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헌 님의 글을 읽고

강형!
몇 달 전 강형이 근무하는 합정동 사무실에서 만난 기억이 새롭습니다. 강형과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신학연구소가 발행하는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 편집기획위원으로 함께 위촉받고서 두어 번 만난 일이 있었죠. 이후로는 신앙인아카데미의 <맘울림>을 통해 글로 만난 것 같습니다.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같은 길을 가는 동지로서 늘 연대감을 가지고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실린 강형의 글을 슬프게 읽었습니다. 프린터로 출력해 몇 번을 거듭해서 읽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성스럽게 쓴 강형 글에 대한 예의란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강형이 세상에 대한 반어법으로 쓴 글로 이해했지만 거듭 읽는 동안 강형의 아픈 마음이 절절히 들어가 있는 직설법으로 느껴졌습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저의 마음도 함께 아팠습니다. 오랜만에 연애소설이 아닌 세상에 관한 글을 읽고 눈시울까지 뜨거워졌다면 믿으실는지요?

▲ 모든 길이 물에 젖어 미끄럽지만,그래도 갈 길을 가야 하겠지.(사진/한상봉 기자)
강형!
강형이 말한 동학혁명부터 5·18까지 이어지는 근현대의 역사적 사건들과 부패정권과 군사정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그리고 MB정부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정치세력들, 그리고 작금에 벌어진 쇠고기수입, 용산, 쌍용, 세종시, 천안함, 4대강, 대기업편향으로 이어지는 무소통, 무개념, 일방통행의 신독재 횡포 앞에 강형은 태극기는 쳐다보기 싫고 애국가 가락은 역겨울 뿐이라고 울분을 토로했습니다. 이내 강형은 글의 말미에 그 아픈 마음으로 “조국 대한민국의 파멸을 기원한다”라고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강형이 깊은 마음으로 쓴 글에 대해 아무리 답장의 형식으로 달았지만 입을 대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제가 강형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강형, 서둘러 저의 결론부터 말씀드리지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차피 망할 나라 어줍잖게 연명시키지 말자고 하셨지만 저로서는 대한민국이 내일 망할 나라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말하는 대한민국은 ‘남쪽’의 개념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형도 말한 ‘조국’의 개념의미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의 생각이나 강형의 생각은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저로서는 평상시에 강형의 말보다 더 거세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강형!
강형의 마음이 가장 절절히 전해온 대목이 있습니다.

“반민특위를 작살내며 들어선 친일과 친미의 나라 대한민국 / 농민과 노동자를 압살하며 부를 이룬 나라 대한민국 / 사람도 모자라 강산까지 파헤치며 경제를 위해 모든 것을 팽개치는 나라 대한민국 / 어린 자녀들과 초등학생들을 학원에 위임하는 나라 대한민국 / 중고생들이 자살하는 나라 대한민국 / 대학들이 장사판으로 변해버린 나라 대한민국 / 시간강사들이 자살하는 나라 대한민국 / 4-50대 가장들이 자살하고 급살을 많이 맞는 나라 대한민국 / 노인 자살률이 높은 나라 대한민국 / 교통사고가 가장 빈번한 나라 대한민국 / 성추행과 성폭행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나라 대한민국”

강형은 이런 나라가 더 이상 존속할 가치가 있느냐고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존속해야한다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존속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강형의 질문 아닌 질문에 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신앙의 존재께서도 그 질문 앞에 무엇이라 답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파멸을 기원할 수는 없습니다.

강형!
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지나온 인류역사가 2010년보다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나온 조국의 역사가 2010년 여름보다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나온 아버지 어머니의 삶이 2010년 8월의 나와 아내보다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나온 벗들의 삶이 2010년 8월 10일보다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조건적인 긍정론에 근거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나온 것들보다 지금이 낫다고 현 정부를 찬양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벼락 맞을 일이지요.

조국이 오늘 처한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암담하더라도 선배들이 눈물로 씨 뿌리며 이끌어온 오늘입니다. 강형과 더불어 부끄러운 저 역시 어깨동무의 말미에서 눈물로 씨 뿌린다면 우리의 앞길은 어려워도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조국의 재창조를 위한 ‘파멸’도 의미가 있겠지만 더디 가도 방법은 있을 것입니다.

강형과 저는 조금 더 조국의 틈을 빌려 살다갈 사라질 존재들이지만 우리들의 자식, 그 자식의 자식, 그 자식의 자식의 자식이 살아갈 조국입니다. 남쪽과 북쪽이 함께 부둥켜안고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조국입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비록 힘들고 역겹고 아니꼬운 일들이 한시의 틈도 주지 않고 우리의 코앞에서 벌어지더라도 함께 이겨나갑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도통한 마음이 아니라 “시~펄” 한 마디 잊지 말고 던지면서 말입니다.

강형 아픈 글에 오히려 화를 돋운 추임새가 되지 않았는지 걱정됩니다. 다시 한 번 용서 바랍니다. 서울 가게 되면 막걸리 한 사발 대접하리다. 조국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두손모음.
 

김유철 /시인.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지부장.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교회비평집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2009 리북)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