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의 짱똘]
공직을 맡은 자들의 무한한 아픔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적절하고 당연한 말이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도 그냥 사람이 아니라 적당한 자리에 적당한 사람이 앉아야 일이 풀려나가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든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가 부르는 일들이다. 단순히 한 사람의 능력이나 학식에 의존한다면 ‘인사가 만사’라는 격언은 생겨날 수도 없을 것이다. 부족한 능력과 넘치는 능력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 의지하고 때로는 연대하며 혹 때로는 서로 갈등하면서 주어진 일들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인 예수가 하느님을 모독한 독성죄와 동시에 이스라엘의 왕을 참칭했다는 반역죄로서 기소되었을 때 당시 이스라엘 총독이었던 빌라도는 그 재판 마무리에 손을 물로 씻었다. “나는 이 무리한 재판에 책임 없다”는 뜻이었지만 그것은 비겁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 대가로 예수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예배를 드릴 때마다 기도문 속에 그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한마디로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그의 이름은 계속해서 씹혀질 것이다. 자리에 앉은 책임은 그런 것이다. 그것이 공직을 맡은 자들의 무한한 아픔이기도 하다.
투명형 총리의 퇴장 그 이후
운동경기에서 감독에게 경기에 대한 작전 못지않게 큰 고민은 선수교체 타이밍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직에 대한 인사가 만사라면 그 인사에 대한 적절한 ‘때’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할 것이다. 현재의 MB정부 역시 정 총리의 사직서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제출한 이후 내각개편에 대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여당이 승리로 생각하고 있는 국회의원 보궐선거 성적표를 비롯해 많은 참작요소가 그 ‘때’와 ‘폭’을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있을 것이 뻔한 일이다. 문제는 당사자들이다. 임명권자의 심기를 헤아리지 않고 사임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책임질 일들 앞에, 주권의 소유자인 국민들 앞에 자신의 책임에 대한 입장 표명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임명권자의 마음에 목을 매달고 있는 모습이 빌라도의 손 씻는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은 하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느냐?”는 말을 자신의 명패 앞에 한 번 놓아보시라. 그것이 국무총리든, 국방부장관이든, 외교부장관이든 혹은 선출직인 국회의원일지라도 책임질 일이 있으면 자리로서 말하라. 사임이 최선책이란 말이 아니라 책임질 사람이 뭉개고 있는 사이 그와 연대한 수많은 관계가 붕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사의 적당한 ‘때’를 놓쳐 결국 모든 것이 붕괴한 후에 그곳에 새로운 사람을 임명해봤자 줄줄이 동네북 되는 것은 야구경기 투수교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법 아닌가?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발생하여야만 자리를 내어놓은 것은 아닐 것이다. 권한 있는 자리일수록 한 사람이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모두가 힘들어지는 법이다. 적당한 때란 말을 흘려듣지 마시라. 하느님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음에도 있는 것이니.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라.
김유철 /시인.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지부장.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교회비평집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2009 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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