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 산자락 작은 폐교 가꿔 맛깔스런 삶의 이야기 풀어내

▲아시아 1인 연극제 포스터
경상남도의 서북부 끝에 자리하여 경상북도, 전라북도와 마주한 거창군.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3대 국립공원의 가운데 자리 잡아 자연경관이 수려한 이곳 거창에 해마다 여름이면 거창국제연극제가 개막돼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여기에 더해 오는 7월30일에 개막되는 ‘아시아 1인극제’ 축제가 더욱 눈길을 끄는데. 올해로 스물한 번째 열리는 ‘아시아 1인극제’를 준비하는 아시아 1인극협회 한국본부 회장 한대수 씨(54세)를 만나 그의 전통문화예술 사랑, 농촌 사랑 얘기를 들어본다.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의 작고 아담한 폐교. 이곳이 거창 지킴이 한대수 씨의 꿈이 담긴 곳이다. 생명두레문화연구원, 인드라망 현장귀농학교가 한대수 씨가 일궈온 일터이자,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모이고 흘러넘치는 나눔의 장이다. 활기찬 마을과 귀농정착 지원을 위해 그는 오늘도 분주히 이곳저곳을 다니며, 특히 아시아 1인극제 마무리 작업에 열정을 쏟는다.

“아시아 지역은 대부분 서양의 식민지 시대를 겪었습니다. 아시아 나라들은 민족도 많고, 역사도 깊고, 전통문화도 다양하지만, 오랜 식민지 생활로 자기 나라의 전통이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대체로 낮습니다. 아시아 1인극제는 자기 나라와 민족의 전통을 현대적 이야기로 재창조해 무대극을 통해 서로 나누는 자리입니다. 아시아 민족의 전통예술을 이어가자는 취지로 해마다 열린 아시아 1인극제를 5년 전부터 이곳, 거창에서 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1인극이 많다고 밝힌 한대수 씨는 판소리, 줄타기, 남사당놀이 등을 손꼽는다. 그는 특히 ‘굿’이 민족 예술의 뿌리라고 말한다.

“전통예술을 공부하려면 먼저 굿을 알아야 합니다. 예로부터 우리의 민속놀이는 굿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주로 마을에서 행해진 민속놀이는 크게 굿 속에서 이뤄졌고 세시 풍속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마을에서 행한 대동굿이나 강릉 단오제, 하회 별신제 등도 그런 맥락입니다. 조선 후기 전문 연희집단인 남사당이 흥하면서 이러한 굿이 세분화됐습니다.”

전통 굿은 공동체의 선을 향한 마음 담은 것, 기복신앙으로 왜곡돼 안타까워

▲한대수 씨
“우리나라 전통 굿은 고려시대 불교,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아 많이 축소되고 왜곡되었다.”고 말하는 한대수 씨는 “근세에 와서 무당이 점을 치고 개인의 복을 비는 기복신앙이 주를 이루지만, 원래 굿은 공동체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 어떻게 서로 단합하고 올바르게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신들이 다 빠져나가고 개인적인 갈망을 충족시켜줄 요소, 딱히 말해 미신적 요소를 남긴 것이 오늘날의 굿판”이라고 안타까워한다.

한대수 씨도 굿을 한다. 민속학자 심우성 씨가 그의 스승이다. 작금에서 무당은 물론이려니와 불교나 그리스도교도 개인의 기복과 갈망만으로 채워지는 현실을 개탄한 그는 아시아 1인극제를 통해 우리 시대의 갈망을 담고 싶어한다.

“농민들의 문제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 인권문제가 드러난 현장에서 주로 공연을 했습니다.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나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의 초청을 받아 굿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진혼제인 셈이죠.”

전국의 학살지를 순회공연 하기도 한 그는 유족들의 요청이 있으면 지금도 달려가 진혼굿을 한다. 그의 고향 거창은 거창양민학살사건으로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은 곳이다. 그는 일찍이 양민학살 보상과 관련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뛰어다녔고, 올해로 22번째 진행된 거창평화인권예술제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인권과 예술, 그리고 사람 사는 모습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며 자신의 삶을 풀어가는 한대수 씨. 그러나 그의 인생 여정은 예사롭지 않았다.

거창고등학교 3학년 때 머리를 깎고 출가한 한대수 씨는 1년 반 동안 행자승으로 절에 머물렀다. 그 후 그는 군대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 서울로 올라가 입시공부를 했다.

