨릭 교회의 모습을 봐왔고 누나를 비롯한 가족들이 신앙활동을 하고 있어 호감이 있었던 터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도 요한, 요한은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던 제자였으며,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셨던 제자다.  

1983년부터 1998년까지 가톨릭농민회 활동가로 살았다. 1988년부터는 전국본부 홍보부장과 사무국장으로, 90년대 초반부터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 ‘우리콩 살리기 운동본부’,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까지 농민운동은 그의 청춘시절을 고스란히 바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가톨릭농민회는 농민운동을 통해 민주화를 쟁취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싸워도 나아지지 않으니 내부에서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운동을 할수록 체제의 변화에 앞서 사람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장 내 안에도 소유욕, 독점욕이 있는데. 사람이 변하지 않는 한 세상이 변할 수는 없다, 운동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결과가 생활 속 운동을 위한 우리밀, 우리콩 살리기 운동본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밀살리운동 등 두 단체를 만들면서 많은 애를 썼지만 모두 정리를 하면서 정말 많은 고통을 겪었다. 운동과 사업이 결합한 새로운 시도였지만 사업 영역에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결부되고 갈등을 불러왔다. 함께 했던 동지들 사이에 틈이 생기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조직운동, 사회변혁 운동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꼈다.

"다시는 조직운동은 쳐다보고 싶지 않았어요. 농담처럼 지인들에게 ‘이제 경춘가도에서 옥수수빵 장사를 하며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 유영훈 위원장은 국토관리청 앞에서 여전히 침묵과 단식으로 시위 중이다. 최근 천주교연대 사제들이 이 단식에 동참했다. (사진/한상봉 기자)

온 국민과 더불어,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

또 한 번의 계기는 ‘천주교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 지금의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였다. 첫 번째 시도가 생활운동, 대안 운동으로 농민운동의 내용을 바꾸자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는 운동 주체의 확장이기도 했다.

민주화로 농민운동이 대중화되면서 종교적 농민운동이 해야 할 역할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보다 근본적 변혁, 사회 변화를 모색하는 운동으로 나가야 한다’는 고민에서 생명존중, 도농연대, 유기농 공동체 운동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로 농업이 더욱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당시 김수환 추기경을 주례로 명동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그때 추기경이 “마음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아무리 어려워도 마음을 굳건히 먹고, 생명을 버리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어렵지만 농민뿐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농업 살리기에 나서면 이것을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 데 용기를 얻었다. 그 말을 듣고 교회 안에서 농촌살리기 운동을 해보자는 생각에 출범시킨 것이 ‘천주교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고 운동의 주체가 농민에서 전 국민으로 확장되는 운동이었다.  

팔당 생명살림, 또 하나의 운명

1990년대 말, 몸담았던 모든 조직을 떠나 휴식을 얻으려고 예전에 함께 운동을 했던 지인을 방문했다. 유영훈 씨의 오랜 동지였던 그 친구는 이미 팔당에서 유기농 운동을 하면서 생산자 조직을 만들었고, 유영훈 씨에게 생활협동조합을 함께 꾸려보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당시는 의욕도 없었고 경험상 생협은 한번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생각이어서 주저했다. 결국 가볍게 시작하자는 말에 초대 이사장이 되었고 3년 전부터 팔당에 어려움이 생기자 생협과 영농법인이 결합한 생활문화운동 단체, ‘팔당생명살림’의 대표를 맡던 중 4대강사업이 시작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4대강 사업은 나로서는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생명중심의 가치관으로 살아왔고 또 그 바탕에는 농업적 세계관이 있습니다. 산업으로서의 농업은 축소될 수밖에 없지만, 농업 속에 담긴 유기적 세계관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그런 면에서 나는 농본주의자입니다.

나는 이 싸움을 가치관 싸움으로 규정합니다. 생명 중심과 물질·편의 중심의 가치관이 대립하고 있죠. 그래서 이 싸움에 그동안 쌓아왔던 내 모든 경험과 가치관을 쏟아 부으려 합니다. 내 삶의 최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나를 이끄시는 분, 그분이 현장을 보고 계신다

돌아보면 힘든 일들을 견디고 계속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신앙' 때문이었다.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사회정의를 위해 투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앙은 생활 자체이고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지금껏 그래 왔지만,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나든지 주님은 나를 또 어떤 길로 이끄실 것이고 나는 받아들일 거에요."

유영훈 씨는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라는 책으로 유명한 취제크 신부가 쓴 <나를 이끄시는 분>이라는 책을 통해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읽고 응하는 자세를 배웠다. 이 책은 러시아에서 겪은 영적 체험을 중심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자유를 향한 갈망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꺾을 수 없으며, 오히려 더 깊은 어둠일수록 하느님께 향한 우리의 믿음은 강한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책이다.  

