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모니터링 자료는 9월에 발행된 평화신문 935호~938호와 가톨릭신문 2564호~2567호이다.


‣ 서울 6지구장배 볼링대회가 열린다.
평화신문 9월 23일자 2면에 ‘춘천교구 총대리에 양완모 신부 임명’이란 기사가 실렸다. 9월에 보도된 춘천교구와 관련된 2개의 기사 중 하나이다. 하기는 마산교구 소식은 한 달 동안 단 한 건도 없다.

가톨릭신문의 사정도 그리 나아보이질 않는다. 9월 2일자 3면 1단 ‘성체조배 기초교육’ 일곱 줄 기사가 원주교구에 대한 소식 전부이다. 기사의 지역별 편중이 너무 심하다. 아래의 표는 9월중 교구별 보도횟수이다. (전국단체는 단체에, 지역단체는 교구에 속한다. 주교회의는 주교이고, 교구는 가나다순이다.)

일반 사회의 많은 일들이 서울 중심적이기에 대한민국이 ‘서울민국’인 것이야 다 아는 사실이지만 가톨릭교회마저 그럴 이유는 없다. 단체와 주교회의에 관한 일을 별도로 취급하였는데도 지나친 지역별 쏠림현상은 한눈에 보인다.

심지어 평화신문 9월 2일자 5면에는 서울 6지구의 볼링대회 소식까지 실렸다. 서울 6지구가 지역교구보다 범위나 예산 면에서는 월등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지역교구의 소식은 전무한데 비해 서울의 한 지구 소식은 본당주보에 실릴 정도의 기사를 신문에 올린 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현재의 취재시스템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두 신문은 신문사에 소속된 많지 않은 기자 외에는 명예기자나 지역의 지사장에게서 기사를 공급받고 있다. 또한 현재 각 교구의 홍보실의 활동에도 의문을 재기해야한다. 언론사에 제공하는 보도 자료를 교구주보의 내용으로 갈음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스로의 기사를 발굴하여 이를 언론과 연결시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나마 가톨릭신문이 ‘우리 교구는 지금’이라는 꼭지를 격주로 편집 해놓은 것은 평가한다. 무엇보다 신문사 데스크의 균형 잡힌 편집노력을 기대한다. 숨어있는 “깜”을 찾으세요!

‣ 그 날이 오면
운동권 노래제목이 아니다. 매년 ‘그 날’이 오면 신문사는 특집을 기획한다. 아마도 ‘그 나물에 그 밥’을 만들 수는 없기에 많은 고민을 갖고서 기획회의를 할 것이다. 순교자성월을 맞아 두 신문사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특집을 선보였다.

평화신문은 ‘조선을 밝힌 여성순교자’ 4회와 특별기고 그리고 성지기획으로 한국교회 발상지중 하나인 충남 내포지역을 소개하였다. 단지 9월 2일자에 내포지역에서 소개된 솔뫼성지와 성거산성지를 9월 9일자와 9월 16일자 ‘가족과 함께 떠나요’에서 중복 소개한 것은 편집의 실수이다.

가톨릭신문은 4회에 걸쳐 성지순례에 대한 기획보도를 하였다. 특집에 앞서 9월 2일자 1면에서 ‘성지순례도 아니고 단합대회도 아니고’ 기사는 언론의 비판기능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전국성지를 24면 전면광고란에 배치한 것은 솔직한(?) 편집이다.

평화신문은 9월 23일자 1면에서 ‘순교자 현양열기가 문화예술로 진화’하고 있다고 보도하였지만 정작 신문사의 특집은 고전적 보도이다. 또한 두 신문 모두 순교자의 의미를 너무 협소하게 해석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한국초기교회 순교자는 물론이지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선포한 ‘20세기 새 순교자’와 현 시대의 순교자에 대한 기획 역시 언론의 몫이다. 언론의 펜은 역사학자의 펜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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