"누님 댁이 신당동에 있었고 종로에 있는 학원까지 걸어 다녔어요. 누님댁 부근에 있는 성당에 자주 들르곤 했는데 성당 벽에 붙어 있던 '노동자문학 동아리'를 찾아갔어요. 그때 교리공부를 하면서 전태일 열사 이야기를 들었죠. 왕십리에 있는 공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당시에 그는 떡볶이 공장, 사출기 공장, 청계천 피복 공장 등을 전전했다고 한다. 20대, 혈기왕성하던 시절 노동현장에서 땀을 흘렸던 그는 자연 노동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그러나 그의 노동현장 이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1984년 다시 고향 거창으로 내려온 것. 거창에서 생맥주 집을 열었고, 그즈음 그는 풍물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창작 마당극에도 눈길을 돌려 연극과 인연을 맺는다. 풍물에 열중하면서 그는 우리문화연구회를 조직했고, 거창 농민회를 조직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자연 그의 생맥주집은 참새방앗간이 되었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운영은 제대로 되지 못했다.

1994년 그는 한국민속극연구소를 설립한 심우성 선생이 공주에 설립한 민속극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3년 동안 상근했다. 그 후 2년은 거창과 공주를 오가며 민속극의 저변 확대를 위해 애쓰며 고향의 크고 작은 문화행사에 관여했다. 거창 시민연대 사무국장, 거창 민예총 부지부장, 평화인권예술제 집행위원장 등 거창에서의 그의 이력 또한 이채롭다.

"2002년 이곳의 폐교를 얻어 생명두레문화교육원을 열었습니다. 2006년 공주 민속극박물관이 폐관 위기에 처했고, 그때 심우성 선생님의 수집물을 다 가지고 왔지요. 그 후 공주에서 개최하던 아시아 1인극제도 거창으로 유치했습니다. 2007년 문화소외지역 공간 조성사업비 등을 지원받아 이곳에서 문화 예술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연극제를 위해 소품들을 손보고 있다(사진/상인숙 기자)

생명두레문화교육원 열고 '1인극' 통한 소통과 교감의 장 만들어
귀농학교 통한 농촌과 도시와의 나눔 이어와..

민속 예술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그의 농촌 사랑도 지대하다.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줄곧 농민회 활동을 해왔던 그는 생명두레문화교육원과 함께 귀농학교 문을 열고 귀농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이곳으로 귀농해서 꼭 농사만 고집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시골에도 의사나 약사, 선생이나 목수 등 다양한 직업군이 필요합니다. 시골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삶을 나누려는 자세가 제일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귀농해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우리네 엄마들이 농사를 정성껏 지어 아들네, 딸네 집에 보내듯이 알곡들만 모아 소비자들에게 전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쏟은 정성은 반드시 다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는 부산에서 온 귀농학교 학생이 낮에는 귀농 체험을 하고 저녁에는 연극을 했다고 한다. 국립 중앙박물관 자원 봉사자들도 휴가를 겸해 이곳에 와서 아시아 1인극을 관람하기도 했다. 한대수 씨는 이곳에서 숙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편안하게 머무르면서 귀농 체험도 하고 전통 민속문화와의 만남을 가지면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올해 아시아 1인극제의 특징을 베트남의 수상인형극으로 꼽는다. 부족한 예산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아시아 1인극제의 전통과 정신만큼은 어느 해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중국, 인도, 스리랑카, 몽골, 티벳 민족 등의 전통춤도 볼거리입니다. 먼 나라, 먼 지역 여기저기에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찾아 이곳에서 공연을 통한 만남을 가집니다. 좋은 일에 서로 쳐다보면서 웃고 즐기다 보면 더위도 가시고 근심 걱정도 물러날 것입니다."

한대수 씨가 중심이 되어 여는 아시아 1인극제는 7월 30일부터 8월 1일까지 북상 갈계숲, 가조 고견사 입구, 생명두레문화교육원 등에서 낮 공연과 밤 공연으로 나뉘어 열리며, 행사 기간 동안 가족과 함께 하는 1인극 체험, 아시아의 몸짓 배우기, 미학 강의 및 다양한 가족체험 부대행사가 마련돼 있다고 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5~60년 전보다 삶의 질이 200배나 높아졌다는데 사람들은 전혀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눌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삶은 풍요로와졌지만 갈망은 더욱 커지기만 합니다. 국가의 제도도 구조적 모순을 보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라든지, 통일 문제 등도 우리가 나누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모순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소비의 질을 높이는 운동, 월급을 올리고 쌀값을 올려달라는 요구보다 삶의 질을 높이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며, 내가 가지는 갈망을 내려놓고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대수 씨가 이즈음 새롭게 시작한 것은 명상이다. 위빳사나 명상 프로그램을 운용하며 방학 중 '아이들과 청소년의 마음닦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한, 매월 열흘간의 일정으로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덕유산 자락과 맞닿아 청정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거창군 고제면 작은 폐교에서 한대수 씨 그는 푸른 하늘을 이고 오늘도 사람 사는 세상의 질펀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넉넉한 웃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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