팔당 농지를 지키기 위한 1년 3개월간의 싸움 속에서 팔당공대위 위원장 역할을 맡아 주도적으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마다 하느님께서 함께한다는 믿음으로 온전히 맡겼다. 유영훈 씨는 이번에 단식을 시작하면서 혼자 자리를 펼 수 있을지, 쫓겨나지 않을지, 고립되지 않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단을 하고 나니 자연스레 일이 흘러간다고 말한다.  

"지금도 단식을 하면서 이것을 통해 하느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고 어떻게 이끄실 것인지 생각합니다. 더 고통스러워져도, 이를 통해서 그분께 더 가까이, 그분 뜻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이 현장을 그분이 보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들이 뭐가 대단합니까. 이렇게라도 의로운 길을 가고, 하느님을 조금이라도 더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유영훈 씨의 가족들 모두 독실한 신앙인이다. 유영훈 씨의 첫 딸은 수도자를 선택했다가 건강상의 문제로 나와 있고, 둘째딸도 이제 1년 된 청원자다. 그래서인지 유영훈 씨는 자신이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바치는 기도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유영훈 씨는 늘 스스로 영웅시하거나 투사화 하는 것을 경계한다. 때론 팔당에 쏟아지는 과도한 사랑이 부담스럽고, 생명이라는 가치를 외치면서도 부족한 것이 많은데 이 과분한 사랑에 대해 보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겸허해진다고 말한다.  

"결국은 성령께서 이끄는 것이고 내가 가진 경험들은 도구일 뿐입니다. 함께 하는 이들과도 늘 이런 생각을 나누고 있어요." 

사람, 그들 덕분에 행복하고 힘을 얻는다

유영훈 씨는 팔당 일에 뛰어들면서, 아니 그전부터도 활동가로 살면서 늘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했다. 가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노모가 계시지만 유영훈 씨가 길거리에 단식에 나섰다는 이야기는 모른다. 다만 아내만 마음 아파한다. 그래서 '미안해할지라도 부끄럽게 하지는 않을 것'을 다짐한다.  

"지인들은 나에게 돈 안 되고 빛나지 않는 일만 한다지만 이 모든 것이 내 삶이니 모두 받아들이려 합니다. 어려움도 있지만 보람도 있으니까요. 지금도 적지만 함께 버티는 팔당의 농민들이 있고 사람들의 호응이 이루어지고 일이 되어갈 때 행복합니다. 지난번 단식 때도 굉장히 행복했어요. 몸은 힘들지만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생산자들 마음이 흐트러지려 할 때 한 곳으로 모을 수 있었고, 내가 투신해서 사람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면 그 이상의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유영훈 씨에게 멘토가 되어준 분도 많았다. 모두 꼽을 수 없을 정도지만, 특히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김 추기경이 하늘에서 도와주실 것이라 믿는다. 의정부 호평동 초대 주임이었던 나요한 신부(골롬반)를 통해서도 신앙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보게 됐다. 지금 봉화에서 농사짓고 계신 정호경 신부, 가톨릭농민회를 함께했던 김상덕 선배(전 가농 전국회장) 등은 매번 중대한 결단을 내릴 때마다 떠올리곤 하는 멘토들이다. 

▲ 두물머리에서는 연일 오후 3시가 되면 팔당 농지 보존과 4대강 사업 중지를 촉구하는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사진/한상봉 기자)

4대강 사업, 국민이 막아 낼 것

유영훈 씨는 "시대가 변하고 있다. 일방통행은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4대강 사업 역시 소수 운동가나 어떤 정당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국민의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의사표시의 기회만 준다면 결국 국민이 4대강 사업을 막아줄 것이라 확신한다. 다만 운동가들이 겸허하게 국민이 나설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한다는 오만함이 아닌 진정성을 통해 국민이 응답하도록 노력하자"고 덧붙였다.  

유영훈 씨는 “용기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시오”하는 그 목소리에 지금도 끊임없이 응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시작처럼 이 지루하고 힘든 싸움의 앞줄, 가운데에 서 있는 그에 대해 알리고 싶어서 계획한 인터뷰였다. 복중 더위에 굶는 사람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알량한 언론의 직무를 앞세워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들었다. 듣는 내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그 삶의 일치성이었다. 그야말로 생각과 말과 행위가 평화와 생명의 길로 점철된 일치성. 무엇을, 왜 하고 있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삶이 던지는 질문에 충실히 응답해 온 이의 내공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었다.

유영훈 씨는 현재 정동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앞에 자리를 펴고 무기한 단식 중이다. 사람들의 호응이 가장 큰 보람이라는 그를 응원 하고 싶다면, 생수 한 병 사들고 방문해보시길. 이 순간 화살기도 한 번도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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