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 육십 오일을 어린이날처럼 잘 해주고 싶은, 아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어린이날이다. 동물원이나 놀이공원, 백화점이나 영화관, 통닭이나 피자 등등 갈 곳도 많고 해주고 싶은 것도 많은 날이다. 아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잠을 실컷 자게 내버려두고 싶은 날, 새벽 5시 30분에 알람을 울리게 했다.

새벽 6시에 성당에 모여 초중고 아이들과 대운하 순례를 출발했다. 밤새 비가 온 뒤의 맑은 하늘과 푸른 산하는 어린이날처럼 싱그러웠다. 휴게소도 들리지 못하고 봉고차 안에서 김밥을 먹었다. 오전 8시 10분 대운하 순례 출발지인 관광농원에 도착했다.

오전 9시 어린이날을 맞아 출발에 앞서 기도를 드린다. 박소현(중2) 학생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저의 집 옆에는 전주천이 흐릅니다. 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며 자연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대운하는 그런 전주천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운다는 것인데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전주가 전국에서 제일 무더운 도시가 되었습니다. 새만금이 막히고 나면서부터 더 심각해졌습니다. 새만금 지역에 바닷물이 들어와 시원한 바람을 제공해야 하는데, 바닷물이 방조제에 막혀버렸습니다. 대운하가 건설되면 강바람이 막히게 되어 전국이 찜통처럼 덥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도 두려워요…."(그만 말을 잇지 못하고 울고 말았다.)

눈물처럼 아름다운 기도가 어디에 또 있을까. 맑은 영혼의 울림이 순례 참가자들의 눈망울에도 붉은 이슬방울을 맺히게 했다. 다음은 어린이날의 주인공인 김여진(초등1년)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제가 꿈을 많이 꾸는 것처럼 강과 산도 좋은 꿈을 꿀 수 있도록 자연을 보호하고 싶어서 순례에 왔습니다.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 즐겁게 걷도록 하겠습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계절의 여왕 오월은 온 산을 푸르게 덮어가고 있었다. 바람은 참나무 잎들을 뒤집어 마치 은빛 꽃을 피운 것처럼 눈부시게 했다. 철쭉이 지고 있는 도로를 따라 아이들과 어른들이 걷는다. 걸음걸음마다 침묵의 기도가 된다. 그 길 위로 은사실 꽃가루가 뿌옇게 날린다.

오전 10시, 어린이날인데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순례자들과 어린이들을 위해 냉면을 준비했다. 배와 양파와 사과를 강판에 갈고 갖은 양념으로 다대기를 만들었다. 냉면 고명으로 올라갈 오이와 배를 썰고 무채를 만들었다.

낮12시경에 도착한 순례단을 위해 진행봉사자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냉면을 삶고 씻는가 하면, 냉면을 비비고 물냉면을 준비하는 손길이 정겹다. 쫄깃쫄깃한 냉면에 시원한 육수의 물냉면, 묵은 김치에 열무김치까지 곁들린 비빔냉면은 오전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냉면과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어린이날을 맞아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큰절을 하는 것으로 오후 순례가 시작되었다. 실상사 작은 학교 학생들과 아이들 60여명과 30여명의 어른들이 함께 가는 희망의 행진이다. 하늘을 향해 한 줄의 실에 희망의 연을 띄우듯 길다란 순례의 한 길에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을 띄우며 걸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 주었지만 한낮에 걷기란 쉽지 않았다. 침묵으로 걸었던 아이들의 더위를 식혀주는 휴식시간, 어린이들은 대운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의문이 들었다.

"걸으면서 산과 들을 보았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강과 산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강과 산을 파괴하는 대운하는 다시 검토해서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강물은 흘러야 하는데 대운하 때문에 물이 고이게 되면 썩게 됩니다. 우리 인간이 큰 재앙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을 있는 그대로 흐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조성하 중3)

세상보기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조성하(좌) 문치진(우) 작은 학교 학생들

"지금 우리는 세상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작년에는 지리산 일대를 순례했다. 올해는 마을답사를 하기로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대운하 순례로 바뀌게 되었다. 시대의 창을 보기 위해서다. 생명의 강과 더불어 사는 수많은 동식물들의 생명을 위해 4박 5일의 순례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대운하처럼 멍청한 짓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는가. 강은 국민의 식수원이다. 먹는 물 위에 어떻게 배를 띄운다는 것인가. 소가 웃을 일이다.

대운하는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운하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그 경제가 땅 투기꾼과 건설대기업들의 일부 상위계층의 경제만 살리고 빈부격차만 심화시키는 경제 살리기 아니냐."(문치진 중3)

괴산시내를 향해 다시 순례를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던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대만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청년회에 교환학생으로 온 청년(챈유핑)이었다.

"환경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대운하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들의 의견수렴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어떻게 국민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는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런 것인가. 대만에 가서도 기도하며 대운하 반대를 지지하겠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경제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환경과 자연이다. 자연을 파괴하며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하이코미디 아닌가."

괴산 시내 천을 따라 괴산청소년문화관에 들어섰다. 어린이날 행사 중인 어린이와 지역주민들이 기립박수로 환영해 주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대운하의 주인공 아이의 손에 피켓이 들려 있다. ‘누구를 위한 운하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들의 탐욕과 무지가 떠올라 부끄러웠다.

아이들과 함께 바구니 터트리기 경기를 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순례단이 더 신이 났다. 청군의 바구니가 먼저 터지며 땅으로 쏟아진 것은 쑥과 민들레 등의 꽃과 풀이었다. 자연의 소중함을 경기를 통해 일깨워주고 있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이명박 대통령께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주인공인 여러분이 행복하고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선진일류국가라고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선포했다.

어린이날을 제정한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정신을 담은 어린이헌장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다. “어린이는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는 마음과 태도를 길러야 한다. 어린이는 해로운 사회 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

우리의 내일이자 희망인 어린이날에 한국인으로서 나라의 앞날과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 할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아름다운 자연을 꿈꾸어 본다. 자연을 사랑하지 않고 파괴하는, 대운하가 어린이들에게 꿈과 행복을 가져다줄까?


/최종수 2008-05-06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