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박영대]

▲ 사진/한상봉 기자
지난달 말 수원교구 한 본당의 초청을 받아 오랜만에 견진 교리를 했다. 이미 여러 차례 견진교리를 한 경험도 있고 미리 사정을 들어 각오했지만, 청중이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너무 다양했다. 견진 대상자가 다양하니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일이다. 이번뿐 아니라 견진교리를 하러 가면 언제나 그랬다. 약속한 강의 주제가 있고 나름 준비를 열심히 했지만, 이야기를 누구에게 맞춰 어떻게 풀어나갈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요즘 이처럼 다양한 연령과 계층 사람을 한데 모아놓고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다른 데서도 찾아볼 수 있을까? 이런 방식으로 교육하겠다고 하면 생각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할 거다. 그런 일이 천주교회 안에서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한다는 견진성사를 앞두고 버젓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처럼 허술한 교육을 거쳐 견진성사를 받아도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대학 1학년 때 세례를 받은 나는 군 입대를 앞두고 휴학 중에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때도 견진성사를 준비하기 위해 며칠 동안 견진교리를 받았다. 그전에도 견진교리를 한 번 더 받은 적이 있었다. 교리를 빠지지 않고 출석해 견진 받을 자격(?)은 충분했지만, 스스로 성숙한 신앙인이 될 자신이 없어서 견진성사를 포기했다. 너무 고지식했나? 두 번째 견진교리를 받고도 같은 이유로 또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주변 분들이 입대 전에 견진을 받는 게 좋겠다고 적극 권해서 견진을 받았다. 견진 받을 때 성령칠은 가운데 특별히 받기를 원하는 은총이 있으면 기도하라고 해서 '슬기'를 구하기도 했다. 나름 열심히 기도했지만, 견진성사를 통해 내가 더 슬기로워졌는지 잘 모르겠다.

주로 청년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예비신자 교리교사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일곱 성사 가운데 가장 설명하기 힘들었던 성사가 견진성사였다. “견진성사는 세례를 완성하고, 성령과 그의 선물을 받게 하며, 인호(印號)를 남긴다. 견진이 세례를 완성한다는 말은 세례가 불완전한 성사임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다.” “견진성사에서 오는 성령은, 물론 세례성사에서도 오지만 성령이 역사하는 형태가 다를 뿐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A가 B를 완성하는데, B가 불완전한 건 아니다? 세례 때 온 성령이 견진 때도 온다면, 세례 때 왔던 성령이 견진을 위해 잠시 떠났다가 다시 온다는 이야기인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억지 논리라는 느낌이 든다. 3~5세기까지 세례와 견진이 본디 잇따라 하던 하나의 예절이었다가 그 뒤에 둘로 나누어졌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왜 이렇게 억지스러운 교리가 생겨났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례와 견진이 한 번에 이루어졌다면, 위 설명이 그리 문제 될 게 없다.

이 부자연스러움에도 왜 굳이 세례와 견진을 나누어서 할까? 나중에 견진성사로 따로 떨어져 나온 도유(塗油)와 안수를 주교만 할 수 있게 만든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교회법상 사제도 견진성사를 집전할 수 있지만 특별한 경우만 가능하다. 882~888조 참조). 주교가 모든 세례에 참석할 수 없으니 세례와 견진이 분리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특별한 직위의 사람이 그 특별함을 유지하려면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없는 고유 권한이나 직무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세례와 견진성사에 관한 교리의 부자연스러움을 설명하려면 이 대목까지 설명해야 하는데, 예비신자에게 이를 설명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견진교리가 전 신자 대상 교육과 다를 바 없어서 견진 대상자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도 참석하도록 하는 본당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청소년부터 노인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지금의 견진교리 방식은 개선되었으면 한다. 이제 예비신자 교리는 평신도가 맡아서 소모임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이 모임을 세례로 끝내지 말고 계속 이어나가 견진교리도 소모임 방식으로 한 다음에 견진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 이럴 때 본디 세례와 견진이 하나였던 뜻도 잘 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천주교회에서 소모임 방식 예비신자 교리서로 널리 쓰는 <함께 하는 여정>은 원래 견진교리를 포함한 것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룸코사목연구소에서 펴낸 교리서를 서울대교구가 한국천주교회 실정에 맞게 편역하는 과정에서 예비신자 교리서 부분만 남았다. 지금이라도 같은 원리와 방법을 적용한 소모임 방식 견진교리서를 펴내 예비신자 교리소모임이 그대로 견진교리 소모임이 되도록 하자. 또 예비신자 교리 때 미사 참례 정도를 중요한 세례 조건으로 삼는 것처럼, 견진교리 때는 꼭 봉사활동 체험을 의무화하자. 성숙한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웃을 위해 내 것을 내어주는 삶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견진자는 어찌할까? 첫영성체 가정교리 방식으로 부모와 교사가 공동으로 신앙 지도를 하는 방식을 개발했으면 한다. 다행히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가 이 같은 방법의 청소년 견진교리를 개발해서 실험하고 있다(관련 자료는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가 운영하는 다음카페 “DC 참신나” (http://cafe.daum.net/dc-cafe 에서 볼 수 있다).

박영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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