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배여진]

두어 달 전인가, 퇴근길을 걸어오는데 보도블록이 다 뒤집혀 있었다. 바로 옆에는 이런 내용의 현수막이 떡 하니 걸려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G20 회의를 위한 보도블록 교체작업 중입니다." 도대체 G20과 보도블록이 무슨 상관인가? G20에 참여하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서울 도보순례라도 한다는 말인가? 아, 문득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허본좌(본명 허.경.영)' 님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보도블록 교체 금지법"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차라리 보도블록 교체 금지법이라도..

어디 보도블록 뿐이던가. 죄 없는 전봇대들은 뽑혀나가고, 가로 정비라는 명목으로 노점상 단속을 벌이고 있어 상인들의 생활터전이 빼앗기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법무부의 집중단속으로 벌벌 떨고 있고, 거리환경 정화라는 목적으로 노숙인들의 잠자리를 빼앗고 있다. 국민들에 대한 불심검문이 강화됐으며, G20 회의장 근처에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도록 "G20 경호안전 특별법"이 지난 5월 통과되었다. 국내 4개 공항에는 인권침해 논란이 진행 중인 '알몸투시기'가 설치되었고, 세종로의 각국 정상 이동로에는 7억 원을 투입해 '간판'을 교체한다고 한다. 또 지난 6월 교육과학기술부는 일선 학교에 '학교동원령'을 연상케 하는 G20 정상회의 인식 제고를 위한 행사와 홍보 실적을 제출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다.

▲ 서울 G20 정상회의 개최 D-100일(8월 3일)을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이 행사, 홍보 등 분야별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개도국 중 처음으로 G20 의장국이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4차례 모두 영어권, 선진국에서 열렸다. 그래서 아시아 개도국 중에 처음 열린다는 게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사진 출처/G20정상회의 홈페이지)

오는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1박 2일로 진행되는 G20을 위해 정부와 서울시가 벌이고 있는 행태들의 일부다. 이번 G20 회의 개최를 통해 '국격 수직 급상승'을 꿈꾸는 정부의 호들갑은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물론이오, 인간사냥과 생존권 박탈, 혈세 낭비를 부추기고 있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 도대체 누구를 위한 G20인가?

* G20의 의미_(포털사이트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
서방의 선진 7개 국가의 모임인 G7을 확대하여 개편한 세계경제협의기구로, 국제 금융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고 세계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1999년 12월 베를린에서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G20의 회원국은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일본ㆍ이탈리아ㆍ캐나다ㆍ러시아(이상 G8)와 한국ㆍ중국ㆍ아르헨티나ㆍ인도ㆍ아르헨티나ㆍ터키ㆍ브라질ㆍ멕시코ㆍ호주ㆍ남아프리카공화국ㆍ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G20 회원국이 참여하는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와 정상회의가 각각 연 1회 개최된다.


이 글에서 G20에서 논의되는 내용이나 예상 결과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는 11월 서울 강남에서 개최되는 G20에 '국가의 모든 것'이 달린 것처럼 '오바'하고 있는 행태를 꼬집고 싶다.

국제행사만 진행하면 쫓겨나는 사람들

노점상은 거리의 흉물인가, 아니면 출출한 뱃속을 달래주는 식문화이자 상인들의 삶터인가. 언제부턴가 '국제행사'만 진행하면 행사장 주변의 노점상들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고 있다. 아니, '디자인 도시 서울'이 외쳐지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노점상 '청소'는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삶을 이어가는 생계수단인 노점을 '거리의 흉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정부관계자들의 '수준 높은' 시선이다. 도시를 디자인하겠다는 사람들이 정작 중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디자인에는 관심이 없으니 노점상은 계속해서 단속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울시는 G20 회의에 대비해 25개 자치구의 '도로특별정비반'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도로파손 등의 도로정비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간선도로변의 노점철거가 목적인 것이다. 노점은, 누군가에게는 생계이고 삶이고, 누군가에게는 주린 배 값싸게 채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를 은밀한 수다로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미 노점은 우리들의 삶이자 문화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곳곳의 노점들은 또다시 '거리의 흉물'로 전락하고 싹쓸이 단속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논의한다는 회의 '덕분에'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노점상인들의 삶은 박탈당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G20인가?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시는 노숙인들을 지방에 있는 청소년 수련원으로 집단 연수를 보내려 했다가 반대에 부딪혀 철회, 2005년 APEC 정상회담이 열린 부산에서는 노숙인 '시설수용기간'을 지정하고 합동 계도반, 임시 수용시설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2010년 보건복지부에서는 지난 6월 '노숙인의 자활을 위한 근원 대책'을 발표하였다. 내용은, 노숙인에게 그룹홈을 제공하고, 여성노숙인 쉼터를 확충하고, 거리 노숙인에게는 쪽방을 얻어 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G20이 끝나고 난 뒤에도 이 대책들은 유효할까? 내년 예산이 향방은 불투명하거나 올해 11월까지만 유효한 대책도 있다. 이러한 대책들이 청와대에서 주관한 'G20 대비 노숙인 대책회의'에 따른 조치란 점을 생각해보면 G20 회의까지만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자신들을 위한 대책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것이냐?"

또한 최근 길에 다니다 보면 정복을 입은 경찰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경찰국가'로의 진입을 증명이라도 하듯 경찰이 이리도 많이 돌아다니는 걸 보니 든든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더 든다. 심심치 않게 불심검문을 당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불심검문의 대상은 허름한 외모의 소유자, 이 또한 해당 경찰의 자의적 기준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내가 목격한 불심검문의 현장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컵라면을 들고 가는 노숙자를 불러 세워 신분증을 달라고 경찰이 요구하자, 노숙인은 왜 나한테 이러는 것이냐고 항변했다. 그러자 경찰은 잠시 이쪽으로 오라며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오. 지져스. 내 눈앞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신분증을 확인했는지 어쨌는지 경찰은 다시 자기들의 볼일을 보러 갔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한 번 질문, 도대체 G20. 누구를 위한 G20인가?

지금 공단과 같은 외국인 밀집지역에서는 외국인은 물론 외국인처럼 보이는 한국인들까지도 불심검문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법무부가 밝힌 6월부터 8월까지 미등록 체류자들을 집중단속 하겠다는 방침의 일환인 것이다. 이런 방침에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수준 낮은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바로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것이다. 안 그래도 이명박 정부 들어 인간사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강제단속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토록 상승시키고 싶어하는 '국격'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제4차 G20 회의를 개최했던 캐나다는 G20을 위해 1조 원이라는 비용을 썼다고 한다. G20 하나에 '국격'을 걸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비슷한 비용을 지출하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본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차라리 이런 회의를 하지 말고 그 비용을 고스란히 제3세계 빈곤 국가들에 지원을 해주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만 죽어라 쫓아내는 회의 100번보다 차라리 그 비용을 원조하는 것이 지구 상의 빈곤을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빈곤 해결을 위해 빈곤한 사람들을 더 억압하는 G20, 무언가 아이러니하다.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이 한국의 선진국 도약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서울 G20 정상회의는 선진국 진입단계에 도달했음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G20. 1988년 올림픽을 위해 강제로 쫓겨났던 상계동의 철거민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2010년 '국격 상승' 한다는 G20(쥐20?) 덕택에 또다시 쫓겨나는 사람들을 기억해본다.

누구를 위한 G20인가? 그 호들갑을 멈춰라. 겉치레를 멈춰라.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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