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여옥]

(사진 출처/http://www.stopclustermunitions.org/)

‘사격명령과 동시에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습니다. 로켓에 명중된 적진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가공할 화력으로 적진을 초토화시키는 육군 주력 포병부대의 훈련 모습입니다.’ 국산기술을 강조하며 MLRS(다연장로켓발사체계)의 훈련 모습을 설명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조금 흥분된 것처럼 느껴졌다. 화면에는 날아가는 미사일과 넓은 지역에 폭발이 일어나는 모습이 나오고, 이어 자신감에 가득 찬 군인이 나와 무기의 성능을 설명한다.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기수출․수입국이다. 수출을 장려하는 국가정책 속에서 2002 ~ 2006년까지 연평균 2억 5천만 달러 수준이었던 방산수출이 2008년 10억 3천만 달러로 첫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11억 7천만 달러까지 늘어났으며, 국내 기술로 개발해 세계에서 인정받는 무기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무기는 원래 전쟁을 위해, 죽이고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의 기업들은 무기 산업을 통해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무기들은 분쟁지역으로 팔려나가고 전쟁에서 사용되어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수출하는 여러 무기들 중에 집속탄이라고 하는 폭탄이 있다. 집속탄(Cluster Bomb)은 확산탄 또는 모자(母子)탄이라고도 하는데, 한 개의 집속탄 안에 수십, 수백 개의 소폭탄이 가득 채워져 있어 공중에서 터지면서 안에 들어 있는 작은 폭탄들이 흩어지며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넓은 지역에서 다수의 무차별 살상․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대표적인 대인살상용 산탄형 폭탄이다. 보통 축구장 3-4배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초토화시키며 무차별적인 피해를 양산해내고, 폭발하지 않은 불발탄은 이후에도 오래도록 남아있다가 지뢰처럼 작용한다. 집속탄에 들어가는 소폭탄의 종류에는 소이탄(네이팜탄), 지뢰, 화학무기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개량을 거듭하면서 체내에 박히면 찾아서 제거하기 힘들도록 플라스틱 파편으로 채운 것도 있다. 무기는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갈수록 더 잔인하게 개발된다.

이러한 집속탄이 민간인에게 주는 영향은 어마어마한데, 소형무기를 제외한 재래식무기 중 그 어떤 무기보다 민간인 희생자가 많다. 집속탄으로 인한 사상자의 98%가 민간인이고 그중 1/4은 어린이들이라고 한다. 집속탄이 사용된 지역은 불발탄으로 접근이 차단되며 분쟁종식 후에도 오래도록 그 피해가 지속된다. 집속탄에서 나온 소폭탄들의 형태나 색깔이 밝고 다양해서 아이들은 그것을 장난감으로 여기고 가지고 놀다가 사고가 많이 난다.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 3주 동안 미국은 1만 782발, 영국은 2,170발을 사용했고 뿌려진 소폭탄 수는 모두 200만 개에 이르며, 그중 약 9만 발이 불발탄이 되었다고 추산된다.(휴먼라이츠워치) 2006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때는 약 400만 개의 소폭탄이 사용되었고 그중 100만 개가 불발탄으로 남았다.(유엔) 라오스에만 8천만 개의 소폭탄이 불발탄으로 남아 수천 명이 넘는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희생자가 생겨나고 있다.

▲ 2008년 5월 19-30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집속탄에 관한 외교회의.

집속탄의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기 때문에 집속탄을 금지하고자 하는 국제적인 관심과 움직임은 꽤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다. 200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사용한 엄청난 양의 집속탄은 국제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집속탄 금지협약이 만들어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CCW(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 The Convention on Conventional Weapons) 내에서 집속탄을 규제하는 협약이 제안되었으나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2006년 11월 CCW 틀 바깥에서 집속탄 금지를 위한 협상인 오슬로 프로세스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각 지역회의를 거쳐 2008년 5월 더블린에서 열린 회의에서 107개국의 만장일치로 집속탄금지협약(The Convention on Cluster Munitions)이 탄생하게 되었다. 2008년 12월 3일 오슬로에서 조인식이 진행되는 동안 96개국이 서명했고 4개국은 비준까지 마쳤다. 협약 발효를 위한 최소 조건인 30개국 비준을 2010년 2월에 달성했고, 6개월 후인 올해 8월 1일에 정식 국제협약으로 발효된다. 현재 2010년 7월 24일까지 107개국 정부가 서명했고, 37개 국가가 의회동의를 거쳐 비준한 상태다.

집속탄금지협약에 서명․비준한 나라들 중에는 그동안 집속탄을 생산해 왔던 34개 나라 중 14개 나라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 국가는 앞으로 다시는 집속탄과 관련한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셈이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미국,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등 17개국은 지금도 집속탄을 생산 중이다. 한국은 집속탄 주요 생산국이자 수입국이며, 자랑스러운 한국군 무기로 집속탄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집속탄 문제에 쏟아진 국제적 관심에 비해 한국 정부는 여전히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반면 벨기에,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국가는 집속탄을 생산에 관여한 기업을 비윤리적 기업으로 보고 투자를 금지시켰는데, 여기에는 한국에서 집속탄을 만드는 기업인 한화와 풍산도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한국 정부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안보상황에 있다는 이유로 집속탄 보유를 주장하며 집속탄금지협약에 가입하지도 않고 수입과 수출을 계속하고 있다. 또 집속탄의 문제를 불발탄의 문제로만 보고 이를 기술적 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 만든 집속탄은 분쟁지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200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투하한 400만 개의 집속탄의 소폭탄은 한국산과 같은 유형이라고 알려졌고, 2003년 이라크에서 사용된 집속탄도 한국산과 같은 유형이라고 추정된다. 그리고 파키스탄 같은 분쟁지역에도 수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집속탄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한화는 ‘방어 목적으로 정부 주도 하에 이루어진 사업’이라고 했고, 풍산 측은 ‘한국산 집속탄은 자폭 능력이 있어 민간인을 해치지 않는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든 집속탄이 전쟁에서 사용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면 그 죽음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는 것이 아닐까?

무기를 팔아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한 상황, 즉 전쟁과 군사적 위협이 계속 되어야 한다. 무기수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무기수출로 인해 벌어들이는 이익이 결국 다른 나라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피묻은 돈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군사대국들은 여전히 집속탄에 기대고 있고, 핵심 공격 무기로 배치하고 있다. 최근 전쟁까지 거의 모든 전쟁에 집속탄이 대량 사용되었고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으며 불발탄으로 인한 피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집속탄의 비인도성 때문에 시작된 국제적인 집속탄 규제운동이 만들어낸 집속탄금지협약(CCM)은 집속탄의 사용, 생산, 이전, 비축을 전면 중단하고 비축분을 폐기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불발탄 제거 등의 후속 대책도 포함되어 있다. 이제 집속탄금지협약이 정식으로 발효되는 8월 1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하루빨리 집속탄금지협약에 서명하고 비준해야 한다. 특수한 안보적 상황이라는 핑계로 집속탄의 생산과 수출을 계속하다 보면, 집속탄의 비인도성과 무차별성이 결국 우리를 겨냥할 수도 있다.

여옥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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