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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다[시사비평-변진흥] -경술국치 100년, 천안함 사태를 바라보며

8월..... “100년 전 일본에 나라를 강탈당했던 것도 8월이요, 35년 후 일제의 굴레에서 해방된 날도 8월이었다.” 라는 탄식이 도하(都下) 모든 신문을 뒤덮고 있다. 그 100년의 세월 동안 우리에게는 진정한 평화가 없었다. 평화를 누릴 자격도 힘도 강탈당했기 때문이다.

100년 전 8월2일. 이날은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된 날이다. 어느 일간지는 ‘그때 오늘’을 지칭하며 “군대 해산당한 대한제국, 망국(亡國)은 이제 시간문제였다.”라고 제목을 달았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국호로 택하고, 중국과 대등하게 황제라는 칭호를 앞세웠다. 그러나 일본천황의 밀명을 받은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양위를 강요받고 황제에서 물러나고 만다. 이토 히로부미는 곧바로 ‘정미 7조약’으로 행정권과 사법권까지 장악한 후 허울만 남은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킨다. 비록 순종의 조칙으로 군대해산 명령이 내려졌지만, 황제의 뜻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대한제국 군인들은 겹겹이 에워싼 일본군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 맞서 싸우다 죽어갔다.

안중근은 그의 아들에 답한다. “나는 너다.”

   
▲연극 '나는 너다'는 7월 27일부터 8월 29일까지 국립극장 KB청소년 하늘극장에서 공연된다.
이처럼 대한제국의 황혼을 핏빛으로 물들게 했던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 그를 만주 하얼빈 기차역에서 저격하여 목숨으로 단죄한 것이 안중근이다. 며칠 전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연극 ‘나는 너다’를 관람했다. 안중근은 대한제국 의병중장이란 자격으로 적장을 사살한 것임을 공언하며 만국공법으로 재판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게 만든 죄목을 무려 15가지 열거했다. 그 가운데 8번째가 군대를 해산한 죄, 14번째가 동양평화를 깨트린 죄이다. 일제는 국제적으로 문제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항소하게 만들려 했다. 항소는 일본 국내법 절차를 의미하므로 안 의사가 일본 국내법을 수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안 의사의 모친 조 마리아는 항소 포기에 동의한다. 구차히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너다’ 작품의 진수는 안 의사의 아들 안준생을 조명한 것에 있다. 그가 비록 친일분자, 반역자로 간주되었지만, 어린 그는 무너진 조국의 그 어느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채 결국 사악한 일제의 농간에 놀아나고 만다. 그는 처절하게 부르짖으며 아버지 안중근에게 묻는다. “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떠돌아다녔을 뿐이다. 영웅의 아들도 영웅이어야만 했는가?” 연극 속에서 안중근은 그의 아들에 답한다. “나는 너다.”

정부의 한순간 실수가 온 국민을 고통에 빠뜨린다

1964년 8월2일에는 베트남 연안에서 정찰 중이던 미국의 매덕스 구축함이 북베트남의 어뢰정으로부터 공격받았다고 보도됐다. 미 해군은 보복으로 3대의 북베트남 어뢰정을 파괴했다. 이틀 후인 8월4일 존슨 행정부는 매덕스와 터너조이 구축함이 또 한 차례 공격받았다고 발표했다. 미 하원은 8월7일 대통령에게 전쟁을 확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고, 이후 미국은 10여 년에 걸쳐 베트남 전쟁의 늪에 빠지게 된다.

사건 발행 후 7년이 지난 1971년에 작성된 펜타곤 보고서는 통킹만 사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1981년 재조사 때에는 사건 당시 매덕스호의 함장으로부터 북베트남 어뢰정의 공격이 없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심지어 터너조이함에서 매덕스호를 향한 함포 사격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005년에 미 국가안보국은 통킹만 사건이 당시 정부의 의도적인 왜곡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러한 내용을 기사화한 중앙일보는 “이 사건은 정부의 한순간의 실수가 온 국민을 고통에 빠뜨린다는 귀한 교훈을 준다.”고 결론짓고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한반도 주변 해역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고문인 마이클 그린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 회담 테이블을 만들면서 전례 없이 외교적 협력관계에 접어들었던 한미와 중국관계가 다시금 퇴보 국면을 맞고 있고, 중국과의 신냉전시대 도래를 우려케 한다고 말한다. 천안함 사태는 북한에 대한 한․미․중 세 나라의 숨겨진 진의를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 문제에서 캐스팅 보드를 쥐고 있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고, 미국 역시 한미동맹의 힘을 과시하면서 전략적 양보가 없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천안함 사태를 앞세워 동해와 서해에서 전개되는 전대미문의 한미군사합동훈련이 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 북한과 중국이 왜 그토록 날카롭게 반발하는지 이해된다. 이제 한반도 주변 해역은 신냉전시대 개막의 진원지가 될 운명의 굴레 속으로 점차 빠져 들어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평화를 원하면 평화적 방법으로 접근하라

