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이찬수 외, 모시는 사람들, 2010

“여러분이 경험하셨던 것들이 지금의 여러분을 있게 하는 세상이라면, 저와 같은 무녀들이 경험하는 세상은 분명히 지금의 저희들을 있게 한 것입니다.”

무녀 정순덕 선생이 자신의 축귀 경험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꺼낸 첫마디 말이다. 서양 속담에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 라는 말이 있듯, 우리가 실제로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은 곧 우리의 현실 세계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우리가 경험한 것들의 집합 혹은 우리의 경험 바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경험된 세계가 정말 ‘실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사실 그 물음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수 천 년에 걸쳐 고민해오고 있는 중요한 생각거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귀신을 만난 사람들이 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정 무녀와 같이 자신의 경험 속에서 귀신을 만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처럼 귀신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귀신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며 무슨 이유로 존재하는 것일까? 또 만약 귀신이 없다면 왜 우리 주위에 이토록 귀신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을까, 그 허구의 이야기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덟 갈래로 갈라지는 구미호 꼬리처럼 의문은 갈래가 되어 이어진다. 마치 그 옛날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가 그의 할머니께 들었다는 그 옛적의 얘기처럼 말이다.

지난해, 이러한 의문들에 대답해보기 위해 몇 명의 종교인과 종교연구자가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다. 모들아카데미와 종교문화연구원, 한신대 신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세미나식 강좌 “오늘 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 - 여러 종교의 귀신론”이 바로 그것이다. 각 개별 종교의 전문가들이 귀신론을 주제로 한 차례씩 공개강좌를 진행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토론해보자는 자리였는데, 이번에 나온 ‘따끈한’ 책 <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모시는 사람들)는 그 세미나의 결과물들을 정리ㆍ보완해서 묶은 것이다. 이 책에는 기독교, 불교, 무교, 유교, 천도교의 귀신관과 일본인의 귀신론 그리고 귀신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담은 글이 실려 있다. 그런 까닭에 각 종교에서 귀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소개한 무녀 정순덕의 남편이기도 한 종교학자 김동규는 무교에서의 신령 체험을 존중하면서 귀신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을 관계의 ‘어그러짐’으로 설명한다. 무교에서 귀신은 항상 사람과 가까이에 있는 존재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어그러질 때 인간 세계에 침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조화로운 관계가 회복된다면 자연히 귀신은 인간 세계에서 떠나 자기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무교에서 귀신 현상의 유무는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마을(사회) 공동체가 얼마나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 같은 것이 된다. 이것이 귀신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물론 귀신은 귀신의 세계에, 사람은 사람의 세계에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상태임은 자명하다.

유교와 불교, 귀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렇다면 무교만큼 직접적으로 귀신 체험을 강조하지 않는 종교에서는 귀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먼저 유교 연구자 김우형은 공자와 주희의 귀신관이 휴머니즘을 기초로 하되 신비한 귀신 현상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인식론적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신비한 대상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신비한 현상들은 가능한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 아래 공자와 주희는 귀신 현상을 음양론으로 설명했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이어서 승려인 법현은 불교적 세계관에서도 귀신 경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귀신이 있어서 수행과 평화로운 삶을 방해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없어져야 할 존재가 아니라 더 좋은 상태로 바꾸어야 할 교화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한편, 천도교인 오문환은 사람이 죽어 귀신이 된다는 말을 사람이 죽어 한울님의 음양기운으로 화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한울님이 바로 ‘나’이자 조상신이니 귀신도 한울님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기독교, 사탄을 무속의 귀신과 혼동

목사인 최대광은 기독교적 귀신을 악의 문제와 연결시켜 이야기한다. 기독교적 악의 기원은 인간 밖에 존재하는 타락한 천사인 악령이나 사탄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에 유입되면서 애초의 의미와는 다르게 ‘귀신’으로 번역되고, 그것이 김기동 목사와 같은 이들에 의해 “불신자의 사후 영”으로 이해(오해)되면서, 성경에 나오는 악령이나 사탄을 무속의 귀신과 혼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교학자 원영상은 시선을 밖으로 돌려 일본의 불교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이노우에 엔료의 요괴학을 소개한다. 그는 엔료의 요괴학이 당시 일본에 퍼져 있던 ‘미신적’ 귀신관을 극복하고 불교 철학은 물론 근대 서양 사상과도 어울리는 귀신론을 확립하려는 시도였다고 지적한다.

이 모든 내용을 종교학자의 시각에서 정리하고 있는 이찬수 교수는 귀신 현상과 귀신 담론을 자기의 시선으로 해설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짧은 설명서 격인 ‘믿는 만큼 경험한다’는 글에서 귀신 담론이 유통되는 곳에서 귀신 체험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귀신이 그렇게 체험되는 순간 귀신은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생생한 실재가 된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귀신을 믿는 이에게 귀신은 실상인 것이다. 귀신은 그 믿음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결국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귀신 현상을 이해하는 다양한 시각들이다. 그래서 귀신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보려고 이 책을 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필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의 귀신관 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다양한 입장들 가운데 어떤 것을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결국 독자의 몫이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귀신 현상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귀신을 단순히 타파의 대상이나 말초적 자극제로서만이 아니라, 끝없이 해석되면서 인간의 삶 안에 늘 함께 해왔던 존재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이 책의 미덕이다. 자, 이 여름 더위를 오싹하게 할 귀신 영화 한 편 보고 싶다면, 더불어 이 책도 한 권 읽어 주자. 우리 주위에 늘 함께 있는 존재라면, 이왕이면 그들과 친해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오현석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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