평화학의 창시자 요한 갈퉁 박사는 “평화를 원하면 평화적 방법으로 접근하라.”고 말한다.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갈퉁은 한반도 통일문제와 한미관계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에서 조언해 왔다. 그는 반미론자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미국은 현대사에서 유일한 수퍼 파워가 되기까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고 한다. 부분적인 실패는 있었어도 궁극적으로는 늘 승리를 챙겨왔고, 그 힘으로 오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의 외교정책에는 양보가 없다. 언제나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고 아니면 응징할 뿐이다. 응징의 효력이 떨어졌을 때 돌아서긴 하지만, 그것도 국익에 대한 냉철한 판단 때문이다.

미국은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국익을 위해서라면 결코 평화적 방법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갈퉁은 미국이 말하는 평화 속에 ‘평등, 균형, 동질성, 상호 호혜주의’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오로지 효과적인 응징수단을 동원할 뿐이며, 또 이에 필요한 엑스트라를 최대한 동원한다. 그 힘이 뻗치는 한계를 ‘미국 제국주의’라고 갈퉁은 표현한다. 갈퉁은 이 ‘미국 제국주의’가 불과 20년 안에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렇다면 혈맹으로 맺어진 엑스트라 역의 종점은 어디일 것인가.

작전명 '불굴의 의지', 끝은 무엇인가

지난 7월29일자 중앙일보는 한미 연합해상훈련의 작전명인 ‘불굴의 의지’의 끝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어 이채롭다. 이 훈련이 단순히 천안함 사태만을 겨냥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이미 2003년 7월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지 보도로 드러난 미국의 ‘작전계획 5030’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작전계획 5030’은 북한의 정권 교체를 겨냥한 교란 작전을 담고 있다.

소개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①수 주간에 걸친 기습적인 군사훈련으로 북한 주민들을 벙커에 들어가게 하고, 식량 비축분과 자원을 고갈시킨다. ②RC-135정찰기를 북한 영공 부근으로 전개해 북한 항공기들의 대응을 유도한 뒤 기름을 소진시킨다. ③김정일의 자금 네트워크를 파괴한다. 이 기사에 따르면 최근에 드러나고 있는 미국의 움직임은 작전계획 그대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규모 군사기동훈련과 미국의 새 대북 금융제재는 하나의 전략적 틀 속에 있다.

이 기사도 “전임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부정했던 오바마 행정부가 네오콘이 작성한 작계 궤도에 올라선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부시는 “잘못된 행동에 보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오바마는 “잘못을 깨닫게 해주겠다.”로 바뀌어 더 강력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목한다. 앞으로 “미국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북한 비핵화의 진전을 끌어내기 위한 ‘함포 외교’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외줄타기의 정권교체로 내달을 것인가. 현재로선 미국의 출구전략을 가늠키 어렵다.”

진보와 보수의 벽을 넘어 내가 너의 밥이 되어주고

나라를 빼앗겼던 ‘국치100년’을 맞은 오늘의 한국사회. 겉으로는 100년의 몇 배가 넘을 만큼 화려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국력도 커졌고, 일상생활의 편리함은 어느 선진 국가와도 견줄 만하다. 그러나 놓치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외적으로는 안이함 속에, 내적으로는 소모적인 이념갈등과 집단적 이기주의의 충돌로 옆구리가 터져나가는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는 위기불감증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보다 모양은 커졌지만, 바닥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속은 온갖 불신과 증오로 촘촘히 벽을 쌓은 ‘위기의 한국사회’일 뿐이다. 여기에 누가, 과연, 어떤 평화를 말할 수 있는가. 지난 10년보다 오늘 더 평화가 증진되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안중근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증오보다는 정의, 전쟁보다는 평화, 보복보다는 상대와 함께 상생의 평화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진정한 평화를 말했던 그가 아쉽기 때문이다. 그 참된 평화를 무엇보다 먼저 우리 자신 안에서 찾아나가야 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하기에 ‘나는 너다’라고 안중근이 아들 안준생에게 말하듯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서로 ‘나는 너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야, 진보와 보수의 벽을 넘어 내가 너의 밥이 되어주고, 십자가를 대신 짊어짐으로서 하나 되는 길을 열어 나가는 ‘평화의 새 지평’을 열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중근은 일본군 포로를 놓아주었다. 그 때문에 보복공격을 당해 처참한 피해를 입었지만, 만국공법에 따른 조치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어디에 내놓아도 떳떳한 정규군 장군이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그러한 ‘평화 대의론’에 입각한 것이었다.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평화, 진정한 세계평화를 다시금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2010년 8월, 오늘의 화두, 그것은 바로 ‘나는 너다’.

변진흥 /가톨릭대 김수환추기경연구소 부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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